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 대통령제 수명 다해..거대 담합구조 깨야 미래 있다

이상덕,전정홍,전범주,김명환,김세웅,김효성,정의현,나현준,부장원 2016. 10. 2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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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흔들..중국 특수·삼성 특수 안주 큰 그림 못 그려스스로 신뢰 잃은 정치·무기력해진 관료..거버넌스 붕괴남아있는 추격의 힘으로 정부·시장 동시실패 극복 나서야

◆ B급 국가 바이러스 ⑬ /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의 고언 ◆

"한국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선진도상국 증후군'에 빠져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용솟음치는 힘이 남아 있다. 추격의 힘이 남아 있을 때 거버넌스를 정비하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에 있는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나 한국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이렇게 규정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대한민국호를 수리하지 않으면 대변환에 실패할 수밖에 없고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해진다는 주장이다. 'B급국가 바이러스…무너지는 국가시스템' 시리즈를 마치면서 정 이사장에게 한국의 개혁 방향을 들었다.

―한국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가.

▶한국은 선진도상국 증후군에 빠졌다고 본다. 우리가 이제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은 아니다. 하지만 소득 수준, 경제력, 군사력 등 외형적 조건은 선진국이나 선진국으로 부르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고 선진국 문지방을 못 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자평이다. 선진국에 가 보면 시스템이 놀랍다. 모든 개인이 각 시점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왜 우리는 정체기의 늪에 빠졌는가. 미래 희망을 잃고 방향감각 없이 길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균열 상태의 국가 리더십과 천박한 사회 리더십이 이끌어가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후진국은 안 돼도 포르투갈, 그리스처럼 취약하고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국가가 될 것이다.

―한국 사회가 바뀔 수 있나.

▶생존 방정식과 통일 방정식을 연립방정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의 역사적 소명이다. 우리의 생존 기반이 튼튼해야 통일 기반이 확고해지는데 지금 양쪽 모두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경제를 리바운드하는 데 약 8년이 걸렸다. 영국은 시스템 변화와 혁신을 통해 3년 만에 제 성장률을 찾았다. 나는 한국이 개혁을 위한 체제를 다 갖추고 본격 개혁하면 2년이면 된다고 본다. 아직까지 우리 밑에는 자연 발생적으로 용솟음치는 힘이 남아 있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추격의 힘이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추격하고 싶어 한다. 이 힘을 수많은 선진도상국 증후군이 방해하고 있다. 이것을 뛰어넘는 데 완만하게는10년, 창조적 파괴 방식으로는 2년이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 리더십이 구조적으로 붕괴된 상황에서 그 창조적 파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붕괴됐나.

▶1987년 체제 이후 6명의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있었다. 앞의 세 명과 뒤의 세 명은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고 그들이 활동했던 시대와 여건도 달랐다. 앞 15년 동안은 그동안의 추격기에서 나타난 탄력과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버텼다. 잘못이 있다면 박정희식 개발 모형의 정리와 시장체제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개방체제로 소프트랜딩을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것이다. 한마디로 전환기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도 외환위기 이후 시스템적 변화가 부분적으로 있었다. 그런데 금세기 들어 3명의 단임 대통령들은 큰 그림 없이 중국 특수, 삼성 특수를 누리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5년 단임 대통령의 약한 리더십하에서 여야 간 이념싸움에 탐닉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 원인은.

▶정치 정책 프로세스의 내부자였던 기존 관료 조직이 외부자로 전락했다. 그 자리를 실세 외부자들이 내부자로 진입하면서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개혁된 관료 조직이 국정 운영의 전면에 서고 약한 5년 단임 대통령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총체적 거버넌스의 위기인가.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5년 단임 정치를 하면서 안목 없는 대통령들이 세상이 변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차라리 중국 특수, 삼성 특수가 없었으면 장기적으로는 더 나았을 수 있다. 그랬다면 기업들이 어떻게든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으려고 혁신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을 테니까. 그런데 그냥 사탕 발라주는 것만 빨아먹은 셈이다. 원래 한국 안경 산업이 독일 브랜드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받아 세계 90%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개혁개방 정책이 도입된 이후 10달러짜리 싸구려 안경을 한꺼번에 수백만 개를 받아 풀가동하다가 이제는 하위권에 맴돌게 됐다. 당장 큰돈이 들어오니까 기술개발을 안 한 것이다. 조선업 위기도 그렇다. 선박금융, 선박통신, 선박디자인, 선박엔진 등 부가가치 사슬의 업스트림(upstream)으로 올라갔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조립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거버넌스의 위기 속에서, 산업구조의 대전환기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정체기의 늪에 빠지게 됐다.

