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통에 총탄 흔적 9곳, 네 발은 관통했다는 뜻”…6.25 전사자의 삶, 되살려내는 이 남자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2025. 1. 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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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 유품 보존·복원하는 이재성 학예연구사
아직 땅에 묻힌 전사자 12만명
신원 확인에 유품 결정적 역할
백마고지 등서 1300여점 수습
“전쟁의 참상·군인들의 이야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하죠”
‘대한민국 공무원상’ 표창도
이재성 학예연구사가 한반도 6.25전쟁 격전지에서 발굴된 ZBvz.26 기관총을 복원하기 위해 연구실에서 유품을 살펴보고 있다.
1950년 6월부터 3년1개월 동안 이어진 6·25전쟁은 한민족의 최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힌다.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12만명이 넘는 전사자들이 땅에 묻혀 고향으로 귀환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유해와 유품을 수습하고 있지만 발굴 지역이 넓어지면서 보존해야 할 유품도 늘어나고 있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2020년부터 국방부와 함께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굴된 유품의 보존처리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약 5년간 화살머리고지, 백마고지 같은 격전지에서 1300점이 넘는 유품을 수습했다. 팀원 6명과 함께 이 작업을 책임져온 이재성 학예연구사는 지난 2일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제10회 대한민국 공무원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3일 이 학예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전사자 유품은 단순한 유류품이나 물건이 아니라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 한 사람의 개인과 교감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보존처리 업무 또한 일반적인 문화재 보존과 달리 당시의 참상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품에 담긴 동시대성이 마치 내 이웃들의 사연을 듣는 것 같아 특히 조심했다”고 덧붙였다.

통상의 유품 보존처리 기술은 재질에 따라 맞춤형으로 진행한다. 유물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클리닝 작업부터 부식된 찌꺼기를 제거하고 안정화하는 탈염, 추가 훼손을 막는 강화 절차가 해당한다. 방사선을 활용한 비파괴조사 기술도 사용한다. 2000년부터 문화재 보존처리 업무를 맡은 이 학예사는 그중에서도 금속 재질에 전문성을 보이고 있다.

이 학예사에 따르면 6·25전쟁 유품의 보존은 또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다. 유품이 전장에 누운 인물이 누구인지 신원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사자 유품 보존처리에 약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실체현미경 조사와 X선, CT 촬영으로 보존 상태를 파악하고 신원 정보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앞선 과정을 밟는다.

보존 물품 중에는 무기도 포함돼 있어 그에 맞는 작업 절차도 새로 만들었다. 수습된 총기 중에는 탄환이 장전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유품은 열을 가하거나 압력에 변화를 주는 고대 유물 보존처리 방법을 적용하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 학예사는 “6·25전쟁 전사자 유품은 대부분 근현대에 제작한 것으로 기존의 유적지 출토 매장 유산보다 종류가 다양하고, 손상되는 속도나 부식의 양상이 다르다”며 “기존에는 그냥 지나쳤을 나무나 천, 플라스틱 등도 유품의 일부일 수 있는 만큼 자세히 살펴본다”고 설명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추가 단서를 확보하는 경험도 얻었다. 통상 신원 확인은 현장 발굴 업무를 맡고 있는 국방부를 통해 대부분 이뤄지지만, 육안으로는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낸 것이다. 화살머리고지에서 출토된 숟가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연구사 등은 현미경 관찰을 통해 손잡이 부분에 소유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자 3개 등 총 6군데에서 신원 정보를 확보했다.

유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간접 체험한 경험도 공유했다. 2019년 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고(故) 임병호 일등중사의 구멍 뚫린 수통이 그랬다. 추가 조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임 일등중사는 정전협정 14일을 남겨둔 1953년 7월 13일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 학예사는 “수통에 총탄 흔적이 9곳 있는데 이는 최소 총알 네 발이 관통했다는 뜻”이라며 “어린 나이에 전사한 그가 느꼈을 두려움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 학예사의 6·25전쟁 유품 보존처리는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평소에는 신라시대 문화유산의 보존작업 등 업무를 맡다가 국방부의 요청이 있으면 곧바로 참여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그는 1300여 점의 유품을 보존하는 기간 동안 강원도 양양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불상을 복원했고, 국보인 창경궁 자격루 보존 작업 중에는 보물에 새겨진 제작자 4명을 추가로 찾아냈다.

이 학예사는 “6·25전쟁 전사자들의 목소리를 유품으로 발굴해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생각에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며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다른 6명의 팀원들과 시너지를 내며 보존에 참여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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