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⑤ '기억의 책임'에 등 돌린 지역사회
경기만 전수조사…11개 지자체 無
인천·광주 '女'-경북 '국외' 징용자만
당사자 대다수 사망…살아도 90대
자손도 70대 이상…고령자 대부분
시민모임 “유족들, 정신적 상처
가난함 시달려…사연 파악해야”
추모·현장 교육 자원화 촉구도


"지역의 강제동원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언뜻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명확히 답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거의 없다.
강제동원 피해자 조사와 살아남은 피해자와 유족의 증언을 기록해야 할 지자체의 노력이 '실종'됐다. 제각각 조례를 만들었어도, 정작 실천에 나선 곳은 손에 꼽힌다. 정부가 포기한 일에 지자체도 등을 돌린 것으로,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기억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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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인천일보가 전국 17개 시·도의 강제동원 관련 업무를 전수조사한 결과, 무려 11곳은 자체적인 피해 현황을 연구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파악한 기록조차 없었다. 피해자와 유족의 구술·증언을 수집한 지자체는 경기·인천·광주·경북 등 네 곳에 불과했다. 이유는 뚜렷하다. 강제동원 문제를 '정부 사업'으로만 인식하거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내용은 제한적이다. 인천과 광주는 여성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해 전체 피해 유형을 포괄하지 못했고, 경북은 국외 징용자만 조사했다. 구술·증언은 단순 개인 경험담이 아니라, 정부·학계·사회가 강제동원 피해 실태를 입증할 기초 근거다. 현재의 가치와 정신을 확립하게 할 교훈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범위가 포괄적이다. 지난해 10월 도민들의 피해 규모와 유적지 조사 등은 물론 '모든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기록을 시작했다. 2015년 정부의 진상규명 업무가 중단된 이후, 제도 밖에서 명예를 회복 받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에 주목한 것이다.
다만 연속성은 어느 지자체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다. 인천은 2020년, 광주는 2022년, 경북은 2023년에 각각 한 차례 조사에 나선 뒤 중단돼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도 역시 다음 실태조사 계획은 미정이다.
1945년 광복에서 긴 시간이 지나 강제동원을 직접 경험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올해 1월 공식적인 피해자로 인정돼 의료지원금을 받는 대상자를 집계하자 전국 640명 가운데 단 2명을 제외하고 모두 90세 이상, 100세 이상으로 분류됐다.
자손들도 70~80세의 고령의 나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2차 증언자'로서 나설 수 있지만, 건강 문제와 기억력 저하로 시간이 지날수록 증언이 불완전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국에서 강제동원 피해 지원에 관한 조례는 15개(중복 성격 포함)나 제정돼 있는데, 진상규명 정책 실효성이 없는 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지난해 9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지역사회에 공유하는 '고발대회'를 연 것도 이러한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취지였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고령의 피해자와 유족이 직접 기록을 남기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지난해에서 올해, 국외에 한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만 봐도 무러 264명이나 사망했다"며 "일본이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역사 왜곡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는 더욱 증언 기록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지자체 스스로의 실태조사 노력이 꼭 필요하며, 더 나아가 정부의 움직임을 유도해야 한다"며 "지금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특히 주목해야 할 건 강제동원 피해 유족들이다. 집안의 한 사람이 사라지면서 정신적 상처와 가난함을 안은 이들의 사연이 적극적으로 파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내 강제동원 역사 현장에 대한 추모·교육 자원화 노력도 시급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강제동원 유적 조사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의 조사(올해 2월 기준)에 따르면, 도내에 과거 군사시설·탄광·광산·군수공장 등이 위치했던 장소가 359곳(주소 불상지와 미수복지구 제외)에 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라졌고, 현장을 기억할 수 있는 안내문이나 기록물조차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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