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본단자, 흥국생명·유럽 빅리그 '동시 우승' 도전

박진철 2025. 4. 1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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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사상 초유, 결과에 이목... 아본단자, '현 흥국 맴버' 강한 애착

[박진철 기자]

 아본단자 전 흥국생명 감독(맨 오른쪽), 2024-2025시즌 V리그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 후 트로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2025.4.8)
ⓒ 한국배구연맹
아본단자(55) 감독이 올 시즌 한국 V리그에서 흥국생명의 통합 우승을 이끈 직후, 곧바로 유럽으로 건너가 여자배구 세계 최정상급 리그인 튀르키예 리그 우승까지 도전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V리그 역사상 남녀 배구 통틀어 초유의 일이다. 배구계와 팬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본단자 감독은 지난 8일 2024-2025시즌 V리그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승리하면서 흥국생명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그런데 불과 3일 뒤인 11일, 튀르키예 리그의 페네르바체 팀 감독으로 전격 선임됐다. 그리고 12일부터 2024-2025시즌 튀르키예 리그 포스트시즌 경기를 지휘하고 있다.

해외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페네르바체 구단의 아본단자 감독 선임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유는 페네르바체 구단의 '다급한 요청' 때문이었다.

흥국 우승 후 4일 만에... 페네르바체 감독 '깜짝등장'

페네르바체는 지난 3월 12일 펼쳐진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9일 치러진 튀르키예 리그 포스트시즌 4강 플레이오프(3전2선승제) 1차전에서도 갈라타사라이에 세트 스코어 2-3으로 패했다. 가장 중요한 두 대회에서 목표인 우승은커녕 '조기 탈락'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결국 페네르바체 구단은 10일 마르코 페놀리오(55)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그리고 11일 아본단자 감독을 선임했다. 이후 펼쳐진 12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3-1, 14일 3차전에서 3-2로 모두 승리하면서 극적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다.

페네르바체는 오는 18일 새벽 1시(한국시간)에 라이벌 바크프방크와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펼친다. 챔피언결정전은 27일까지 5전3선승제로 진행된다. 결국 아본단자 감독은 올 시즌에 V리그 우승에 이어, 튀르키예 리그 우승까지 동시에 도전하게 됐다.

김연경의 해외 리그 친정 팀이기도 한 페네르바체는 세계적인 명문 팀이다. 올 시즌도 유럽 여자배구를 통틀어 빅5 안에 드는 강팀이다. 주전 멤버도 지난 시즌과 거의 동일하다. 튀르키예, 브라질, 러시아, 세르비아 등 세계 배구 강국의 대표팀 주전 멤버들로 구성된 호화 군단이다. 지난 시즌에는 튀르키예 리그 우승, 튀르키예 컵 우승, 유럽 챔피언스리그 3위를 차지했다.
 아본단자 페네르바체 감독, 2024-2025시즌 튀르키예 리그 포스트시즌 4강 플레이오프 2차전 지휘 모습 (2025.4.12)
ⓒ 페네르바체 홈피 캡처
페네르바체가 아본단자 감독 영입을 속전속결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이미 시즌 도중에도 영입 제안을 했었기 때문이다.

페네르바체 구단은 올 시즌 V리그 정규리그가 한창 진행 중인 지난 2월 중순경 아본단자 감독에게 '당장 와서 감독을 맡아줄 수 있느냐'고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해외 매체에서도 페네르바체의 아본단자 영입설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본단자 감독은 '시즌 도중 이적' 제안에 정중히 거절했다. 최애 제자인 김연경(37·192cm)이 은퇴 시즌인데다, 자신이 주도해서 구성한 흥국생명의 올 시즌 선수들에 대해 애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아본단자 감독은 지난 두 시즌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토대로 올 시즌은 자신의 구상대로 대대적인 선수 개편을 단행했다. 다른 구단에서 사실상 방출하다시피한 선수들을 트레이드로 영입해 주전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핵심 기준은 유럽식 선진 배구, 즉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해보려는 의지가 있느냐였다. 때문에 주전·비주전 가릴 것 없이 선수 전원이 아본단자가 추구하는 배구를 위해 똘똘 뭉칠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본단자호, 흥국생명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

흥국생명은 올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봄 배구 진출도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정규리그 초반부터 '절대 1강'의 위력을 뿜어냈다. 결국 정규리그에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과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통합 우승까지 달성했다.

