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국가부채…‘탈화폐’로 해결? [모든 자산 뜀박질…과거와 다르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5. 10.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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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금리 ‘뚝’…대세 된 화폐 ‘엑소더스’

위험자산인 주식·가상화폐와 안전자산 금·은이 동시에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는 ‘에브리씽 랠리(Everything Rally)’가 펼쳐진다.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는 ‘에브리씽 랠리’는 지난 2021년과 2024년에도 나타났다. 이번 랠리는 과거와 달리 정치경제학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달러 등 기축통화국마저 화폐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에서 과거 랠리와 구분된다. 주요국 정부가 막대한 공공부채를 사실상 인플레이션(화폐 가치 하락)으로 해결하는 시도도 잇따른다. ‘화폐를 버리고 자산을 사는’ 탈화폐 흐름이 시간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란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공공부채가 부담스러운 각국 정부가 화폐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정치적으로 쉬운 길을 택했다. 사진은 지난 9월 10일 ‘국가 마비’ 시민운동 당시 파리 시내 시위 모습. (AP=연합뉴스)
원인 1. 기축통화마저 불신

부채 감축하려 화폐 가치↓

대표 위험자산 주식과 비트코인은 물론 안전자산 금 가격이 동시에 오르는 기현상이 펼쳐진다. 미국 뉴욕 증시 주요 지수를 비롯해 일본, 한국 등 주요국 주가지수도 연일 신고가다. 안 오르는 자산을 찾기 어렵다.

모든 자산 가격 상승은 지난 2021년에도 목격됐다. 당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막대한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 유입됐던 때다. 다소 이례적인 에브리씽 랠리가 펼쳐졌던 때는 2024년 초다. 이때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 증시 주요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안전자산 대명사 금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당시 자산 가격 상승을 이끈 핵심 동력도 유동성이었지만 2021년과는 결이 달랐다.

2024년에는 가파른 긴축에 이어 미국 금리 인하 가능성이 부각됐다. 이런 가운데 향후 경기 향방을 긍정 혹은 부정 등 일률적으로 진단하기 힘든 모호성으로 위험·안전자산, 양극단으로 시중 유동성이 밀려들었다. 경기 불확실성 위험을 분산하려는 목적에서 양극단에 투자하는 ‘바벨 전략’이 모든 자산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최근 에브리씽 랠리는 과거와 구분되는 몇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시각이 많다.

무엇보다 법정화폐 시스템에 대한 불신 확산이다. 미국 등 주요 기축통화국 정부가 막대한 정부부채를 해결하려 사실상 인플레이션을 용인하면서 화폐 시스템 신뢰가 흔들린다는 게 여러 전문가 진단이다.

국가부채를 실질적으로 감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세수를 늘리거나(증세), 지출을 줄이거나(긴축),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실질부채 부담을 줄여야 한다.

정치적으로 쉬운 길은 세 번째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이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증세나 긴축을 택한 정권은 예외 없이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 프랑수아 바이루·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 영국 보수당은 물론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마저 증세·긴축 카드를 꺼냈다가 정치적 역풍을 맞았다. 반면, 세 번째 방안을 택한 세력은 세계적으로 득세한다. 총리 지명이 유력한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를 비롯 극우 세력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국민연합 등이 이런 경우다.

미국 역시 다르지 않다. 미국은 ▲제조업 부흥 ▲무역수지 개선 ▲실질부채 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달러 약세를 일정 수준 용인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막대한 무역적자 해결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관세 전쟁으로 달러 패권에 균열이 갔다.

미국은 수십년간 무역적자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이는 세계 경제에 기축통화인 달러를 퍼뜨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미국 무역적자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는 무역흑자가 된다. 한국 등 세계 각국은 자유무역으로 수십년간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금융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제조업 경쟁력 후퇴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소비를 기반으로 고도 성장을 누린 배경이다.

