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② '조사 종료'가 지워낸 역사…세상 밖으로

김현우 기자 2025. 8. 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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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인정을” 외로운 외침…유족마저 세상 떠나간다

조사 위원회 2015년 12월 종료
복원 법안 8건 폐기·3건 계류
실제 신고 접수 1년3개월뿐

경기 작년 실태조사…전국 최다
군인·군속·노무자 최대 13만명

도 회원 5000명…기다림 기약 無
정부에 기록·추모 등 관심 촉구
▲ 일제강점기 시절 광산·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간 가족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정부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후손들이 의정부 (사)대일항쟁기강제동원 경기피해자연합회 사무실에 모여 피해자 호적명부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위원회는 2015년 6월 30일까지 존속한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19조의 문장이다. 국가는 그 날짜에 맞춰 조사·심의·등록 업무를 멈췄다. 업무를 총괄했던 국무총리실 산하 위원회는 부활하지 않았다. 제도가 닫히자, 사람에 대한 기록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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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과거의 위원회 존속기한은 국회 여·야 합의를 거쳐 연장을 거듭해왔다. 실제로 정치권은 2012년 12월(1년), 2013년 6월(6개월), 2013년 12월(6개월), 2015년 6월(1년 6개월), 2015년 12월(6개월) 등 다섯 차례 연장을 이끌어냈다. 거기까지였다. 더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았다.

기회는 많았다. 역대 국회에서 위원회 '재조사 기능'을 복원하기 위한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11건이나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8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남은 3건은 22대 국회에서 발의됐는데, 상임위 논의 단계에서 계류 중이다.

사실 피해 신고를 접수한 기간은 위원회 운영보다 더 짧았다. 1차 5개월, 2차 7개월, 3차 3개월, 세 차례에 걸쳐 1년 3개월뿐이었다. '강제동원 피해자'라는 가장 기본의 호명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은 국가의 기억에서 밀려나야 했다. 하소연할 기본 창구마저 사라졌다. 정부와 함께 신고 업무 등을 해왔던 지방자치단체 역시 물러섰기 때문이다. 피해에 대한 고통 호소, 입증 책임은 개인에게만 남았다.

지난해 경기도가 진행한 실태조사는 이러한 '망각'을 거스르는 첫 응답이었다. 기존 기록으로는 결코 확인할 수 없었던 피해 규모와 제도적 단절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오일환 박사(국제정치경제학)를 비롯한 12명의 학자가 연구를 총괄했다. 그는 2007~2014년까지 정부 강제동원 위원회에서 전문위원 겸 유해 팀장으로 일했다. 오 박사는 "7년간 위원회에 있었지만 짧은 신고 기간 탓에 극히 일부만 규명됐다"며 "국가가 포기했고, 지자체가 무관심했는데 경기도가 나선다고 해 연구를 맡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우선 주목한 부분은 묻혔던 수치들이다. 먼저 군인·군속의 경우 일본군이 작성한 구해군군속신상조사표, 유수명부, 등 기록물에서 경기도 본적지 한국인은 2만8139명이었다. 전체 23만8249명 중 11.8%다. 자료를 더해 파악하면 약 3만1853명까지 늘어난다.

노무자 피해도 마찬가지다. 1946년 일제가 작성한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 결과'.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요청해 받은 '소위 조선인 징용자에 관한 명부', '일제하 피징용자 명부' 등을 추적했다. 교차 검증, 보완, 대조, 누락을 메우는 작업이 이어졌다.

연구원들은 이를 통해 최소 2.9%~최대 10.3% 범위를 경기도민 비중으로 추산했다. 한반도 외 강제동원 피해까지 넓혀 비율을 대입하자, 경기도 피해자는 많게 10만여명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군인·군속·노무자를 합해 도민 피해자는 최대 13만여명에 달한다고 예측할 수 있다.

▲ 아버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양영교(70) 할머니가 생전 아버지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양씨 아버지는 일제가 통치했던 남양 군도의 광산으로 끌려갔다./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남·북 통틀어 경기지역에 피해자가 가장 집중됐을 거란 예상도 충분히 가능했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병적전시명부'에 따르면 13개 시·도 출신 군인·군속은 2만23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경기도 출신은 279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상남도 2076명, 경상북도 1984명, 황해도 1901명, 전라남도 1656명, 평안북도 1630명, 함경남도 1490명 등의 순이었다.

피해자가 더 많을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강제동원 자료 자체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으며, 기존에 보유한 것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서다. 광복 80주년인 지금 시점까지 공식 통계가 없는 이유다. 현재까지 정부 조사 기준 전체 피해자 200만명 가운데 신원이 명확하게 확인된 인원은 약 32만명으로, 16%에 불과하다.

정부의 눈길이 시급하다. 경기지역만 봐도 재조사를 바라는 '미인정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다. 강제동원 경기피해자연합회에는 5000명이 넘는 회원이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정부를 향해, 외로이 목소리를 내왔던 유족들도 돌아가시고 있다"며 "경기도의 조사가 더 활발해져 정부를 움직이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추가로 이번 연구에서 ▲도내 358개에 달하는 광산·군수공장·작업장 등 일제강점기 유적과 관련한 역사 보존·기림·추모 노력의 부재 ▲지자체 정책의 실효성 부족 ▲기록 사업 필요성 ▲빈곤과 저학력·저소득 계층에 놓인 2세대 유족 지원책 등이 과제로 제시됐다.

/김현우·박지혜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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