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항 검색요원이 보조배터리용 비닐봉지 배부하라고?…김포공항 검색 대란 재발할판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5. 4. 1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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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공사·한국공항공사 보안 검색요원에
보조배터리 소지 안내·비닐봉지 배부 지침 내려
보안검색 전 받은 비닐봉지도 버리는 상황에서
효과 의문...검색 요원 집중력 분산돼 ‘위해 물품’ 놓칠 수도
수학여행 등 성수기 시즌에 제 2 검색 대란 우려
9일 시험 운영서 대기시간 증가 확인하고도 강행
김포공항 국내선 휴지통과 의자에 버려진 보조배터리용 비닐봉지.
국토교통부가 인천공항 등 전국 공항 보안 검색장에 여객의 보조 배터리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단락 (합선)방지 조치가 안 된 배터리를 지닌 승객에게 비닐봉지를 나눠주도록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9일 시험 운영 과정에서 여객 대기 시간이 늘어난 것을 확인하고도 강행해 2023년 김포공항에서 발생한 수하물 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매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는 전날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에 새로운 보조 배터리와 전자담배 관리지침을 통보했다. 대인 보안 검색장에서 보안 검색요원들이 배터리를 꺼내 바구니에 담도록 안내하고, 비닐봉지를 나눠주도록 했다.

국토부의 이번 지침은 보조 배터리 기내 화재를 막으려는 조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여객 대기 시간을 늘리거나 위해 물품 검색에 지장을 줘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 1월 김해공항에서 이륙 대기 중이던 에어부산 기내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보조 배터리 안전관리 강화 표준안을 마련했다.

애초 표준안은 보조 배터리를 담을 비닐봉지를 항공사가 지급하도록 했지만 이를 수정해 공항 공기업까지 나눠 주도록 배부 주체를 확대했다. 지금도 공항에 가면 공항 공기업과 항공사가 체크인 카운터, 출국장 입구 등 각 각이 정한 구역에서 비닐봉지를 나눠주고 있다.

여기에 총·칼 등 위해 물품 탐색이 주 업무인 보안 검색요원도 보조 배터리 관리 업무에 참여하도록 지침을 강화한 것이다.

보조 배터리 화재 예방에 항공사, 공항 일반 직원, 보안 검색요원을 모두 투입하는 셈인데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다.

지금도 항공사와 공항 직원들이 단락 방지 없이 보조 배터리를 공항에 들고 온 여객에게 비닐봉지를 지급하고 있지만 보안 검색대를 지나 면세 구역에서 게이트 좌석이나 휴지통에 다시 버리는 심심찮게 벌어진다.

항공기 탑승 전 단계에서 아무리 비닐봉지를 잘 나눠줘도 벗겨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국토부의 이번 조치가 여객 대란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안 검색요원이 X-레이 등을 이용해 여객 1명을 검색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5초. 보안 검색 요원에게 보조 배터리 유무를 확인하고 비닐봉지를 나눠주는 업무가 추가되면 승객 대기 시간은 더 늘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는 국토부가 새 지침 시행 전인 지난 9일 김포공항에서 한 시험 운영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보안 검색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객 대기 시간도 평소 대비 2배가량 늘었다.

특히 수학여행 등 단체 여행객이 많은 성수기 초입이라 2023년 김포공항에서 발생한 수하물 대란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023년 5월 24일 김포공항에서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의 짐에서 스프레이 등 반입금지 물품이 대거 발견되면서 개봉검색이 급증, 항공기 지연·결항이 잇따랐다. 당시 수하물 개봉 검색률은 23.5%로 직전 10%의 2배가 넘었다.

올해도 국내선 허브 공항인 김포공항은 5월 황금연휴 기간(1~6일)에 하루 6만명, 인천공항은 4~5월에 1200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추계돼 1일 평균 19만6000여명이 이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토부도 이를 의식한 듯 전날 양 공항공사에 승객에 대한 일대일 안내는 필수가 아니고 혼잡 시간대에는 승객 흐름을 고려해 방송으로도 안내가 가능하다고 했다. 여객이 많이 몰리면 보안 검색 요원이 적극 개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인데 “이럴 걸 왜 시행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비닐봉지 배부 목적은 보조 배터리의 단락을 방지하고 기내 선반 안이 아닌 눈에 보이는 곳에 둬 화재 시 성공적인 초기 진압을 이루는 것”이라면서 “항공기 탑승 게이트에서 항공사 직원이 단락 조치 유무를 확인하고 비닐봉지를 주거나, 기내 좌석에 단락 방지 봉지 등을 갖춰 방송으로 보조 배터리를 넣도록 유도하면 간단할 일을 너무 어렵게 풀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안 검색 요원의 테러 방지 등 본연의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달 28일 국토부가 개최한 ‘보조 배터리 기내 반입 절차 관리강화방안 관련 공청회’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됐지만 국토부는 강행했다.

보안 검색 요원들은 “여객 가방 1개당 엑스레이 판독 시간이 12~15초에 불과한데 보조 배터리 업무까지 맡으면 본연의 임무인 위해 물품 탐지에 구멍이 뚫려 보안 검색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보안 검색에 책임을 미룰 것이 아니라 안전을 위해 오히려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조 배터리는 위해 물품이 아닌 위험물로 분류돼 국토부 고시(항공위험물운송기술기준)에 따라 단락 방지 조치와 기내 반입 통제 의무가 항공사에 있다.

한 보안검색 요원은 “국토부는 보조 배터리 검색에 실패할 경우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보조 배터리 검색에 시간을 빼앗겨 놓친 위해 물품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보여주기식 정책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비닐 지퍼백이나 절연 테이프는 외부의 압력·충격·열을 차단해 주지도 못하고, 과충전이나 배터리 불량에 의한 분리막 파손을 막아주지도 못한다”면서 배터리의 내부적 요인에 의한 화재 예방에 비닐봉지는 무용지물이라고 언론에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토부가 세계 최초로 마련한 표준안은 국제적 망신”이라면서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가능성이 ‘충전율’에 따라 높아지는 만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2016년부터 화물 전용기에 적용하고 있는 ‘30% 이하 충전율’ 규정이 과학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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