미국이 관세를 ‘전가의 보도’ 삼아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적자를 줄이면 이런 선순환 구조는 금이 간다. 다른 국가로 달러 공급이 급감하고 종국에는 달러 패권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채권 수요가 줄고 금리가 급등한 배경도 맞물려 있다. 달러가 과거처럼 확고부동한 기축통화 지위를 누릴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확산했고 이런 위험에 대한 우려를 시장 참여자들이 반영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먼 미래 달러 가치를 확신할 수 없으므로 그에 따른 위험 비용이 더해진 셈이다. 미국의 관세·환율 전쟁이 달러 패권을 흔들 수 있다는 시장 참여자들의 복합적인 우려가 반영된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한국 역시 재정·통화 정책과 제반 여건 등이 원화 약세를 부추긴다. 달러를 비롯한 기축통화가 약세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웃돈다.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국가 재정을 쌈짓돈처럼 써왔고 이재명정부에서도 유례없는 수준의 확장 재정을 편 것과 무관치 않다. 이재명정부는 이미 적자 국채를 100조원 이상 발행하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한 데다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정부 주도 3500억달러(약 485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 역시 재정적자 확대 → 국채 금리 급등 → 이자 부담 증가 → 재정 압박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처럼 비기축통화국에서 재정적자 누적에 따른 국채 금리 급등은 화폐 가치 하락을 가속할 수 있다. 국채 금리 상승은 재정 이자 부담을 키워 추가 국채 발행을 부추긴다. 이런 악순환 누적으로 원화 실질 가치는 악화일로를 걸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공공 부채가 부담스러운 각국 정부가 화폐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정치적으로 쉬운 길을 택했다. 급증하는 이자 비용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정부의 선택”이라며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 주식, 부동산, 귀금속 등으로 대규모 자금이 이동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원인 2. ‘진짜 이자’ 실질금리 ‘뚝’

정부부채 늘면 물가↑

실질금리(Real Interest Rate) 하락도 최근 에브리씽 랠리 배경으로 지목된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뺀 값이다. 화폐를 보유할 때 누릴 수 있는 ‘진짜 이자’다. 가령, 명목금리가 4%여도 물가상승률이 3.5%면 실질금리는 0.5%에 불과하다. 실질금리가 0% 이하로 떨어지면,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최근 글로벌 금융권 실질금리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10년물 국채 명목금리가 4%대이지만, 물가 기대치가 3% 안팎 수준까지 올라 실질금리는 1%대로 추락했다. 최근 미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로 측정되는 실질금리는 1.7% 수준에 그친다.

한국 역시 실질금리는 제로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 10월 15일 서울 채권 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2.5%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한국은행 ‘9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향후 1년 및 3년, 5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모두 2.5%였다.

실질금리 하락은 각국 중앙은행 통화완화 정책과 정부 확장재정이 맞물려 가속화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 연방준비제도와 한국은행 모두 경기 둔화 우려를 예의주시하며 금리 인하 전망을 유지한다. 이런 가운데 각국 정부는 감세·보조금·인프라 투자 등으로 확장재정에 골몰한다.

특히,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이 명목금리를 낮게 묶어두는 가운데, 재정지출이 기대인플레이션을 밀어올려 실질금리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학계 진단이다. 이준상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장성우 연구원·이형석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쓴 ‘재정건전성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논문은 정부부채가 1% 늘면 소비자물가는 최대 0.15% 오를 것이란 결과를 담았다. 정부부채와 지출이 증가하면 소비자물가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실질금리 하락은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자산 가격을 밀어 올린다. 첫째, 금·은 같은 실물자산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을 감소시킨다. 금·은 등 실물자산은 별다른 현금흐름을 낳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실질금리가 오를 땐 실물자산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크다. 실질금리가 상승하면 분기 혹은 연 단위로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채권 투자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이자를 받아 이를 높은 금리로 재투자할 수 있어서다. 지금처럼 실질금리 하락 국면에서는 반대다. 현금 보유가 오히려 손해며 실물자산 보유 기회비용은 줄어든다. 금값과 실질금리가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이유다.

또, 실질금리 하락은 주식 같은 위험자산 가격을 밀어올린다. 인공지능(AI) 기술주를 예로 들면 이렇다. 실질금리 하락은 기업가치 할인율을 떨어뜨린다. 할인율이 줄면 그만큼 기업가치는 상승한다. 특히, 기술주 기업가치를 매길 때는 수년 뒤 현금흐름을 미리 가져와 적용한다. 현재로부터 먼 기간 현금흐름을 지금 시점으로 당겨올 때는 할인율 배수(멀티플)가 커진다. 실질금리 하락에 따른 기업가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원인 3. 마르지 않는 유동성

금리 인하 기대로 다시 증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마르지 않는 유동성도 에브리씽 랠리 마중물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 곳곳에서 유동성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미국 광의통화(M2)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늘었다. 2023~2024년 역성장 구간에서 벗어나 유동성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통화 지표는 크게 현금, 협의통화(M1), 광의통화(M2) 등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광의통화는 협의통화(현금+요구불 예금)에 정기 예금이나 정기 적금 등을 더한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 ‘8월 통화 및 유동성 동향’에 따르면, 올해 8월 광의통화(M2·평균 잔액)는 전월보다 1.3% 늘어난 4400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 4월부터 5달째 통화량이 늘고 있다. 통상 M2 증가율이 7%를 넘어서면 시중 유동성이 증시·부동산 등 자산 시장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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