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③ 전사자 기록, 비극적 삶의 궤적 고스란히
한페이지당 한 사람 정보 기록
출신 지역,군 단위 지역명 반영
행불땐 마지막 목격 장소 기재


18일 오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국가기록원 성남분원. 일본 육군이 작성한 '병적전시명부'를 언론사 최초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병적전시명부는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징병자들의 신상과 배치 부대, 복무 이력 등이 기록된 개인별 신상 카드다.
강제동원의 실체를 증명할 수 있는 1차 사료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억울함을 풀고 기억을 되살리는 열쇠이기도 하다.
기록원 성남분원에 도착하니 보안 절차를 거쳐 열람실 성격의 국가기록정보센터로 안내됐다.
신청서를 작성하고 대기하자 직원이 보존용 상자를 내어줬다. 낡은 종이 위에 빼곡히 적힌 일본어 기록들이 눈에 들어왔다.
명부는 당시 출신 지역별로 나눠 정리돼 있었다.
대부분 한 페이지에 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기록돼 있었다. 경기지역의 총 피해자 수는 3000여명. 명부는 출생지와 본적, 징집 날짜, 부대명, 병과, 비상연락망 등을 기록할 수 있는 양식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부대를 증빙하는 도장이 찍힌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수기를 대체할 양식이나 도장을 이용했다는 것은 일본군이 수많은 이들에 대해 명부 작업을 했다는 방증이다.
출신 지역에는 28개 시 대부분이 군 단위였던 당시 지역명이 반영돼 있었다.
고양군과 부천군을 비롯해 옛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서울·인천이 일부 포함돼 있었다.
출신지는 특정 지역에 편중돼 있었는데, 이는 기록 유실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망 등 변고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비상연락망 차원의 '부재 시 담당자'도 쓰여 있었다.
당시 차출인원이 어린 청년들이었던 만큼, 해당 칸에는 대부분 아버지(父)가 기재됐다.
전사자 기록에는 전사 일자와 장소가 남아 있었고, 행방불명의 경우 마지막 목격 장소까지 적혀 있다.
질병자 기록에는 군 부대 소속과 발병 장소가 기재됐을 뿐 아니라 담당 의사의 소견서까지 첨부돼 있었다.
한 사람의 짧고도 비극적인 삶의 궤적이 문서 속에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기록은 건조했지만, 그 안에는 강제로 끌려간 청년들의 생생한 삶과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자료는 유족들이 가족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급력이 크다.
기록원 관계자는 "강제동원 관련 명부는 대부분 수기로 쓰여진 것이고 한국인이 말하면 일본인이 받아적은 경우가 많아 오타나 오기가 굉장히 많다. 유가족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만 찾기 어려울 때가 빈번하다"라며 "이름, 주소지 또는 어디로 끌려갔는지, 지역이 아니더라도 광산인지 공장인지 이런 정보를 유가족으로부터 받아 최대한 추적해서 찾아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료가 지난 5월 공개 전환되면서 기록원은 연말쯤 관련 데이터를 전부 공개할 계획이다.
/박다예 기자 pdye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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