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 없는 애니메이션, 골든 리트리버·고양이가 마음 움직이네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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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
ⓒ 판씨네마㈜ |
01.
인류의 흔적이 가득한 세상, 종말이라도 맞이한 듯 그 자취 위에서 동물만이 산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홍수를 맞이한 고양이는 떠돌던 배 하나를 발견한다. 벌써 타고 있던 카피바라를 시작으로 여우원숭이와 골든 리트리버, 뱀잡이수리가 차례로 탑승하면서, 이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정을 함께한다. 지난 2일 열린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한 <플로우>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신작이다. 그동안 연출은 물론 각본과 디자인 작화와 작곡까지 애니메이션의 거의 모든 단계를 홀로 작업해 왔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협업을 경험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의인화하여 직접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대신 직관적인 감정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일부 장면을 통해서는 통상적으로 알려진 동물의 행위를 활용해 비언어적 전달 매개로 이용한다. 우리가 현실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동물의 행동만으로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 스크린과 수용자 사이에 적용되는 셈이다. 대사를 활용하는 방식보다 관객이 조금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지점이다.
02.
타이틀이 등장한 이후 처음의 컷은 물 위에 떠 있는 카메라가 땅 위의 동물들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카메라가 설치된 작은 돛단배 혹은 뗏목이 조류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후 앵글이 육지로 올라온 이후에도 다양한 위치와 방향으로 대상을 포착해 내지만, 그 움직임은 계속해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며 동적인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런 앵글의 미묘한 움직임 또한 비언어적 매개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지금 이야기했던 처음의 움직임은 마치 앞으로 이어질 여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 그룹이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범람(홍수) 이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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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
ⓒ 판씨네마㈜ |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관계적 측면에 있어서는 크게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분명 관계의 성장에 대한 서사를 담아내고 있다. 서로 다른 종(種)인 이들 모두의 관계는 오해와 갈등으로 시작된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받아들이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잠기기 시작한 보금자리로 강아지들이 탄 배가 처음 다가왔을 때 선뜻 오르지 못하는 고양이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타고 난 뒤에야 카피바라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있지만)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을 정도로 내몰리고 난 후에 낯선 존재의 공간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 역시 같은 맥락. 윤리와 법이라는 합의와 양심 안에서 같은 종끼리 살아가는 인간도 그런 모습인데, 서로 다른 종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동물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영화, 생각지도 못한 구석에서 이상하게 현실적이다.
하나의 팀이 되어 고난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기본 서사지만, 마냥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낯선 존재인 고양이의 처분을 두고 격렬한 다툼을 벌이는 뱀잡이수리 집단의 모습은 앞서 이야기했던 '관계'라는 것이 사랑과 이해는 물론 갈등과 오해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관계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작은 갈등을 여러 번 경험하는 배 안의 동물 무리를 벗어나 영화가 잠시 시선을 돌려 그들 집단을 비추는 것 또한, 배라는 일시적인 구속력을 가진 닫힌 공간 속 서로 다른 집단이 아닌, 열린 공간에 놓인 동일한 집단에서도 통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갑자기 서로를 의지하게 된 무리의 갈등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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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
ⓒ 판씨네마㈜ |
물속에 빠져있던 고양이가 너무 뽀송하다. 최근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기술력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보여주고 있는, 털 한 올 한 올이 흩날리는 모습도 이 작품에선 만날 수 없다. 겨우 350만 달러로 완성된 작품에서, 예산이 빠듯해 제작된 모든 장면을 최종 컷에 포함시켜야 했던, 그리고 무료 오픈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제작하고 렌더링했던 작품에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대사 하나 없이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아무 작품이나 가질 수 없는 매력이 아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영화 <플로우>는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주의 깊게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고양이가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반영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몇 차례 등장하는 이 모습은 점차 성장해 가는 존재의 심리적 변화를 투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홍수가 끝나고 난 뒤에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거대한 존재에 대한 특정한 선택 또한 그 모습 속에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엔딩크레딧 이후의 짧은 쿠키로 알 수 있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을지가 의미를 가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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