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 먼발치에서만 보다니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
충남 당진에 있는 '지속가능 상생재단'이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답사길에 나섰다. 상생재단은 비영리법인으로 당진에 입주한 현대제철에서 발생하는 수재 슬래그(금속 산화물 등이 쇳물 위에 뜨거나 찌꺼기로 남는 것의 총칭)가 당진 지역 내에서 처리되지 못하게 된 문제를 지역공동체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다가 설립됐다. 상생재단의 이번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답사는 당진에 적을 둔 지역 대학생들 역사연수를 위해 기획됐다. < 편집자말 >
▲ 중국 길림성 남부 고구려 두번 째 수도인 집안으로 들어서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산이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쪽의 모습이다. |
ⓒ 심규상 |
단둥(丹東)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붉은 도시라는 의미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내리는 비로 한낮임에도 해를 볼 수 없다.
류평일 현지 안내원(26)이 차창 밖을 가리킨다.
"저기 보이는 성이 박작성입니다."
단둥에 있는 고구려 유적 중 하나가 압록강이 만나는 구릉에 있는 박작성(호산산성)이다. 당나라 침략군을 가로막아 고구려의 요동 방어선 역할을 했던 곳이 이곳 박작성이다. 압록강 하구가 한눈에 들어와 누가 봐도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이 느껴진다.
그런데도 중국은 고구려성이 아닌 만리장성의 끄트머리로 복원하고 '만리장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단부에서 고구려 성벽이 발견되면서 만리장성 훨씬 이전에 고구려가 쌓은 성임이 밝혀졌지만 만리장성에 밀려 갈수록 고구려의 흔적은 초라해져만 가고 있다. 중국 측은 아예 '만리장성 동단 기점'이라는 표지판을 세우고 고구려 유적지임을 알리는 안내문을 없애버렸다. 이처럼 중국이 추진하는 역사복원 작업에는 중화패권주의가 물씬 풍기고 있다.
고구려성 흔적 지우고 '만리장성 동단 기점' 표지판
▲ 광개토왕릉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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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밖으로 박작성을 조망하며 고구려의 문을 두드린 일행은 5시간을 달려 드디어 집안에 도착했다. 집안(集安)은 2대 유리왕부터 20대 장수왕까지 420여 년간 고구려의 도읍지였다. 화려한 고구려 문화가 집안에 응집돼 있음은 물론이다. 집안 시내에 들어섰지만 고구려 전성기 시대 국내성은 찾아볼 수 없다. 천년 세월을 거치는 동안 국내성의 흔적은 복원해놓은 자그마한 성벽 일부로만 만날 수 있었다.
상생재단 일행들이 이어 달려간 곳은 고구려 19대 왕의 흔적을 담은 광개토왕릉비다. 높이 7미터, 무게 약 37톤. 위풍당당한 외형에서 고구려의 강건함이 배어나온다. 총 1775자 비문에는 고구려 왕실의 역사에서부터 광개토왕 즉위 후 치적, 역대 왕릉을 지키기 위한 묘지기의 구성과 관련 법령들을 담고 있다.
5세기 무렵 고구려는 '천하의 중심'이라고 자부하며 독자연호를 사용하고 백제, 신라, 동부여 등 주변 나라들과 조공관계를 맺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국가적 연구 사업을 통해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발해 등 우리나라 고대사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조선을 비롯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쯤으로 왜곡하고 있다.
현지 안내원이 광개토왕릉비를 둘러싼 한일 간 쟁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비문 중에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임라(또는 가야), 신라를 격파해서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놓고 일본에서는 당시 일본 야마토국이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할 만큼 강력한 국가였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지만 일본이 자국에 유리하도록 비문내용을 조작했다는 얘기가 나온 바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문장의 해석을 '왜가 신묘년에 오자,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백제와 신라를 혁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태왕릉 행해 통일염원 담아 '삼배'
▲ 태왕릉(광개토왕의 묘)을 향해 삼배하는 상생재단 임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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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개토왕 묘로 알려진 태왕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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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릉 비각을 나와 광개토왕의 묘로 알려진 태왕릉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침 보수를 위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불과 몇 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먼발치에서 태왕릉을 대해야 하는 일행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일행 중 몇 명은 아쉬운 마음에 태왕릉을 향해 삼배했다.
"뒤늦게 찾아온 데 대한 사죄의 마음과 고구려의 강건함을 지켜 후세에 보여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 고구려의 역동적 기운으로 남북통일을 이루게 해달라는 염원을 담아 절을 올렸습니다."
(상생재단 김병빈)
왕릉답사 백미 장군총은 먼발치에서...
▲ 장군총. 광개토왕의 무덤인지 장수왕의 무덤인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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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성이 있던 흔적을 말해주는 집안시내 성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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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집안 지역 왕릉 답사의 백미라 불리는 장군총 답사에 나섰다. 광개토왕 무덤과 장수왕 무덤이라는 논란이 계속되는 장군총. 거대한 화강암 천여 개를 다듬어 쌓아올린 '동방의 피라미드'. 당대 고구려 최고의 기술로 1500년의 세월을 견뎌내는.
그러나 고구려 답사의 정점과 만나는 일은 좌절됐다. 중국 측이 장군총 보수 및 주변 신축공사를 이유로 태왕릉과 같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결국 먼 거리에서 장군총을 조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고구려 문화의 일부분과 겉모습만을 둘러봤지만 일행들이 느낀 감회는 남달랐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광개토왕릉비를 한 뼘 한 뼘 손으로 재고 쓰다듬으며 '우리역사를 알려면 삼국사기를 만 번 읽는 것보다 고구려 유적을 한 번 답사해 보는 것이 낫다'고 했다더군요. 직접 와서 들러보니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고구려의 전성기를 보낸 집안 시내에 짙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내일(11일)은 백두산으로 향한다. 기다리던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까?
▲ 상생재단 고구려 답사팀. 광개토왕릉비 앞에서 |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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