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독주회, 아직 생생히 기억…AI시대, 클래식 같은 슬로뮤직 필요”
피아노를 배우던 일곱 살 소년 양성원은 1975년 3월 이화여대 강당에서 거장 야노스 슈타커(1924~2013)의 독주회에서 큰 감동을 받고 첼로로 전향했다.
한국 첼로계의 간판 스타로 꼽히는 첼리스트 양성원(58)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신영체임버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50년 전 독주회가 아직도 기억난다”면서 “그날 이후 첼로와 함께하는 인생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1세대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슈타커 선생님이 첼로를 일곱 살에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와 같은 나이에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에 기뻤죠. 선생님은 언제나 저의 ‘아이돌’이었습니다.”
양성원은 파리 음악원을 졸업한 후 19세이던 1986년 인디애나대학교 음대에서 마침내 존경하던 슈타커의 제자가 됐다. 양성원이 EMI에서 낸 데뷔 음반도 슈타커의 전매특허와도 같았던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였다. 이 음반은 2003년 영국의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의 ‘에디터스 초이스’와 ‘크리틱스 초이스’에 선정돼 격찬받았다.
첼로 인생 50년을 맞아 때마침 데카 레이블에서 그의 10번째 앨범 <에코 오브 엘레지>가 발매됐다. 이번 앨범의 주인공은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1857~1934). 엘가 만년의 두 대표작인 첼로 협주곡과 피아노 5중주가 담겼다. 두 곡 모두 쓸쓸한 애가(哀歌)의 정서가 짙은 작품이다. 첼로 협주곡은 오스트리아 지휘자 한스 그라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초연한 악단이다. 피아노 5중주는 피아니스트 박재홍,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임지영,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함께 연주했다. 양성원은 “첼로 협주곡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한 애도가 담겨 있는 곡이고, 피아노 5중주는 엘가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에 듣고 싶다고 했던 곡”이라고 설명했다.
다음달 27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수원시향의 협연으로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차이콥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엘가의 첼로 협주곡,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 등 첼로 협주곡 세 곡을 하루에 연주하는 것이다. “협주곡 세 개를 하루에 하는 게 더 쉬울지, 진짜 마라톤을 하는 게 더 쉬울지 모르겠습니다(웃음). 작곡가들의 걸작은 자신들의 인생에 대한 고백인데, 이번 연주회는 제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양성원도 잠시 첼로를 그만두려고 했던 순간이 있다. “파리 음악원은 경쟁이 심했는데, 음악을 경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직업을 가져보려고 했습니다. 인디애나 음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연주장을 오가는 삶 대신 자연과 가까운 삶을 사는 게 어떨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두 번 다 오래 못 가 첼로 케이스를 다시 열었죠.” 그는 “첼로를 계속하게 만든 힘은 다른 연주자들의 훌륭한 공연에서 받은 감동”이라고 말했다.
양성원은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푸드가 몸에 좋은 것처럼 “인공지능(AI) 시대에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슬로뮤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유산인 클래식 음악을 잘 전달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앞으로의 음악 여정은 다음 세대들이 훨씬 더 따뜻한 느낌으로 이 직업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한다”면서 “다만 최고의 스타들 말고도 세계적 수준의 연주를 할 수 있는 연주자들이 많으니 그들의 공연도 자주 찾아와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선 코앞’ 문재인 전 대통령 기소…검찰, 당사자 조사도 없이 “뇌물 공범”
- [속보]‘경북 산불’ 피의자 2명 구속영장 기각···“도망·증거 인멸 소명 부족”
- “폭행치상 전혀 없다”던 김문수, 토론회 직후 ‘정정 자료’···이재명 사례 의식했나
- 농구교실 1억8000만원 횡령·배임···강동희 전 프로농구 감독 징역 1년 2개월
- [속보]‘성소수자 축복’ 이후 2년 정직 징계받은 이동환 목사, 항소심도 패소
- ‘공군기지 무단 촬영’ 중국인들, 석방 이틀 만에 또 군사시설 찍다 적발
- 문중원 기수 죽음 내몬 ‘마사회 비리’…6년 만에 유죄 확정
- ‘안보’ 이유로…증인 신문도 공개 안 하는 ‘내란 공범 재판’
- 이재명 싱크탱크 ‘성장과통합’ 내부 주도권 다툼에 와해 위기
- [단독] “의대생 문제는 일단 주호랑 빨리 해결해야”···메디스태프에 ‘의대생 복귀’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