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에만 집착 말라…최악의 ‘수’가 나온다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조광조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던 친구들은 조광조를 ‘광인(狂人)’ 또는 ‘화태(禍胎·화를 잉태한 사람)’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주장이 너무 뚜렷하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은 다른 사람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끝까지 주장했기 때문이다. 조광조의 처음 벼슬은 사간원 정언이었는데 사간원에 들어간 바로 다음 날 사간원과 사헌부의 모든 관리를 파직하라는 상소를 왕에게 올렸다. 입사한 바로 다음 날 신입사원이 자기 부서와 옆의 부서 선배들을 모두 파직하라고 사장에게 건의한 셈이다. 중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파격적인 조광조의 상소는 그가 벼슬을 했던 4년간 계속 이어진다. 당시 조선 왕실이 도교 사상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昭格署)를 없앨 것을 요구했다. 중종은 “세종과 성종 같은 역대 왕도 깊이 생각한 후 남겨놨던 전통인데 갑자기 소격서를 혁파할 수 없다”고 했지만 조광조가 밤낮으로 농성하여 결국 소격서는 혁파된다. 소격서를 폐지할 것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국정을 중단시킬 정도의 분란을 일으킨 것이 과연 조선 정부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조광조는 1515년 정6품인 사간원 정언에서 벼슬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만인 1518년 종2품인 사헌부 대사헌으로 승진한다. 3년 만에 품계가 7계단 승진한 셈이니 중종의 애정이 대단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던 중 조광조가 자신에게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소를 올렸는데 바로 연산군을 내치고 중종을 국왕으로 추대하여 공신이 된 사람 중 실제로 역할도 하지 않고 나중에 은근슬쩍 공신으로 이름만 올린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로부터 공신의 지위를 박탈하라는 ‘위훈삭제(僞勳削除)’ 건의다. 공신 숫자가 117명인데 조광조는 그중 76명이 거짓된 공신이므로 지위를 박탈하자고 해서 결국 이를 관철시켰다. 전체 공신의 65%를 박탈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을 연이어 관철시키면서 초고속 승진을 했던 조광조는 갑자기 중종의 미움을 받아 바로 사약을 받고 죽게 된다. 조광조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여기서 내가 분석하고자 하는 사람은 조광조가 아니고 조광조를 중용했던 국왕 중종이다. 친구들이 보기에도 정상적이지 않았던 조광조를 어떤 이유에서 중종은 그리도 사랑하고 아꼈던 것인가? 그러다 4년 동안 곁에 두고 아끼던 조광조를 하루아침에 죽인 이유는 무엇인가?
중종도 어리석은 국왕은 아니었을 테니 아마도 조광조의 성격이 특이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바로 간파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종은 오히려 그런 조광조의 특이한 성품을 이용하고 싶었을지도.
왜냐하면 중종이 내쫓은 전임자인 연산군이 바로 부하의 충언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정책을 정했던 왕이었기 때문이다. 충성스러운 마음에 연산군을 생각해 반대 의견을 냈던 신하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다.
심지어 세종대왕부터 7명의 임금을 보필한 환관 김처선이 연산군의 음탕한 행동을 참지 못하고 “이 늙은 신하인 제가 네 임금을 섬겼고, 경서와 사서를 대강 모두 읽었지만 고금에 상감과 같은 짓을 하는 이는 없었다”라고 충언을 하자 연산군은 김처선의 혀와 다리를 절단하여 죽였다고 한다.
이런 연산군의 후임자인 중종은 자신은 연산군과는 완전히 다른 국왕이라는 것을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연산군은 저토록 조심스러운 간언도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 결국 왕위에서 쫓겨났지만, 중종 자신은 정반대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간언만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광인 또는 화태라고 부르는 동서 구분도 못하는 젊은 관료 조광조의 실로 어처구니없는 간언도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당시 조선의 모든 사람이 조광조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저런 위아래 구분도 못하는 철없는 조광조와 매일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중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당시 선비들 사이에서는 중종이 성군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중종은 성군이 아니면서 성군인 척을 했던 국왕이었기에 4년이 한계였을 테다.
조선 국왕 중 중종과 같은 맥락의 실수를 저지른 국왕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굴복해 삼전도의 치욕을 겪었던 인조다.
인조 또한 전임자인 광해군이 반정에 의해 쫓겨난 실패한 국왕이었다. 그리고 광해군이 쫓겨난 중요한 이유가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해준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와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를 내걸고 광해군을 내쫓은 인조로서는 다시는 청나라와 같은 편에 서서 명나라를 배신할 수 없었다. 인조로서는 큰 딜레마였다. 분명 청나라와 충돌하면 청에 의해 조선이 망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청나라에 신하의 예를 하면 다시 반정이 일어나 자신도 광해군과 같이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조는 뻔히 끝이 보이는 청나라와의 전쟁을 감수했고 그 결과 삼전도의 치욕을 겪으며 조선이 그 자리에서 망할 뻔했다.
경제학에서 최근 주목을 받는 새로운 분야가 바로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다.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는 이론 중의 하나가 바로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일이 인간의 노력과 신의 장난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을 한다. 인간이 아무리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신이 장난을 쳐서 결과를 망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완전히 잘못된 결정을 내렸지만 신이 반대로 장난을 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영국 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휴가를 가면서 실험하던 물질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고 가는 큰 실수를 했는데 신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푸른 곰팡이가 실험 물질에 퍼지면서 페니실린을 발명했던 것이 좋은 사례다.
플레밍이 실험 물질 관리를 잘못해서 페니실린이라는 위대한 발명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세계의 모든 과학자가 휴가를 떠날 때 실험 물질이 오염되도록 방치하고 떠난다면 그것이 옳은 행동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플레밍 박사는 휴가를 떠날 때 큰 실수를 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행동을 따르면 안 된다. 물론 신의 장난으로 실수가 성공으로 변했지만 신의 장난을 기대하고 일부러 실수를 한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행동이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모두 잘못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연산군은 왕권을 위협하는 신하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국익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고려 광종이나 명나라 주원장이 그런 행동으로 힘 있는 신하를 탄압하고 국가 기강을 확립했다. 또 광해군의 친청 정책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올바른 외교 정책이었다. 광해군이 내정에 실패했던 것일 뿐, 그의 외교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앞사람이 실패하면 무조건 정책을 바꾸고 앞사람이 성공하면 무조건 따라하는 결과 편향적 의사결정은 너무도 인간의 본성을 유혹하고 부합하지만, 전임자의 성공과 실패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시 원점에서 냉철하게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2호 (2025.03.26~2025.04.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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