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나에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진다. 무기처럼 느껴진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7. 1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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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가다.

실제로 경험했던 하나의 사건이 우선이고,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을 책으로 집필 중인 아니 에르노 자신의 글쓰기가 이어진다.

기억과 재현의 과정을 거쳐 독자 손에 쥐이는 글쓰기는 소설이고, 그 소설을 쓰고 있는 나의 은밀한 심연은 일기이므로, 아니 에르노가 쓰는 한 권의 책은 '실화와 심연' 사이에 놓인 정거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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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 논란' 중심에 섰던 노벨문학상 작가의 글쓰는 심연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는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작가다.

대표작 '단순한 열정'은 유부남과의 불륜 체험을 날것 그대로 소설화해 외설 지적을 받았고, 또 다른 작품 '사건'은 본인이 1960년대 젊은 시절 겪었던 불법 임신 중절 경험을 소환해 문장에 박제했다.

그의 소설에 담긴 내용은 허구와 상상의 조합이 아니라 작가가 몸으로 겪은 리얼리티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방식은 그래서 논쟁적인데, 그가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전인 2005년 한국에서 출간됐던 대담집 '칼 같은 글쓰기'는 한 권의 책을 쓰는 마음을 넘어 '기억과 재현'의 문제를 질문한다. 작가에게 책이란, 잠깐의 허구일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는 문학이 주는 허구의 이미지를 "거부한다"고 이 책에서 밝힌다. 책이란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유 활동이 아니란 것. 그건 그야말로 육체적인, 그의 표현을 인용한다면 "살과 피의 영역"이다.

한 권의 책은 작가 본인과 출판사가 손을 잡고 만들어내는 '제조상품'일 수 있지만, 책은 상품 그 이상이라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책에 담긴 문장이 독자를 베고 찔러야 한다. 책들은 제조의 영역에 속할 수 없다고, 자신은 허구에 대한 거부에 자기 자신을 걸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글쓰기, 그게 아니 에르노의 작법이 된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형태는 '세 겹'이다.

실제로 경험했던 하나의 사건이 우선이고,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을 책으로 집필 중인 아니 에르노 자신의 글쓰기가 이어진다.

문제는 세 번째 층위인데,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은밀한 감정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소설과 다른 별도의 일기장을 쓴다는 것. 첫째 실제 사건, 둘째 그 사건을 쓰는 나(소설), 셋째 그 사건을 쓰고 있는 나의 내면을 담은 또 다른 글(일기)이 그것이다.

기억과 재현의 과정을 거쳐 독자 손에 쥐이는 글쓰기는 소설이고, 그 소설을 쓰고 있는 나의 은밀한 심연은 일기이므로, 아니 에르노가 쓰는 한 권의 책은 '실화와 심연' 사이에 놓인 정거장이 된다.

아니 에르노는 한 권의 책을 남기기 위한 글쓰기는 '잘 벼린 칼'이길 원한다고 이 책에 쓴다.

"내겐 글쓰기가 칼처럼 느껴진다. 거의 무기처럼 느껴진다. 내겐 그게 필요하다. 나는 삶 전체가 사람들의 삶과 생각 속에 완전히 용해되어 모두에게 이해 가능한 보편적인 무엇이 되길 바란다."

살갗을 뚫고 피가 흐르는 과정에서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아물고, 그 상처조차 육체와 정신의 일부가 된다. 그 고통은 하나의 질병 같은 아픔을 준다. 고통은 기억에 축적된다. 그 단호한 칼로 내 안을 찌르는 고통을 들여다보기, 그게 독서라고 아니 에르노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렇다. 작가의 칼은 먼저 자신을 베고, 이어 독자를 벤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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