―거버넌스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 전체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투명성과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김영란법도 청탁에 의한 의사결정을 하지 말고 투명한 사회 시스템을 작동하도록 하라는 것 아닌가. 지금 한국 정부는 작은 정부, 큰 정부 이도저도 아니다. 정부가 너무 많이 민간에 개입하는 측면도 있고 개입해야 하는데 전혀 안 하는 것도 있다. 정부 실패, 시장 실패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이렇게 거버넌스 체계를 재정립하고 나서는 한국 경제 생태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거대 담합체계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생태계 변화는 불가능하다.

단기적으론…3대 위험 북한핵·가계부채·국민분노 관리
장기적으론…3권 분립 균형 되찾고 정책 프로세스 복원

-당장 급하게 불을 꺼야 하는 곳은 어디라고 보나.

▶단기적으로 3대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 첫 번째가 북핵, 두 번째가 가계부채, 세 번째가 국민 분노 조절이다. 일단 전쟁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외교안보 대책을 강화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가계부채와 부동산 버블이 융·복합하면서 대폭발 요소의 공기압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하면 터뜨리지 않고 연착륙시킬 것인지 궁리해야 한다. 다음 1년 대선기간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냉정해야 한다. 언론을 비롯해 우리 지식사회가 냉정을 찾아야 한다. 대선이 다가오면 편 갈라 싸우며 홍위병 같은 사람들이 득세한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지금의 구조적 퇴행 문제를 일시에 개혁하기는 어렵다.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이를 체계 있게 해결하는 것이 다음 대통령의 임무다. 중기적으로 어떻게 하면 1% 성장트랩에서 벗어날 것이냐 하는 문제와 고령화 문제에 대한 본격 대응 문제다. 매일경제 설문조사에서 왜 공정경쟁에 대한 열망이 높은가. 자기가 시장경쟁에서 진 것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 경쟁의 틀이 잘못됐기 때문에,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보는 믿음의 문제다. 이러한 국민 분노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 결국 '이 모든 게 이명박근혜 때문'이라고 현혹시키는 엉뚱한 포퓰리스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개헌해야 한다는 건가.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건 단순하게 대통령 임기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국가 리더십을 굳건히 세우고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을 높여 국가,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복원하자는 것이다. 삼권이 완전히 분립돼서 견제와 균형을 할 수 있도록 불균형한 톱니바퀴 구조를 바꾸고 국회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좌절감에 빠졌을 관료사회를 의사결정 메커니즘의 내부자로 복원시켜야 한다. 사람도 상하수도가 건강하면 오래 산다고 하지 않나. 국회와 관료조직, 시민사회가 상수도라면 시장 활동의 결과가 하수도에 집중돼야 하는데 지금 상수도가 걸러내지 못하고 내려 보내 하수도 구멍도 막힌 것이다. 관료들이 먼저 시작하지 않고 늦게 뛰어든다. 옛날에는 야구에서 안타를 막아냈다. 지금은 왜 못 막는가. 시키는 일만 하다 보니 늦게 시작해서 그렇다. 거버넌스 회복은 단순히 대통령 임기를 몇 년 바꾸는 게 아니라 사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필수과제다. 이렇게 취약한 권력구조와 부패한 담합 정치하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추구할 수 없다. 새로운 제7공화국 시대를 열어야 한다.

[특별취재팀 = 이상덕 기자 / 전정홍 기자 / 전범주 기자 / 김명환 기자 / 김세웅 기자 / 김효성 기자 / 정의현 기자 / 나현준 기자 /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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