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벌어지는 전대미문의 경제학 실험 [PADO]
[편집자주] 흔히 'RCT'라는 약자로 불리는 무작위 통제실험은 인간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를 최대한 차단하여 가장 객관적인 실험 결과를 낳기 위한 기법으로 과학에서는 '성배'처럼 여겨집니다. 우리에게는 의약품이나 치료기법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죠. 그런데 만약에 경제학에서도 이런 실험이 가능하다면 어떨까요?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은 경제학 연구에 RCT를 도입한 선구자들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는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의 3월 1일 기사에서는 '기브디렉틀리'라는 자선단체가 후원하는 케냐에서 실시 중인 연구를 주로 다룹니다. 기브디렉틀리는 오래 전부터 저개발국의 사람들을 돕는 데 현물 지원보다는 현금 지원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철학을 갖고 구호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이에 대한 연구의 결론이 어떻게 날 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연구가 한국 사회 일각에서도 종종 거론되는 '기본소득' 제도와 연관돼 거론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2022년 3월 초, 케냐 서부에 위치한 오켈라-C 마을 주민들은 봄비가 오기 전 밭에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자녀 여섯 명을 둔 45세 피터 오테도는 아침 내내 집 뒤에 있는 농지에서 작업을 했다. 그의 집은 철골판 지붕에 바닥에는 패턴 타일이 깔린 튼튼한 방 두 개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그는 2년에 걸쳐 이 집과 주방이 딸려있는 진흙 벽 건물을 근처에 함께 지었다. 그전까지 오테도의 가족은 초가지붕에 물이 새는 단칸 오두막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예전 집에서는 밤에 푹 잘 수가 없었어요." 이 마을 토박이인 오테도의 말이다. 적어도 오켈라-C 마을의 기준에서 보면 오테도와 그의 가족은 잘 사는 편이다. 그의 아내는 가사도우미로 꾸준히 일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낼 형편은 된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63세 내지 64세로 추정되는 오테도의 이웃 모리스 마렌디도 이 마을 출신이다. 오테도와 달리 마렌디의 집은 진흙과 나뭇가지, 모래, 덩굴로 만든 허름한 오두막으로 어린 아카시아 나무를 심어놓은 큰 대지에 지어져 있으며, 집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다. 그는 이웃의 집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하고 화장실은 말린 옥수수 잎으로 가린 옥외 별채에서 해결한다. 부인이 2007년 세상을 떠나면서 네 아이를 부양하는 것은 그의 몫이 되었다. 3년 후에는 딸 하나가 신장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는 언젠가 막내아들을 기술학교에 보내기를 꿈꾸고 있지만, 아직은 그럴 돈이 없다.
오테도와 마렌디가 태어난 환경은 케냐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비슷하지만 지금은 매우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이 사는 마을이 2011년에 경제 실험 참여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자선단체 기브디렉틀리(GiveDirectly)의 목표는 개발도상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 빈곤을 완화하는 것이다. 기브디렉틀리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단체는 2009년부터 "150만여 명의 빈곤층에게 7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직접 지급했다".
현금 원조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해 이 단체는 무작위 통제실험(RCT)이라는 일종의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모기장이나 휴대전화의 영향을 파악하는 데 관심이 많은 연구자들이 무작위로 선정한 '실험그룹'의 모든 구성원에게는 물품을 제공하고, '통제그룹'에게는 제공하지 않는다. 두 집단은 수년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모니터링을 받았고, 학자들과 개발 단체가 그 결과를 면밀히 조사했다. "기본적으로 가능한 세계를 다양하게 관찰하려고 합니다. '개입(변수)'이 실험그룹과 통제그룹의 유일한 차이가 되도록 [실험을] 구성하고 싶어 하지요. 이것이 무작위 통제실험의 마력이죠." 나이로비 소재 부사라 행동경제학연구소의 행동경제학자 패트릭 포셔의 말이다.
통제그룹 마을의 주민들은 무작위 알고리즘이 자신들에게 적용되었더라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매일 지켜보게 되었다.
무작위 통제실험이라면 흔히 의학 임상실험을 떠올리지만, 지난 20년 동안 무작위 통제실험은 개발경제학자들이 개발원조금의 지출 방식을 고안하는 수단으로 인기를 끌었다. 다양한 원조 유형의 효과를 비교하던 연구자들은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주로 관찰 연구와 수집한 데이터 분석에 의존했다. '무작위주의자'로 알려진 무작위 통제실험 세대는 학계의 상아탑에서 내려와 현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단순히 관찰만 하지 않고 실험을 통해 사람들의 삶에 개입했다. 어떨 때는 실험 대상과 대상이 아닌 이들의 직접 비교가 가능하도록 정교한 실험을 설계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무작위주의자'의 대표주자인 마이클 크레머와 에스테르 뒤플로 아브히지트 바네르지가 무작위 통제실험을 활용하여 전 세계의 빈곤을 경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가 "실생활에서 인류의 빈곤 퇴치 능력을 크게 개선"했고 "이들의 실험 연구 방식이 지금의 개발경제학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 수상 근거였다. 세 학자의 제자들은 전 세계 최상위 경제학과에 포진해 있다. "한때 우리는 독창적인 연구를 하는 신세대였지만 지금은 우리의 연구가 일반적인 작업이 되었어요." 뒤플로가 내게 한 말이다. 노벨상보다 "일반성을 보증하는 것은 없겠죠." 빈곤 퇴치를 위해 노력하는 경제학자들에게는 무작위 통제실험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계속)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subin.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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