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과 달라도 이의제기 불가?… '신탁사 불공정 계약' 무더기 적발
계약 당시 설명과 다른 ‘불완전 계약’ 피해 가장 많아
설계 변경‧신탁사 면책에 이의제기 금지 등 소비자에 불리
#. 지난해 7월 소비자 A씨는 한 오피스텔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상담하는 과정에서 사업자 B씨에게 ‘지금은 가계약금만 우선 입금하고, 추후 잔여 계약금을 입금할 때 정식계약으로 인정해 계약서를 제공하겠다’는 안내를 받고 가계약금 1천만원을 지급했다. A씨가 지급 다음 날 변심으로 계약 취소 및 가계약금 환급을 요청하자 B씨는 이미 계약이 정식 체결됐으므로 총 공급금액의 10%인 6천800만원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며 환급을 거절했다.
5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최근 5년 6개월간(2018년 1월∼올해 6월)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신탁사 관련 피해구제 신청사례는 총 103건인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유형별로는 주요 사항에 대한 설명 및 고지가 미흡하거나 계약 당시 설명과 실제 계약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불완전 계약’이 54건(52.4%)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사실과 다른 표시‧광고’ 15건(14.6%), 입주 지연 등 ‘계약 이행 지연’ 14건(13.6%), ‘청약철회 거부‧지연’ 13건(12.6%) 등의 순이었다.
이와 함께 소비자원은 지난해 국내 12개 부동산 신탁사가 사업 주체로서 전국에 공급한 아파트 분양계약서 136개를 대상으로 ‘아파트 표준 공급계약서’ 준수 여부 및 기타 계약사항의 불공정성을 검토한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부동산신탁사는 KB부동산, 교보자산, 대신자산, 대한토지, 무궁화, 신영부동산, 신한자산, 우리자산, 코람코자산, 코리아, 하나자산, 한국자산, 한국토지, 한국투자부동산 등 총 14개이지만, 이번에는 12개 신탁사만 자료를 제출했다.
소비자원 조사 결과, 136개 공급계약서 중 97개(71.3%)는 세대 내부 구조‧마감재 등 경미한 사항의 설계·시공 관련 변경 통지 의무를 명시하지 않았다.
특히 이 중 48개(35.3%)는 경미한 사항의 변경에 대한 소비자의 이의제기조차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법’상 경미한 사항은 세대당 공급면적을 변경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부 구조의 위치나 면적, 내‧외장 재료 등을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표준계약서는 경미한 사항의 변경에 대해 6개월 이하의 기간마다 변경 내용을 모아 소비자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자들이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아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3월 소비자 C씨는 아파트 모델하우스 방문 및 카탈로그를 통해 지하 공간에 2개의 창호가 설치될 예정임을 확인하고 계약했지만, 입주 점검 시 지하 공간에 창호가 1개밖에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사업자 D씨에게 이의제기를 했으나, D씨는 계약서를 통해 경미한 사항의 변경에 대한 동의를 사전에 받았다며 손해배상을 거부했다.
136개 공급계약서 중 71개(52.2%)는 ‘사업자가 계약 이행에 착수한 후’에는 계약 해제‧해지를 어렵게 하고, 사업자 귀책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 조항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는 표준계약서보다 불리한 것으로, 표준계약서는 중도금을 1회 납부하기 전까지는 소비자 사정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가 가능하며, 사업자 귀책으로 인한 계약 해제‧해지 사유도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원 측은 “주택 분양계약 체결 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이 사업자의 의무‧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표준계약서 사용을 장려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조사대상 136개 계약서 모두 ‘신탁계약 종료‧해제 시 부동산신탁사의 소비자에 대한 모든 권리‧의무를 시행위탁자에게 면책적으로 포괄 승계한다’는 조항을 담고 있었다.
해당 조항의 경우 표준계약서에는 없지만, 신탁사가 불법행위 또는 중대 과실을 일으키는 등 귀책이 있는 경우에도 신탁사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중 20개(14.7%)는 신탁사 면책에 대한 이의제기도 금지하는 등 소비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또한, 조사대상 중 102개(75.0%)는 ‘인지세법’에 명시된 내용과 달리 소비자가 인지세 전액을 부담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지세법’에 따라 부동산 소유권 이전 시 약 15∼35만 원의 인지세가 발생하는데, 2인 이상이 공동으로 계약서 등의 문서를 작성하는 경우 해당 문서에 대한 인지세를 연대해 납부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업 주체와 소비자가 인지세를 50%씩 부담하는 계약서는 6개(4.4%)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아파트 분양계약 시 사업 주체와 입주자가 인지세를 나눠서 납부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준계약서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를 반영한 표준계약서 개정작업을 진행 중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부동산신탁사에 ‘아파트 표준 공급계약서’를 준수하고 신탁사의 면책조항 및 인지세 부담 주체 등 소비자에게 불리한 계약사항을 개선하도록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관부처에는 불완전 계약 체결 등 부당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아파트 분양시장 관리‧감독 강화를 요청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수정 기자 ksj@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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