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적 가치 되새겨 [김숙정의 권리장전]

김숙정 변호사 2025. 4. 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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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국가의 존재 이유
성장과 발전 이전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 지켜줘야

(시사저널=김숙정 변호사)

4월4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전원이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을 경험했다. 탄핵소추 대리인단의 장순욱 변호사가 마지막 변론을 하면서 인용한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노랫말처럼, 우리는 헌법적 가치가 아름답게 재확인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그러나 법치주의 회복이 곧 모든 상처의 치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들, 진상 규명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들이 우리 앞에 여전히 무겁게 놓여 있다.

탄핵 결정 당일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환호하는 가운데, 보라색 자켓을 입은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안도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자리에는 지난 몇 년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통받았던 다양한 이가 함께했다. 비상계엄을 둘러싼 대립 속에서 소진된 국민적 에너지와 광장에서의 분열을 뒤로하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그러나 이 일상으로의 복귀에는 과거의 문제들을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진실 규명과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4월5일 민주노총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등이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린 사회대개혁 집회 및 승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사회적 혼란 청산하고 '제자리'로 돌아갈 때

온 국민이 잊을 수 없을 그날 2014년 4월16일. 방송을 통해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봐야 했다. 수많은 탑승자가 사망하고 실종되는 참담한 뉴스가 끊임없이 나왔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지만 유산의 위험이 커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던 필자로서는 배 속에서 열 달이나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말이지 어렵게 느껴졌고, 세상의 모든 부모가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열 달을 키워 아이를 만나 품에 안아보는 것도 기적인데 그 아이를 고등학생이 되도록, 성인이 되도록 키워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수학여행을 보낸 아이들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부모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당시 많은 이가 무언의 슬픔을 함께했다.

2022년 10월30일 일요일. 그날은 오후 2시에 첫째 아이의 친구들과 핼러윈 행사에 참석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몇 년 만에 마련된 행사였다. 일요일 아침, 세상이 뒤집힌 듯 믿을 수 없는 이태원 참사 보도가 계속되었고, 희생자는 늘어만 갔다. 결국 행사에 불참하기로 결정하고, 함께 TV 앞에 앉았다.

그날 뉴스에서는 세월호 참사도 다시 보도되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해인 2014년 세월호가 침몰하는 자료화면과 이태원 참사 현장의 영상을 보고, 아이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행사를 계획한 사람은 무엇을 했는지, 행사를 계획한 사람이 없다면 저 많은 사람의 죽음은 누가 책임지는지, 국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러면서 자신은 고등학생이 되더라도 절대 수학여행은 보내지 말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로부터 일 년을 채우지 못한 2023년 7월19일. 해병대 대원들이 구명조끼 없이 수색 작업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우리는 대한민국 군인이자, 국민이자, 소중한 아들을 잃었다. 장성한 청년들이 국가를 지키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했는데, 국가는 이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지켜주지 못한 것이 아니다. 장갑차가 철수할 정도로 빠른 유속의 강물에 구명조끼도 안전로프도 없이 입수해야 했던 이들이 희생되고 다쳤으며, 동료의 죽음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혐의자들 중 일부를 빼라, 혐의사실을 빼라, 이첩을 보류해라 전화를 돌려가며 책임만 축소하고자 했다. 군인은 국가를 지키는데, 군인의 생명과 안전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4월9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이 차분한 모습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참사의 공통점, 국가가 국민 지키지 못한 것

이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무엇이 제자리인가.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깨어진 정의와 신뢰를 복원하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채 해병 순직 사건, 그리고 비상계엄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까지, 이 모든 비극에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 더 정확히는 지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권력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뒤로 미루는 관행이 반복되어 왔다.

한 사람의 시민이자 법조인으로서 필자는 묻고 싶다. 우리가 국가에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성장과 발전, 국격의 향상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본질적인 존재 이유가 아닐까.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보장 의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 근거이자 국가권력 행사의 한계를 설정하는 기본 원칙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 어떤 화려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셈이다.

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법에 의해 제한되고 통제된다. 이러한 법치주의는 단순히 형식적 절차 준수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형식에 치우친 법치주의를 넘어, 국민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진정한 법치주의 회복의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본질적 존재 이유가 국민의 안전과 권리 보장에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국가권력이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순적 상황의 반복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헌법적 가치가 회복되는 이 봄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근본적 성찰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가치를 되새기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진실을 직시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제자리 찾기'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집을 나선 이들이 안전하고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사회, 국민의 일상이 온전하게 지켜지는 사회가 진정한 제자리 아닐까. 이제 우리는 탄핵이라는 헌정사적 과정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가는 전환점에 서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가슴을 치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좌절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과거의 상처와 책임을 잊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국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 나가야 할 그 자리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김숙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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