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갭투자는 뚝…‘큰손’ 투자처로 인기 식지 않을 듯

2025. 3. 22.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토허제 확대 시행…강남 불패 흔들릴까
정부와 서울시가 강남·서초·송파·용산구 아파트 약 2200개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 19일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잠실 일대 아파트 모습. 전민규 기자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 지난 주말 경기도 과천에 가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서울 동작대로를 지나면서 문득 이런 문구가 떠올랐다. ‘해자’가 적을 방어하기 위해 조성된 유형의 못이라면, ‘경제적 해자’는 돈에 의해 만들어진 무형의 못이다. 8차선의 동작대로는 ‘강남 콘크리트 캐슬’을 방어하기 위해 성 밖을 둘러싼 못처럼 느껴졌다.

동작대로는 강남의 서쪽 끝인 방배동과 접해 있다. 길만 건너면 동작구 사당동이다. 도로를 사이에 둔 가까운 이웃인데도 아파트값은 곱절 이상 차이가 난다. 방배동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서 비강남 주민은 동작대로를 넘어 이사할 수가 없다.

강남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3구를 지칭한다. 이들 지역 아파트는 총 37만7000가구 정도(부동산R114 기준)로 우리나라 아파트의 3% 남짓 된다. 강남은 주로 아파트로 형성된 거대한 부촌 벨트다. 전 세계적으로 아파트에서 매머드급 부촌이 형성된 것은 홍콩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곤 드문 일이다.

강남 부촌 벨트는 이들 3구를 넘어 공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제는 용산구나 성수동도 강남 아파트를 뺨칠 정도로 값이 비싸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강남 아파트 입성을 꿈꾼다. 실수요든, 투기적 수요든 사람이 몰리니 강남은 항상 집값 급등의 진앙지가 된다. 집주인은 불만이겠지만, 강남 아파트가 정부의 규제 1번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남 3구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가 3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6개월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지난달 12일 잠실·삼성·대치·청담동 허가구역 해제에 강남권 아파트값이 고공비행하고 오름세가 다른 지역까지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서울시와 정부가 긴급 진화에 나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6개월 이후에도 허가구역에서 풀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강남 규제 완화의 폭발성을 경험한 정부로선 더욱 몸을 사릴 것이다. 정부도 이번 발표에서 허가구역 연장을 단순 검토하는 게 아니라 ‘적극 검토’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금력 부족 3040, 강남 진입 더 어려워져
그래픽=정수경 기자 jung.suekyoung@joins.com
허가 대상은 아파트만 한정되고 다세대·빌라·단독주택·빌딩·일반 나대지는 제외된다. 가격 불안 가능성이 큰 아파트만 핀셋 규제하는 셈이다. 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아파트(대지면적 6㎡ 이상)를 살 때 여러모로 불편이 뒤따른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원칙적으로 실거주(2년) 목적의 무주택자만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 아파트를 살 수 있다. 갈아타기를 하는 유주택자는 예외로 인정하고 있으나 조심해야 한다. 아파트를 사고 난 뒤 종전 집을 1년 이내 처분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 부과라는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강남 3구와 용산구에서 아파트 갭투자는 더는 유용한 투자 방식이 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강남 3구의 갭투자 비율은 지난 2월 기준으로 43.6%로 서울 평균(37.5%)보다 훨씬 높지만 앞으로 뚝 떨어질 것이다. 강남권 밖 외지인 매수 비율(2025년 2월 62.4%)도 줄어들 게 불문가지다. 강남과 용산 아파트 시장은 실거주 위주로 급속 재편되면서 재고 대비 거래회전율이 낮아질 것이다. 시장의 관심은 향후 가격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동(洞)별로 허가구역으로 지정했을 때는 거래 감소 효과가 있었으나 가격 하락 효과는 미미했다. 허가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옆 동과 스마트폰으로 가격을 수시로 비교하니 키 맞추기식으로 시세가 형성되는 경향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강남과 용산 전체 아파트를 허가구역으로 지정해 비교할 만한 준거 대상이 없다. 따라서 동별 지정 때보다는 가격 안정 효과가 클 것이다. 또 전세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갭투자에 유리했던 일반 아파트가 재건축보다는 영향을 더 받을 가능성도 있다. 아파트 대체재인 고급 빌라나 상가주택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허가 없이도 아파트를 취득할 수 있는 법원 경매나 신규 분양시장 경쟁률이 뜨거워질 수도 있다.

다만, 자금 여력이 크지 않은 30~40대에겐 강남이나 용산 아파트 매입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그동안은 목돈이 모자라면 일단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산 뒤 돈을 모아 입주했다. 단계별 내 집 마련 전략이나 상급지 갈아타기로 갭투자를 활용했던 셈이다. 따라서 젊은 인구 중심으로 아파트 매매를 통한 신규 진입이 줄어드는 대신 전세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허가구역 확대에도 불구하고 주거 프리미엄을 갖는 강남과 용산 아파트 아성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 요즘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투자 트렌드 변화로 블루칩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거 노후 대책으로 꼬마빌딩이나 상가를 샀던 중장년층이 이제는 고가 아파트로 시선을 돌린다. 수익형 부동산은 관리가 번거로운 데다 내수경기 침체로 공실이 늘어나면서 투자 수요가 줄었다. 실제 ‘2025년 KB부동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고액 자산가 64%가 가장 선호하는 부동산 자산으로 아파트를 꼽았다.

지난 2020년 49%보다 15%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상가(24%→20%), 오피스 빌딩(12%→8%), 토지(8%→6%)는 모두 줄었다. ‘큰 손’ 사이에서도 강남이나 용산 같은 고가 아파트 쏠림 현상이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강남 거주 고령자를 중심으로 강남 부동산을 경유역이 아니라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인식변화도 생겨났다. 강남 아파트 매입 행렬은 줄겠지만, 강남 불패 인식이 강한 기존 거주자의 탈(脫)강남 현상은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허가구역 확대 지정으로 강남권 인접 지역(마포·성동·광진·강동·동작구) 등 옐로칩 지역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지역도 집값이 불안해지면 언제든지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풍선효과를 기대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호가대로 추격 매수하는 일은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