"중요하고 특별한 날"... 엄마 장례식의 비밀 알게 된 아들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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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일> 스틸컷 |
ⓒ CJ CGV |
01.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유언장에 이 번호가 적혀 있어서요."
특별하지 않은 경우 우리 모두는 부모와 이별하는 경험을 꼭 한번은 겪는다. 자신이 태어나던 순간을 오롯이 지켜봐 준 일의 대신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당신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이제 우리가 살피는 것이다. 생명이 탄생한 이후의 어려움이 부모가 된 이들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삶 속에 또 다른 생을 끌어안는 일이라면, 소멸한 다음에는 정확히 반대의 일이 남는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작동시켰던 시간을 멈추고 고이 접어 묻어두는 것. 장례는 그 과정을 위한 가장 처음이자 상징적인 행위다.
영화 < 3일 >은 어머니 주희(서정연 분)의 죽음을 마주하게 된 태하(유승호 분)가 그의 유언장으로부터 한 남자의 전화번호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장례식을 1년 전부터 미리 준비하기 위해 장례지도사인 하진(김동욱 분)의 연락처를 남겨두었던 주희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이제서야 그로부터 전해 듣게 되는 아들 태하. 두 사람은 세상을 떠난 주희의 유언에 따라 그가 원했던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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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일> 스틸컷 |
ⓒ CJ CGV |
"그날은 제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하고 특별한 날이니까요."
사실 영화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앞서 설명했던 시놉시스 외에 분사되는 다른 이야기도 없을뿐더러, 스토리 상으로도 전혀 복잡하지 않다. 핵심은 남겨진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준비하는 장례 형식을 반대로 뒤집어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로 보자면, 아들인 태하가 엄마의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지만, 1년 전부터 이미 자신의 장례를 모두 설계하고 준비한 엄마로 인해 되려 장례식을 선물 받게 된다는 것. 어쩌면 영화의 타이틀이 '3일장'이 아닌 '3일'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3일 동안 치르는 장례가 아니라, 3일의 장례식 동안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이처럼 뒤집힌 설정을 위해 마련되는 서사가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오랫동안 병을 앓았던 엄마 주희와 그를 보살피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 했던 아들 태하의 사정이다. 일반적이라면 진부하게 느껴질 소재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다. 조문객들이 한날한시에 모여야 하는 이유, 장례식장 한쪽 벽면 가득 아들 태하의 사진이 채워져야 했던 까닭, 장례지도사 하진에게 아들의 노래 하나를 맡긴 사정 모두가 이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떠나는 순간까지 남겨지게 될 아들의 꿈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도 함께다.
03.
이미지적으로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있다. 엄마가 남긴 선물, 아들의 꿈을 다시 찾아주고 싶었던 그가 장례식을 빌어 마련한 공연 무대를 경험하는 동안의 태하 모습. 그리고 아들 몰래 자신의 장례를 홀로 준비하던 주희의 모습이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있었을지 알지 못한 채 원망만 했던 날들을 떠올려가는 아들. 끝내 자신은 마주할 수 없을 아들의 공연을 상상으로만 그리며 채워갔을 엄마. 영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을 그러모으고 나면 어느 한쪽으로도 밀리지 않는 커다란 두 힘이 형성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역시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 주희의 모습이다. 장례지도사인 하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아무도 없이 홀로 웃음을 짓는 그 모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밝은 쓸쓸함이 참으로 짙은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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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일> 스틸컷 |
ⓒ CJ CGV |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싶었어. 내 엄마로 살아줘서 고마워."
영화적으로는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영화 <3일>이 그렇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면 꼭 그렇게 되고 마는 주제와 서사, 그리고 이를 묵직하게 그려내는 배우들의 연기.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내고 만드는 모든 종류의 소리가 지금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하고 생각하게 했다.
장례가 시작된 지 3일이 되는 날, 태하는 처음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엄마의 장례식장을 나선다. 마음이 덜어진 듯 편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정확히 마주할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이 글의 처음에서 장례는 함께했던 시간을 접어 묻어두는 일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태하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에는 사무치게 그리운 날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에는 그의 맑고 고운 미소를 미소 지으며 떠올리기도 할 테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사랑을 그렇게 키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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