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른한테도 어려워요"…'데미안' 안내서 연이어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단지 내 안에서 솟아나려던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리 힘들었을까?"
이처럼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헤르만 헤세(1877∼1962)의 소설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출간되자마자 화제가 됐고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꼽힌다.
'데미안'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내면을 성찰하고 성장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담은 작품이다. 평생 구도자(求道者)를 자처한 헤세의 대표작이다.
이미 유명 작가였던 헤세는 소설 속 화자의 이름인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가 신인 작가에게만 수여하는 폰타네상을 받는 해프닝까지 벌어진다. 이후 헤세의 작품이라는 점이 알려져 상을 반납한다.
한국에서도 '데미안'은 꼭 한 번 읽어야 할 청소년 필독서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교보문고가 발표한 지난달 1∼3주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민음사의 '데미안'은 전체 92위, 외국 소설 중 7위를 차지했다. 이 기간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가장 많이 팔렸다.
다만 유명세나 높은 평가와 별개로 '데미안'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로도 꼽힌다.
초반부는 비교적 쉽게 읽힌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난 싱클레어가 유년 시절 동네 불량아 프란츠 크로머의 비위를 맞추느라 하지도 않은 도둑질을 했다고 허풍을 떨었다가 협박에 시달리고, 그런 싱클레어를 데미안이 구해주는 내용이다.
그러나 싱클레어가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중반부터는 어려워진다. 사건 줄거리보다 내면적 성찰과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꿈의 해석 등 분석심리학에 기반한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이 등장한다.
이 같은 난해함과 뛰어난 작품성 때문에 '데미안'을 더 쉽고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이 펴낸 '데미안' 한국어 번역본(이인웅 옮김)에는 독일 본 대학교에서 헤르만 헤세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공주대 독어독문학과 신혜선 교수의 '데미안 깊이 읽기'가 129쪽 분량으로 실렸다.
이 글에는 헤세가 '데미안'을 집필한 1917년 전후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과 그에게 영감을 준 분석심리학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신 교수는 "'데미안'에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주장하는 중요한 개념들이 문학적 상징으로 여럿 표현되어 있다"며 "'데미안'에 내재된 심층적 의미를 이해하려면 융의 분석심리학 이해가 불가결하다"고 설명했다.
헤세는 '데미안'을 집필하기 한 해 전인 1916년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융의 제자인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에게 심리 분석 치료를 받고 랑의 주선으로 융을 만난다. 이는 헤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자연히 '데미안'의 내용에도 반영됐다.
예를 들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아브락사스'라는 생소한 신의 이름이 등장해 독자들을 당황케 한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원래 아브락사스는 마술적 주문 '아브라카타브라'이자 그노시스파 신의 이름"이라며 "융과 랑 박사의 영향을 유추해볼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융과 랑 박사 두 사람 모두는 그노시스(영지주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며 "헤세는 융과 첫 만남에서 그노시스와 중국 철학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으며, 매우 가치 있고 흥미진진했다고 (일기에)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발간된 작가 겸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데미안 프로젝트' 역시 '데미안'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안내서다.
정여울은 유튜브 누적 조회수 50만 이상을 기록한 '데미안'에 대한 그의 강연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데미안'이 집필된 역사적인 배경이나 심층적인 해석보다는 가급적 쉬운 어휘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데미안 깊이 읽기'와 '데미안 프로젝트'는 모두 '데미안'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집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편집자 홍혜련은 "학교 다닐 적 처음 읽을 때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다"고 고백했다.
신 교수는 "한국에서 '데미안'은 '성장 소설' 또는 '교육 소설'이라는 한 면에만 너무 치우쳐 있었다"며 "헤세가 제시한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사유는 외부 세계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도출된 것인데, 이러한 배경적 이해는 거세되고 내면적 승화만을 너무 강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여울은 책의 '여는 말'에서 "'데미안'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에 남몰래 괴로웠던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 데미안 = 헤르만 헤세 지음. 이인웅 옮김. 466쪽.
▲ 데미안 프로젝트 = 정여울 지음. 268쪽.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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