특히 정규리그에서 여자배구 역사상 '최단 기간(최다 잔여 경기)'에 1위를 확정하는 신기록을 썼다. 또한 개막 이후 14연승을 질주하며 흥국생명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신기록까지 세웠다. 시즌 중반에 외국인 선수와 일부 주전 선수의 부상 여파로 한 차례 큰 위기가 찾아왔지만, 이를 조기에 극복하고 또다시 11연승을 질주했다.

또한 흥국생명은 올 시즌 통합 우승으로 V리그 여자부에서 정규리그 우승 역대 최다(7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역대 최다(5회), 통합 우승 역대 최다(4회)라는 독보적인 대기록을 완성했다. 이 3개 부문 우승 횟수가 다른 팀들과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김연경도 가장 완벽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선수 생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2005-2006시즌에 당시 18세로 V리그에 처음 데뷔한 신인임에도 신인상과 함께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수상하며 '통합 MVP'를 기록했는데, 올 시즌은 37세로 은퇴 시즌임에도 또다시 통합 MVP를 수상했다.

이는 프로배구는 물론,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농구 등 한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최초이자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불멸의 기록이다. 그러면서 '배구 황제'의 은퇴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대서사시가 됐다.

'정윤주 육성' 대성공... 비주전 선수들, 챔프전 대활약

아본단자 감독은 올 시즌에 정윤주(22·176cm)라는 신흥 스타를 육성하는 성과도 만들어냈다. 정윤주의 올 시즌 경기력과 각종 기록은 V리그 역사상 '최단 기간에 최고의 기량 발전'을 이룬 선수라고 평가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대한배구협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2025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아본단자 감독이 주위의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윤주를 김연경 대각 아웃사이드 히터 주전으로 밀어붙인 이유는 '공격 파워가 강하고 플레이 스타일의 과감성' 때문이었다.

정윤주뿐만 아니라 김다은(24), 박수연(22), 도수빈(27), 임혜림(21), 박혜진(23) 등 비주전 선수들도 지난 시즌보다 경기력과 안정감이 향상됐다. 이들은 모두 지난 8일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교체 맴버로 투입돼 주전 선수 못지않은 활약으로 통합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여자배구 최초, '완성도 높은' 유럽식 스피드 배구

아본단자 감독이 평가받아야 할 대목은 또 있다. 바로 올 시즌 흥국생명이 V리그 여자배구 역사상 최초로 유럽식 토털·스피드 배구를 가장 완성도 높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플레이 스타일 측면에서 배구 전문가와 팬들 사이에서 '한층 화려하고 재밌어졌다'는 호평이 많았다. 페네르바체의 아본단자 영입에 이 대목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에 유럽·남미 배구 강국의 스피드 배구에서 핵심 기술인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을 주전 윙 공격수 3명 전원이 수시로 구사했다. 미들블로커 활용도도 역대급으로 높았다. 특히 피치(29·183cm)의 이동 공격은 그 시도 수가 2위 선수보다 2배가 넘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러면서 후반기로 갈수록 김연경, 투트쿠, 정윤주, 피치 4명이 매 경기마다 1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흥국생명은 정규리그의 '팀 전체 기록' 부문에서 7개 팀 중 퀵오픈, 이동공격, 서브, 블로킹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세터의 세트는 6위, 리시브 4위, 디그 5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공격 다변화를 통해서 세터의 토스가 불안정하거나 리시브가 흔들리더라도 득점 성공률을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또한 서브의 강도와 목적타 구사 능력, 블로킹 조직력까지 한층 강화시켰다. 전형적인 유럽식 토털·스피드 배구를 구사한 것이다.

'딱 1년만' 선진 배구... 안타까운 여자배구 미래

문제는 흥국생명의 유럽식 토털·스피드 배구를 다음 시즌에는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본단자 감독이 다시 유럽 리그로 돌아갔고, 핵심인 김연경도 은퇴를 했다. 또한 흥국생명 구단은 차기 감독으로 일본 출신의 요시하라 토모코(55) 감독을 선임했다.

유럽식 토털·스피드 배구를 딱 1년만 팬들에게 선물하고, 바로 폐기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흥국생명 팀은 물론, 한국 여자배구의 수준과 발전적 측면에서도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이다.

목표가 낮아지면 그 목표조차 넘어설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여건이 어렵다고 더 높은 선진 배구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국 여자배구가 올림픽 등 메이저 국제대회에 다시 등장하는 시점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레이크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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