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개구리 멸종으로 내몬 곰팡이병, 사우나로 막는다

이영완 기자 2024. 6.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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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개구리 90종 멸종시킨 곰팡이병
온도 높으면 개구리 체온 올라가 면역력 증강
장마철에 불 때 곰팡이 막은 조상 지혜 입증
개구리가 곰팡이병을 막아낼 수 있는 은신처에 숨어 있다. 벽돌 안에 있으면 체온이 올라가 면역력이 높아진다./호주 맥쿼리대

장마가 시작되면 사방에서 짝을 찾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머지않아 장마철에도 논과 늪이 침묵에 빠질지 모른다. 한국에서 시작된 곰팡이병이 전 세계 양서류를 멸종 위기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호주 과학자들이 개구리를 구할 방법을 찾아냈다. 개구리가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사우나를 제공하는 것이다.

호주 맥쿼리대의 리처드 샤인(Richard Shine) 교수와 앤서니 와들(Anthony Waddle) 박사 연구진은 2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겨울에 섭씨 30도 온도를 제공하는 벽돌 쉼터가 개구리를 곰팡이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장마철에도 군불 땐 조상 지혜 이용

전 세계 양서류는 항아리곰팡이(Chytrid fungus)에 감염돼 반세기 만에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항아리곰팡이는 개구리의 피부 안쪽 케라틴 조직을 먹어 치워 질식사시킨다. 호주국립대 연구진은 지난 2019년 사이언스지에 “지난 50년간 이미 멸종한 90종을 비롯해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501종이 항아리곰팡이병으로 개체 수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맥쿼리대 연구진은 곰팡이가 고온에 취약한 데 주목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장마철에도 불을 땠다. 그래야 집에 곰팡이가 슬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구리 같은 변온동물은 스스로 체온을 올리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따뜻한 곳을 찾기 어려운 겨울에 개구리들이 곰팡이에 많이 감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개구리들을 항아리곰팡이에 감염시키고 한쪽 무리는 그늘이 없는 온실에 두고 구멍이 뚫린 벽돌을 제공했다. 그러자 개구리가 기어 들어간 벽돌 내부 온도는 섭씨 30도로 올라갔다. 다른 무리는 온도가 19도인 그늘진 보호소에 넣었다. 따뜻한 은신처에 있는 개구리들은 피부에 있는 항아리곰팡이 포자의 양이 다른 무리의 100분의 1에 그쳤다.

이번 호주 연구진은 항아리곰팡이가 전 세계 양서류 개체군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밝혀진 지 30년 만에 개구리를 구할 수 있는 간단하고 저렴한 전략을 찾았다고 밝혔다. 와들 박사는 “항아리곰팡이는 28도 이상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데, 체온이 높아지면 개구리의 면역 체계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에 제공한 은신처는 개구리를 위한 치료용 스파와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진은 인간이 개구리를 구하기 위해 천적인 곰팡이를 죽이는 대신, 개구리 스스로 곰팡이를 이겨낼 방법을 찾았다. 샤인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간단한 개입으로 치명적인 항아리곰팡이병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의 영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우리가 찾은 방법은 멸종 위기에 처한 양서류가 생태계에서 항아리곰팡이와 공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맥쿼리대의 앤서니 와들 박사가 개구리를 들고 있다. 와들 박사는 개구리를 공격하는 곰팡이를 박멸하는 대신, 개구리의 면역력을 높여 공존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호주 맥쿼리대

◇한국에서 시작된 개구리 팬데믹

항아리곰팡이병은 1980년대부터 개구리들을 숱하게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실체는 지난 1993년 호주에서 처음 밝혀졌다. 이미 곰팡이에 감염된 종 가운데 90종이 멸종했고, 다른 124종은 개체 수가 90% 이상 감소했다.

전 세계 개구리를 공포에 빠뜨린 곰팡이병의 시작은 한국이었다. 지난 2018년 한국과 영국 과학자들이 사이언스지에 항아리곰팡이가 한국에서 처음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50년 전 반려동물이나 식자재로 개구리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산 항아리곰팡이가 전 세계로 퍼졌다고 추정됐다. 당시 유럽에서는 한국산 무당개구리가 반려동물로 인기가 높았다.

개구리가 곰팡이병을 이기려면 사우나에 모기장도 필요할지 모른다. 호주 뉴캐슬대 환경생명과학부의 존 굴드(John Gould) 박사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 학술지 ‘동물행동학(Ethology)’에 “호주에 사는 모기(학명 Mimomyia elegans)는 청개구리의 피를 빨 때 항상 콧구멍을 공격한다”고 밝혔다.

모기는 치명적인 곰팡이병의 매개체였을 가능성이 있다. 굴드 박사 연구진은 지난 2019년 모기가 항아리곰팡이의 매개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실험실에서 그물에 항아리곰팡이 포자 용액을 적시고 모기를 풀었다. 나중에 모기 다리에서 곰팡이 DNA가 검출됐다. 모기가 개구리 피를 빨면서 곰팡이 포자까지 퍼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뉴캐슬대 연구진은 모기가 개구리를 공격하는 형태를 통해 곰팡이병의 전염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농약 남용으로 새 먹이인 곤충이 사라지면서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카슨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어쩌면 이대로 있다간 장마철에 개구리 소리가 그리워질지 모른다. 침묵의 여름이 현실로 오기 전에 하루빨리 곰팡이병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겠다.

유럽에서 애완용으로 수입한 한국산 무당개구리. 전 세계 개구리를 멸종 위기로 몰아 넣은 항아리곰팡이병이 한국산 개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사이언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7582-y

Ethology(2023), DOI: https://doi.org/10.1111/eth.13424

Acta Zoologica Lituanica(2019),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34224837_Mosquitoes_as_a_potential_vector_for_the_transmission_of_the_amphibian_chytrid_fungus

Science(2019),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v0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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