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좋아하시나요, 그럼 이 만화를 보세요 [.txt]

구둘래 기자 2025. 1.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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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사람ㅣ 이창현·장띵인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스핀오프, ‘워스트셀러’ 연재
한겨레 .txt에서 연재를 시작하는 ‘워스트셀러’의 이창현 작가(왼쪽)와 장띵인 작가. 작가 제공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2018)은 이렇게 시작된다. 강유원 ‘책과 세계’의 인용문이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은 ‘에이스 하이’(2009) ‘빅토리아처럼 감아차라’(2016) 같은 전작에서도 최장집과 루카치 ‘소설의 이론’, 마키아벨리 ‘군주론’, 셰익스피어를 인용했던 이창현 작가의 독서력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다. 독서 중독자들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처럼 익명으로 모이되, 오직 책만 이야기한다. 완독하지 않는다, 차례부터 읽는다, 원서와 차례를 대조한다, 낙서하기 위해 책을 두 권 산다 등등 과장되거나 디테일한 유머는 책 읽는 사람들끼리의 수신호처럼 공감을 일으켰다. 그래서 클리셰·베스트셀러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고 환영, 환대, 우정, 사랑 등 진한 감정적인 단어와는 동떨어져 있는 이 모임, ‘중독성’이 강하다. 이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외전(스핀오프) ‘워스트셀러’가 한겨레에 연재된다. ‘워스트셀러’의 주인공은 로렌스. 소설가 지망생 로렌스는 어느 날 동화책 ‘구름다리에서 만나’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앞으로 로렌스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고급스럽고 세심한 유머는 약속할 수 있다.

이창현 작가와 오래 함께하던 유희 작가 대신 합류한 그림작가는 2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장띵인 작가이다. 말보다 글이라는 이창현 작가와 일본에 체류 중이어서 글이 편한 장띵인 작가의 인터뷰는 글로 이루어졌다. 텍스트(.txt) 지면답게.

―2024년 어떤 책을, 얼마나 읽었나. 1년 동안 읽은 책 중 한 권을 꼽아달라.

이창현 몇 권 읽었는지 따로 기록하지 않아 모르겠다. 완독이 기준이라면 정말 몇 권 안 될 가능성도 있다. 읽는 분야는 매년 비슷하다. 역사, 사회과학, 과학. 여기에 스파이 소설과 축구 전술 책을 더하면 된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의 ‘사자' 캐릭터와 취향이 같다. 2024년 새롭게 시도한 분야는 우주론. 사람들이 왜 천체물리학 책 같은 걸 읽는지 알게 됐다. 현실 도피용으로 좋다. 마감일이 가까워졌을 때 꺼내들면 되겠다. 2024년의 책은 리처드 오버리의 ‘피와 폐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늦은 건 늦었다고 인정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사에서만큼은 늦지 않았다. 2차대전사를 ‘피와 폐허’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다. ‘에이스 하이’ 작업 당시 오버리의 ‘러시아의 전쟁’을 참고했는데, ‘피와 폐허’를 읽고 충동이 다시 일었다. ‘워스트셀러’에서 본격적인 2차대전 에피소드는 무리일 듯하지만.

장띵인 만화책도 포함되나? 그렇다면 정말 많이 읽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솔직히 독서에 문외한이다. 이런 내가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스핀오프를 맡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래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었다. 가난한 예술인으로 살아가면서 경제에 대해 무지한 채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경제 서적 딱 한 권만 읽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창현 작가는 자신의 독서 취향이 사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1’의 한 장면. 사계절 제공

―지금 읽고 있는 책과 책 중 발췌문을 하나 꼽아주신다면.

이창현 ‘다르파 웨이’(애니 제이콥슨), ‘독일인의 전쟁 1939-1945’(니콜라스 스타가르트), ‘리처드 2세’(윌리엄 셰익스피어), ‘세계사의 탄생’(데이비드 크리스천), ‘음악을 듣는 법’(오카다 아케오), ‘진화하는 언어’(모텐 H. 크리스티안센, 닉 채터).

“추모 공간은 지나간 참사를 붙잡고 과거에 머물자는 의미가 아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 참사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상처를 보듬는 공간적 의례다. 다양한 의식과 기념물을 통해 재난을 기억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기억에 정주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공동체를 보듬고 독려해 재난 이후의 미래로 한 걸음 옮기게 하는 과정이다.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 '동네 평판이 나빠진다'라는 이유로 재난 피해자의 추모 공간 건립에 반대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님비'이다. 이는 여러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장기적인 대화의 장에 포함시키는 참여적인 방식의 거버넌스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홍성욱,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

장띵인 와야마 야마의 ‘여학교의 별’이라는 만화책을 즐겁게 읽고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정말 좋아한다.

