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① 국가가 포기한 기록…그렇게 잊혔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 아래
일제강점기 200만명 강제 동원
고통은 선명…기록도 없는 사람들
'강제동원 미인정 피해자'로 살아
政 '2004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전국서 22.6만명 피해 신고서 접수
2015년 기한 연장없이 특별법 종료
경기도, 작년 '강제동원' 전면 조사
도민 피해 13만여명 육박 드러나
한맺힌 사연들, 기사에 담아 소개

#프롤로그 : 군수공장으로, 탄광으로, 작업장으로.
일제강점기, 200만명(추정치)에 이르는 조선인이 선택권도 없이 끌려가 '노예'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많은 이들은 피해자라는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고통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하지만, 국가의 기록에는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다. 일명 '강제동원 미인정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그림자 속에 머물러 왔다.
2년 전, 인천일보의 보도가 이 문제를 끌어올렸다.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전면 실태조사에 나섰고, 드러난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이제, 광복 80주년을 맞아 인천일보는 잊히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본격 기록하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모아 세상에 내놓으며, '책임'이 시작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겠다.

"일본군에 끌려가 혹독한 노동현장에서 고통을 받았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말합니다. '피해자'가 아니라고요."
인천일보가 취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강제동원 미인정 피해자' 유가족 20명은 한목소리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해방 이후 80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로서 지위조차 얻지 못한 채 세월 속에 잊히고 있는 이들이다. 사회적 무관심 탓에 그들의 기억 속에 담겨있는 역사마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강제로 끌려간 청년들, 그리고 국가의 침묵
13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일제는 아시아태평양전쟁(1931~1945년) 동안 수많은 조선인을 군인·군무원·노무자·위안부 등으로 강제 동원했다. 1938년 제정한 '국가총동원법' 아래 공권력과 무력을 앞세운 집단적·폭력적 동원이었다.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내몰린 피해자들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고, 삶은 철저히 파괴됐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 후에도 사과와 반성 없이 가해 사실을 부정해왔다.
이에 2004년 정부는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피해조사 및 진상규명에 돌입했다. 국가가 나선 첫 전면 조사였다.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와 지자체가 피해 신고를 받아 증거와 증언을 수집했고, 심사 후 피해자 증서를 발급했다. 당시 17개 시·도에서 접수된 피해신고서는 22만6000건에 달했다.
그러나 한시적 성격이었던 특별법은 기한을 연장하는 개정을 이루지 못한 채 2015년 종료됐다. 위원회 운영도 동시에 중단됐다. 신고 기회를 놓친 이들, 재심을 원하는 이들은 방법조차 잃어버렸다. 입증 책임이 피해자에게만 남긴 구조 속에서, 그들의 사연을 들어줄 창구마저 사라졌다.
▲아무도 모르는 지역의 피해자들…실태조차 '깜깜'
도는 인구 규모만큼 피해자와 유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위로금 심사만 보더라도 경기도에서 1만5542건이 진행돼 전국의 13.8%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전남(1만2283건), 서울(1만2702건), 경북(1만1240건), 전북(1만294건) 등이 뒤를 이었다.
올 1월 기준, 정부로부터 피해 인정을 받고 연 80만원의 의료지원금을 받는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 현황도 경기지역에 119명이 거주해 전국 최대였다. 인천일보가 국가기록원 명부에서 본적지·친권자 주소를 기준으로 추산한 경기지역 피해자는 최소 10만명.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한 피해자를 추적하면 이 지역에서 '방대한 증언'을 얻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국 지자체는 강제동원 조사를 정부 소관 업무로만 보고, 구술채록·자료 수집·연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일부가 조사를 시행했더라도 일회성에 그치거나 피해자 선정 범위가 좁아, 실질적 데이터는 남지 않았다. 지역 내 생존한 피해자·유가족을 확인하는 일조차 정부와 지자체 모두 포기한 상태다.
▲"다시 조사해달라"는 외침에 응답한 지방정부
이 같은 공백 속에서 경기도는 지난해 10월까지 전국 최초로 '모든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에 나섰다. 약 5개월이 걸린 조사 결과, 도민 피해자가 최대 13만10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이 드러났다. 추가로 현재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도민 집단 사망사고, 가난의 굴레를 못 벗어나는 2세 유족의 생활상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인천일보가 지난해 3월부터 보도한 피해자 목소리를 구술채록을 통해 '공적 기록'으로 담아냈다.
도의 조사 과정에서 미인정 피해자들은 이처럼 분노와 서운함을 토로했다.
"과거 정부 조사가 부실했습니다", "왜 추가 조사가 없습니까", "돌아가신 분의 명예회복이라도 원합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한 번만 들어주세요"
지자체 차원의 첫걸음이 국가가 포기했던 '기억의 역할'을 복원하고, 잊힌 피해자들의 이름을 역사 속에 되살릴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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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박다예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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