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백마 탄 왕자가 사라진 현대판 백설공주[시네프리뷰]
2025. 3. 26. 06:06
이 영화에는 독사과를 먹고 잠든 숲속의 공주를 구하는 ‘백마 탄 왕자’가 나오지 않는다. 백설공주와 백마 탄 왕자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었답니다’로 마무리되는 상투적인 디즈니 세계관이 달라진 것이다.
제목: 백설공주(SNOW WHITE)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09분
장르: 판타지, 뮤지컬
감독: 마크 웹
출연: 레이첼 지글러, 갤 가돗, 앤드루 버냅
개봉: 2025년 3월 19일
등급: 전체 관람가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얼마나 자신 없으면 개봉 전날 소리소문없이 시사회를 하겠어요?” 영화 시작 전 시사회장 밖에서 만난 한 평론가의 말이다. 무의식적인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그 주에 개봉하는 작품 중 흥미를 끌 만한 영화는 어김없이 오후 2시에 시사회를 한다. 반면 매니악(maniac)한 영화나, 대중성보다 예술성을 주목해 달라는 영화는 오후 4시 30분에 시사회를 한다. 오후 4시 30분으로 잡힌 <백설공주> 시사회 공지를 보고 의아했다. 그래도 디즈니 영화인데? 게다가 아이들 손 잡고 와달라는 가족영화인데?
영화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급적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게으른 필자의 귀에까지 이 영화에 얽힌 ‘소문’이 당도했다. 실사판 <인어공주>(2023)와 함께 PC(정치적 올바름)와 WOKE(워크·한국식으로 번역하자면 깨어 있는 시민)에 집착한 디즈니가 벌인 ‘삽질’의 끝물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후 디즈니는 공개적으로 기존 노선을 철회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 것인지는 앞으로 나올 결과물을 보고 판단해야 할 듯싶고.
<인어공주>를 잇는 ‘정치적 올바름’ 논란
백설공주 이야기는 대부분 잘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자. 필자가 성년이 된 후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를 다시 본 적 있다. 놀라웠다. 테크니컬러로 구현된 화면도 그렇지만(이 영화는 영화 역사상 최초의 장편 컬러 애니메이션이었다) 숲속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묘사나 영화에 중의적으로 표현된 서브플롯까지 완벽한 영화였다. 이번 실사 리메이크작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많았지만,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는 건… 실망이다. 뮤지컬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했다고 하는데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뮤지컬 넘버도 없다. 역시 PC주의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디즈니 작품 <겨울왕국>(2013)이 개봉한 뒤 한동안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주제곡 ‘렛 잇 고(Let it go)’ 열풍을 다들 기억하고 있지 않나. 돌이켜보면 <겨울왕국>은 작품도 훌륭했다.
계속 밟혔던 것은 88년 만의 리메이크 제목에서 ‘일곱 난쟁이(seven dwarfs)’는 왜 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 ‘정치적 올바름’의 산물이었다. 왜소증 커뮤니티에 일곱 난쟁이를 어떻게 묘사할까 문의한 결과를 영화에 최대한 반영했다고 한다. 1937년의 오리지널 작품의 엔딩은 본색을 드러낸 ‘마귀할멈’을 숲속 동물들과 일곱 난쟁이가 힘을 합쳐 추적하고, 낭떠러지에 올라선 마귀할멈은 벼락을 맞아 떨어져 죽는다는 설정이다. 즉 마침내 그들(백설공주와 백마 탄 왕자)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었답니다’로 마무리되는 상투적인 디즈니 세계관에서 일곱 난쟁이는 꽤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마녀의 최후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그 거울과 함께한다(그림 형제의 오리지널 동화에서는 백설공주의 못된 계모는 불에 달군 신발을 신고 껑충껑충 춤을 추다가 죽는다. 백설공주를 왕비로 맞는 왕자가 초대한 파티장에서다. 다소 끔찍한 설정이다). 그게 왜소증 커뮤니티에서 얻은 조언의 결과물이었을까. 제목에서 ‘일곱 난쟁이’라는 조연을 삭제하면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사라질까.
2025년판 백설공주가 더 나아간 지점
이 영화에는 독사과를 먹고 잠든 숲속의 공주를 구하는 ‘백마 탄 왕자’가 나오지 않는다. 백설공주의 짝은 대신 로빈 후드처럼 정의감이 강한 도적 청년 조너선이다. 영화의 절정부에서 여왕 경비대에 체포된 백설공주는 자신을 잡은 친위대 군인에게 “나는 당신을 알고 있고, 당신 부인과 아이들도 잘 알아요”라고 말하면서 여왕의 명령에 따라 백설공주를 잡는 ‘악행’에서 이탈하게 한다. 다른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차례차례 이름과 가족을 호명 받는 군인은 여왕의 명령에 불복종한다. 아, 이런 식으로 교화되는 게 가능하다고? 그냥 판타지라고 하기에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 분명 발전은 있다. 원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질문을 했을 때 마법 거울의 답은 아무래도 외모에 치우친 평가였다. 이번 영화가 조금 더 여성적 주체성을 강조한 점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못 만든 영화인 건 맞다. 이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스크린 밖에서 주연과 조연 배우가 각각 벌인 설화들
이 코너에서 언젠가 리뷰한 작품에서 갤 가돗의 시오니스트 논란을 언급했다. 이스라엘 출신인 모델 겸 배우, 게다가 군 복무 경력이 있는 갤 가돗이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논란은 2014년 7월 25일 갤 가돗이 자신의 딸과 함께 눈을 가린 사진과 함께 ‘나의 사랑과 기도를 이스라엘 시민들에게 보낸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비롯됐다(사진). 그는 글에서 ‘어린이와 여성 뒤에 숨어서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는’ 하마스에 맞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소년과 소녀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갤 가돗은 글에 ‘우리가 옳다’, ‘가자를 하마스로부터 자유롭게’, ‘이스라엘군에게 사랑’ 등의 해시태그를 붙였다. 이 페이스북 게시물 덕분에 그가 주연을 맡은 <원더우먼>(2017)은 과거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던 레바논 등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2019년 갤 가돗은 또 한 번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구설에 올랐다. 이스라엘 배우 로템 셀라가 인스타그램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국민을 위한 국가이며 아랍인도 인간이다”라고 쓴 글에 대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스라엘은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라고 주장하자 네타냐후를 비판하며 셀라를 지지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갤 가돗이 올린 글은 이렇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모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자기 자신처럼 모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치적 파벌, 종교, 인종을 뛰어넘어 평화, 평등, 상대방에 대한 인내를 가지고 폭력 아닌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글은 양쪽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시오니스트들에겐 “테러리스트들은 이웃이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방적 학살을 전쟁이라 불렀다며 갤 가돗의 나이브한 인식을 비판했다.
백설공주 역의 레이첼 지글러 역시 SNS발 설화가 끊이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뒤 “배역을 위해 내 피부를 표백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엑스(X)에 올린 것도 그랬고, 지난 미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며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을 향해 쏟아낸 말도 논란이 됐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선 SNS를 통해 일관되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유를!’이라고 주장해 이 영화의 주연과 조연 사이 불화설이 돌기도 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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