‘여학교의 별’에 나오는 독서 클럽의 슈에게 바친다.

“슈크림의 슈는 프랑스어로 양배추라는 뜻이다. 슈크림의 생김새가 양배추랑 닮았기 때문이라고.”

―책을 읽을 때의 습관이 있나.

이창현 ‘재독'과 ‘신간 읽기' 비율이 3 : 7 정도였는데 요즘 6 : 4로 역전했다. 소득 양극화 심화에 따른 가계의 몰락 때문은 아니다. 그냥 패턴이 굳은 것 같다. 재역전시켜야겠다. 책에서 ①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 ② 다른 책과 연결되는 부분 ③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부분 ④ 작업에 아이디어가 돼줄 것 같은 부분에 각각 다른 모양으로 표시한다.

장띵인 책을 읽을 때 인상 깊은 구절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거나 펜으로 나만의 주석을 단다. 작가의 생각과 다를 경우 책 여백에 반박문을 꽤 길게 적어 놓기도 한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절대 하지 않는다! 책을 고를 때 표지를 중요하게 본다. 그 후에 목차를 보고 흥미가 생기면 읽기 시작한다.

―로렌스가 스핀오프의 주인공이 된 이유는.

이창현 댓글도 읽지 않고 SNS도 하지 않아, 몇 번 안 되는 북토크에서의 반응을 근거로 말하자면, 독자들은 ‘노마드'와 ‘로렌스' 캐릭터를 좋아한다. 둘 다 의외였기 때문에 내가 왜 인기 작가가 되지 못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로렌스의 황당한 소설들이 재밌고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기술적인 이유도 있다. 소설가 힐러리 맨틀은 구상했던 모든 요소를 작품 안에 담는데 어려움을 겪다가 두 개의 소설로 나눈다는 산뜻한 결단을 내리고 ‘울프홀’과 ‘시체들을 끌어내라’를 썼다고 한다. 나도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3권에서 로렌스 파트를 따로 빼면 작업이 깔끔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로렌스의 더 기이한 면을 ‘워스트셀러’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자’나 ‘고슬링'처럼 메마른 캐릭터가 아니어서 작업이 다채로울 것 같다.

―장 작가님은 일본에서 어떻게 지내나.

장띵인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 와 있다. 친척분이 근무하는 호텔에 와 있는데, 호텔이 해발 800m 깊은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자연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직원들이 사슴이나 멧돼지를 사냥해 와서 바비큐 파티를 연 적도 있고 (생각보다 맛있다), 목욕탕에 너구리가 몰래 들어와 온천을 즐기고 있던 적도 있다. 이외에도 일상 만화로 그리면 재미있을 만한 에피소드가 많다. 언젠가 꼭 그려보고 싶다.

―작업의 합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상대방에 관해서 이야기해준다면.

이창현 단편 만화 두 편을 보고 같이 작업하자고 연락했다. 아니, 지금 너무 쿨하게 적었다. 사태는 이렇지 않다. 그냥 처음 펼친 단편의 앞부분 몇 컷만으로 젊은 마에스트로의 등장을 직감하고 전율했다. 눈까지 떨렸다. 마그네슘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연출력에 반했다.

장띵인 글 콘티를 넘겨받을 때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파일을 열어본다. 이창현 작가님의 잔잔하면서도 피식 웃게 하는 독특한 개그 코드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작업하는 내내 즐겁다. 그림 콘티나 완성본을 보내드릴 때마다 항상 아낌없는 칭찬을 해줘서 큰 자신감을 얻고 있다.

―연재를 시작하는 각오와 한겨레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창현 신문 만화로 이 업계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신문 만화로 돌아왔다. 장띵인 작가와 나 둘 다 무탈하게 연재 완료했으면 좋겠다. 한겨레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독자 여러분 중 케이(K)리그 응원팀이 없는 분은 이번 시즌 대전 하나 시티즌을 응원하며 금요일엔 ‘워스트셀러’, 주말엔 축구를….

장띵인 데뷔작으로 한겨레 독자분들과 만나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올해는 ‘워스트셀러’와 함께 웃음과 감동을 나눌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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