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대의 전쟁(錢爭) 외교 시대] (4)에너지안보 - 美 화석연료 '회귀' vs 中 신재생에너지 '직진'
인공지능(AI) 시대로의 전환을 앞두고 에너지의 중요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원은 한정돼 있고, 지정학적 불안 요인도 상존한다. ‘에너지안보’라는 용어가 보편화한 이유다. 특히 안보 측면에선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다.
에너지안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 깊이 투영돼 있다. 기존 산업생태계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AI 관련분야를 포함한 첨단산업 전반의 성장 과정에서 유사 이래 최대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다가 그 규모는 향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두 나라 모두 ‘풍부하고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접근법은 사뭇 다르다.
에너지패권ᆞ물가안정… 미래를 볼모 삼은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외쳐왔다.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 중심으로 에너지정책을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위기에 직면해 신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튼 국제사회의 합의를 ‘녹색 사기’라고 비난하며 재차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사실 미국이 글로벌 패권국가가 된 과정은 석유산업과 밀접하게 엮여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지나며 제조업 강국에 올라선 요인 중 하나는 풍부한 석유 자원이었다. 1970년대엔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사적 지원을 빌미로 원유를 달러로만 거래토록 하는 ‘페트로달러’를 강제함으로써 ‘달러패권’의 기반을 닦았다. 2010년대 저유가ᆞ저물가ᆞ저금리 속 고성장의 바탕은 ‘셰일혁명’이었다.
트럼프의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정책의 목표는 에너지패권과 물가안정이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의식한 국가전략인 동시에 내부 정치이슈의 국제화인 셈이다. 그도 기후위기를 태양 활동이 활발해진 결과로 보는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래를 볼모 삼은’ 일방적ᆞ독선적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트럼프의 에너지패권 구상은 두 축이다. 하나는 석유ᆞ천연가스 생산을 늘려 제조업은 물론 AI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것이다. AI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과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 유지를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에너지 수출을 통한 영향력 강화다. ‘글로벌 경찰’ 대신 ‘글로벌 에너지 보급소’를 지향하는 것이다. 공히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의식한 전략이다.
정치적으로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안정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내내 고물가에 시달리던 민심이 대선의 승패를 갈랐다. 연임이 불가능한 트럼프는 물가를 잡지 못해 2년 후 중간선거에서 패할 경우 곧바로 레임덕에 직면할 수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과잉 지출과 에너지가격 급등을 인플레이션의 요인으로 꼽으며 국가에너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드릴 베이비 드릴’을 거듭 외쳤다. 유가를 낮추면 직간접적으로 생활물가를 잡을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관세를 높여도 인플레이션은 없을 거라고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당장 엑손모빌 등 석유 메이저 기업들조차 트럼프의 에너지정책에 비판적이다. 중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위주의 정책 추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막대한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도 증산에 따라 원유ᆞ천연가스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기후위기의 심각한 현실과 배치되는 정책이라 정치적ᆞ심리적 반발이 거셀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앞의 정치적 성과에 급급해 미래세대 삶의 질을 볼모로 삼은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에 사활 건 중국… ‘미국과 다른 길’ 가능할까
‘미국과 다른 길’을 지향하는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둘렀다. 석탄 발전 비중이 여전하지만 근래 들어 태양광ᆞ풍력ᆞ수력 발전 용량이 각각 전 세계의 30~40%를 차지할 만큼 외견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전 세계 생산량의 90%를 점하고 있는 그린수소의 경우 2028년이면 네이멍구에서 400㎞ 파이프라인을 통해 베이징에 공급될 예정이다.
2015년을 전후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 됐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한 트럼프 1기(2017~2020년)를 겪었고, 이는 에너지안보를 국가전략의 우선순위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중동ᆞ아프리카ᆞ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에너지원 확보와 관련 인프라 투자에 집중했다.
중국은 체제의 특성상 정책 기조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이 크지 않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중장기적으로 차근차근 진행될 여건을 갖춘 셈이다. 실제 중국은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지난해에 전기차 점유율을 40%대로 높였고, 천연가스(CNG) 트럭의 비중을 42%까지 끌어올리는 등 화석연료의 사용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있다. 올해 말까지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중국이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안보를 실현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중국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마트 그리드 및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개발 과정에서 수년째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서부지역과 전력 수요가 높은 동부지역 간 안정적인 전력 수송도 난제다. 대규모 태양광ᆞ수력 발전 프로젝트가 생태계 파괴 논란과 이주민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 세계 태양광패널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등 신재생에너지 관련 제조업에서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도 양날의 칼이다. 안정적인 시장 확보라는 긍정적 측면 못잖게 해당 국가들의 관련 제조업이 고사하면서 생태계 자체가 위축되는 ‘디플레이션 수출’의 성격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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