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③ 기록으로 되살아난 '경기도민 희생' 역사

김현우 기자 2025. 8. 1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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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희생 증거 '병적전시명부'
일본군 동원 병력 인적사항 상세 기록

政, 1991년 日에 필름 형태 사본 받아
국가기록원, 연내 DB화·공개 예정
“유족들, 피해자 기록 추적 가능할 것”

1944년 中 비행장 건설 현장 폭격 당해
수원 출신 23명 포함 25명 집단 사망

인천일보, 경기 자료 8권·4150쪽 확인
피해자 3000명 이름 ·사망 경위 빼곡
▲ 일제가 조선인 징용자를 관리하기 위해 작성한 '병적전시명부'가 국가기록원 성남분원에서 공개됐다. 명부에는 이름, 출생지, 본관 등 상세한 기록이 적혀 있다. 한 징용 피해자의 고향은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 화정리'(현 덕양구 화정동)로, 부모 이름까지 기재돼 있다(왼쪽). 또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점령했던 후베이성 우한시의 주둔지 지도에는 징용자 숙소와 양쯔강 나룻터, 위병대 위치가 정확히 표시돼 있다(위). 도내 각 지역에서 끌려간 징용 피해자들의 이름이 '창씨개명'으로 쓰여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2월 15일 징용령에 따라 치중병 제49연대에 응징. 3월 5일 중지(中支·중국 중부) 파견을 위해 용산역 출발. 동월 6일 조선국경 통과. 7월 6일 샹탄(湘潭) 도착. 비행장 건설작업에 종사. 탄약, 병기, 기재 운반 작업 중 적기의 폭격을 받아 전신 폭탄 파편창으로 전사."

1945년 해방 이후, 8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짧은 기록 몇 줄. 여기엔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경기도 수원군(현 수원·화성·오산) 출신인 그는 전쟁터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고, 직선거리로만 1700㎞ 떨어진 중국 깊숙한 곳까지 끌려갔다. 위험한 군수물자 운반 임무를 수행하던 중, 하늘에서 쏟아진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25명 청년 사망'…지방정부 조사로 드러나

경기도가 전국 최초로 지역 내 강제동원 피해자의 흔적을 조사·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도민들의 희생 증거가 발견됐다. 핵심은 '병적전시명부'였다.

그동안 비공개 상태로 묶여 있던 이 자료는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라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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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명부는 일본군이 전시 상황에서 동원된 병력의 인적사항, 이동 경로, 복무 내용, 사망 경위 등을 세세히 기록한 문서다. 폭격, 질병, 사고 등으로 숨진 사례가 생생하게 포함돼 있다.

임시군인군속계, 유수명부, 해군군속 신상조사표, 조선인 징용자 명부 등과 함께, 군인·군속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꼽힌다.

도의 의뢰로 약 5개월간 실태조사를 진행한 학계도 이 명부를 집중 분석했다. 자체적으로 확보해둔 자료였다.

그 결과, 1944년 7월 중국 후난성 샹탄의 비행장 건설작업에 투입됐다가 폭격으로 청년 25명이 집단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중 23명이 수원 출신이었고, 2명은 연천·가평에서 왔다. 사망자 가운데 최고 연장자는 1910년생, 최연소자는 1925년생이었다.

당시 나이로 각각 만 33세와 만 18세. 모두 앞날이 창창한 청년들이었다.

▲ 열리는 기록, 기억의 시작

병적전시명부는 1991년 우리 정부가 일본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 요청을 하면서 받아온 자료다.

일본 정부는 사본을 필름 형태로 전달했고, 외무부를 거쳐 기록원으로 이관됐다. 당시 책자 인쇄물로 제작돼 30여년 동안 서고에 잠들어 있었다. 국가기록원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강제동원 기록관리 사업'을 했다. 방대한 자료의 정보를 추출하고, 일반인 누구나 조회·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병적전시명부 역시 정리 대상에 포함됐다.

특히 올해 말이면 절차가 마무리돼 공개가 현실화할 전망이다.

인천일보가 확인한 경기지역 자료는 약 8권, 4150쪽 분량(과거 행정구역에 따라 변동 있음)에 달한다. 그 안에는 3000여명의 피해자 이름, 이동 경로, 복무 내용, 사망 경위가 빼곡히 적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도의 실태조사가 '도민 집단 사망'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회가 잊고 있던 피해자들의 이름과 마지막 순간을 다시 세상에 드러낼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오일환 박사(전 정부 강제동원 위원회 유해팀장)는 "병적전시명부는 강제동원 군인·군속의 개인 프로필과 같으며, 언제 다쳤고 사망했는지, 특히 같은 시간·장소에 지역민이 사망한 사례를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보유한 명부 중에 중요도가 높은 것으로, 학계에선 국가에 공개를 요청해왔다"고 말했다.

기록원 관계자는 "공개 전환된 명부의 정보를 정리해 연내 공개 서비스 예정이다. 유족들이 피해 당사자의 기록을 추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이경훈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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