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내려도 아파트 전세세입자 없어요"..역전세난 조짐
최근 수도권 아파트 매매·전세 시장이 함께 얼어붙고있다. 거래절벽에 아파트값 하락세가 가속하는 가운데, 가을 이사철을 앞둔 전세 시장에도 전세물건이 쌓이고 있지만, 찾는 수요가 부족해 전셋값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초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 2년을 맞아 계약갱신권(전셋값을 5% 이내로 올려 재계약하는 것)을 한 차례 사용한 전·월세 물건이 시장에 풀릴 경우 새 세입자와 계약하는 집주인들이 4년 치를 한꺼번에 올리면서 가격이 급등해 '전세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이와 달리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逆)전세난'이 번지고 있다.
28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건은 총 5만5056건으로 한 달 전(5만924건)보다 8.1% 증가했다. 2년 전인 2020년 8월28일 2만8768건과 비교하면 91.4%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전세 매물은 123.7%(1만5420→3만4499건) 늘었다. 경기도는 2년 새 122.1%(2만9881→6만6356건), 인천은 111.0%(7505→1만5838건) 증가했다. 전·월세 물건 수만 보면 임대차2법 시행 전인 2020년 8월 이전 상황으로 회귀한 것이다.
전세 물량이 쌓이면서 전셋값도 하락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넷째 주 조사까지 3.03% 올랐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 같은 기간 0.57% 떨어졌다. 지난 6월 13일 조사에서 -0.01%로 하락 전환한 이후 11주 연속 내렸다. 경기도도 지난해 7.35% 올랐던 전셋값이 올해 같은 기간 1.15% 하락했고, 인천도 11.3%에서 -3.06%로 1년 만에 분위기가 변했다.
요즘 전세시장에서는 시세보다 전셋값을 1억∼2억 이상 낮춘 '급전세' 위주로 계약이 이뤄지면서 집주인은 전세 만기가 임박해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이 늘어난 경기, 인천 일대 전셋값은 주변 시세보다 크게 하락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경기도 입주 물량은 7만3161가구에 달한다. 이달 말 입주 예정인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힐스테이트푸르지오수원'의 경우 2586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인데, 최근 84㎡ 전세보증금이 3억5000만원까지 하락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4억5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최근 들어 1억원 가까이 떨어졌다.
올해 5월 인천 검단신도시에 입주한 '검단파라곤보타닉파크'는 전용 84㎡ 전세보증금 역시 2억4000만원까지 내렸다. 검단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매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전셋값이 예상보다 낮게 형성되자 자금 계획에 차질이 생긴 집주인들이 융자(주택담보대출) 낀 물건을 내놓으면서 (융자 약점 때문에) 가격을 크게 낮춘 물건이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 입주가 시작되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는 전체 가구(1048가구)의 절반이 넘는 538가구가 현재 네이버 부동산에 전·월세 물건으로 나와 있다. 두 달 전만 해도 9억원대였던 전용 84㎡ 전세 호가는 최근 7억원까지 떨어졌다. 11월 입주 예정인 5320가구 규모의 성남시 중원구 'e편한세상금빛그랑메종' 전용 59㎡ 전세 호가가 6월 4억~5억원대에서 최근 3억5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인근에 2012년 입주한 '롯데캐슬'의 같은 면적 전셋값이 지난 5월 6억3000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새 아파트인데도 주변 시세보다 2억원 넘게 하락한 것이다. 이 아파트 전세 매물도 500건이 넘는다.
인근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집주인 중 일부는 기존 살던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를 계획했지만 거래 절벽이 이어지면서 살던 집을 처분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전세로 내놓은 경우도 있다"며 "입주 시기에 매매를 계획했던 다주택자들도 원하는 가격에 집을 팔지 못하는 데다 세제 개편 등으로 다주택 보유세 부담이 줄면서 전세를 선택해 물량이 예상보다 많이 나왔고, 가격도 약세를 보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임대차 2법 2년을 맞아 계약갱신청구권 만료 물건이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생각보다 여파가 크지 않다"며 "계약 갱신 시기가 분산된 데다 아파트 보다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싼 빌라 등으로 옮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금리 인상 충격으로 매매 시장에서 거래 절벽이 일어나고, 주거 이동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전세 시장에도 연쇄적으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당분간 전세도 현재의 약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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