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면 편할까요" 부동산 정책의 그늘, 늘어나는 '○포자'..

2020. 9. 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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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급등·잦은 정책 변화에 시장 곳곳에서 고통·혼란 되풀이
경제학자 77% "정부 정책 실패로 주택가격 상승", "각 소득별로 주택 서비스 제공돼야" 지적도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일대의 모습. [사진=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아파트 취득세 8%, 12%가 과연 정상입니까. 정책에는 방향성과 예측성,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데 비판에 쫓겨 급조한 정책으로는 부작용만 커지게 될 겁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값 상승으로) 근로의욕 상실과 소외감으로 잠 못 이루는지 아시나요. 집값 안정화 의지가 정말 있는건지 답답합니다.”

올해 정부의 각종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글 일부다.

대한민국을 종종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최근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상당수 중장년층은 아파트·건물 등 여전히 부동산을 최우선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 젊은 세대들은 치솟는 아파트 가격과 이를 추격매수하려는 움직임 등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부동산 문제에 민감하다.

집값 움직임에 따라 민심도 출렁인다. 일각에선 “2022년 대선 명운이 부동산에 달렸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나온다.

한편으론 잦은 정책 변화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요즘 곳곳에서 부동산과 연관돼 신조어처럼 나타나고 있는 ‘O포자’는 이 같은 부작용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청포자’(청약포기자)가 꼽힌다. 나날이 치솟는 수도권 인기 지역의 청약 경쟁률과 당첨가점이 주 원인이다. 그 이면에는 신축 선호 현상과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 등이 섞여 있다.

올해 7월과 8월 서울에서 분양한 12개 단지의 당첨 커트라인은 평균 62.7점이다. 4인 가족 기준 39세 수요자가 최대로 올릴 수 있는 점수 57점을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30대 대부분의 청약점수는 20점에서 30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청약 탈락으로 실망한 젊은 수요자들이 매매 시장에 직접 뛰어들며 ‘패닉 바잉’(공황 구매)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부는 토지 보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부터 3기 신도시에 대한 사전청약을 실시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생애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특공) 비중도 대폭 늘렸다.

그럼에도 특공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층은 여전히 ‘집포자’(주택 매입을 포기한 사람)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격차로 ‘서포자’(서울 입성 포기자)와 같은 파생어도 등장했다.

공무원 사회는 ‘승포자’(승진을 포기한 사람)가 뜨거운 감자다. 승포자는 일하지도 않고 의욕도 없는 철밥통 직원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를 시작으로 다주택 고위공직자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커지면서, ‘승진을 포기하는 대신 집을 지킨 공무원’들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사실상 누더기가 된 세금 정책 때문에 아예 관련 업무를 포기한 ‘양포세’(양도세 계산 포기 세무사)도 등장했다. 부동산 관련 세법이 몇 개월 간격으로 계속 바뀌면서 일부 세무사들이 이 같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 반영됐다.

정치권에서는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을 놓고 책임 공방이 뜨겁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23번째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도 실패를 거듭한 것은 명백한 문재인 정부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빚 내서 집 사라’는 부동산 정책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반격한다.

각종 논란에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드라이브’는 계속될 공산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주택을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고 세제를 강화하며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것은 전세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며 “정부가 책임지고 주거 정의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학계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경제학회는 지난달 경제학자 72명을 대상으로 부동산 정책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응답자 중 77%가 주택가격 폭등 주범으로 ‘정책 실패’를 꼽았다.

‘O포자’를 야기할 수 있는 초강력 정책 대신 좀 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정부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경수 가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에 맞는 주택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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