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② '죽어서야 돌아온 고향' 김경선씨 父 이야기
부친, 작은아버지와 사할린 끌려가
십년 후 열댓 살쯤 '日 징용' 처음 들어
그 곳에서 세 자녀 두고 새 가정 꾸려
현지서 귀국 운동 미움사 못 돌아와
돌아가신 후 유해 모셔 그나마 다행
아직 유골조차 환송 못한 분들 있어
피해자·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지금이라도 정부가 책임 다해주길

인천일보가 기록하는 강제동원 피해 증언집. 두 번째는 '갱도 속에 묻힌 청춘', 그리고 '죽어서야 돌아온 고향' 이야기를 전해준 김용규·김경선씨다. 김용규씨 아버지는 대마도와 훗카이도의 탄광·방직공장에서 폭행과 굶주림 속에 노동했다. 지하 깊은 갱도에서 일본인 감독의 욕설과 구타를 견뎌야 했고, 병든 몸으로 해방을 맞은 뒤 세상을 떠났다.
김경선씨 아버지는 사할린 화태로 끌려가 생을 이어갔고, 귀국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후루쇼프와 적십자에 편지를 보내며 귀국 운동을 주도했지만,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거리에서 거름을 치우며 생계를 이어가다 쓸쓸히 눈을 감았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 역사적 증언 기록이 왜 요구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줬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외침이다.

#1. "나는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아버지는 김영배였다. 동네에서는 '유성'이라고도 불렀다. 맏이셨고, 작은아버지와 함께 사할린 화태로 끌려가셨다.
내가 네 살, 다섯 살쯤이었으니 1941년이나 42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는 너무나 어려서 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지도 못했다. '나 다녀오마' 하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셨다. 그 무렵 여동생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내가 뱃속에 생명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 채 떠나신 것 같았다. 내 어린 시절은 늘 빈자리뿐이었다.
아버지는 편지 속 이름이나 동네 어른들 얘기로만 살아 있었다. 어머니도 내가 어린 시절 집을 떠나셨다.
#2. 어린 시절의 빈자리…고난의 행군
나는 부모 없이 자라며 고생이 많았다. 할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이 함께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 대신 할머니 손에 컸다. 학교도 5학년까지만 다니다 6·25 전쟁 때문에 중단됐다. 나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 지며 살림을 도와야 했다. 나는 부모의 사랑을 거의 모른 채 자라야 했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다. 늘 흉년이 들어 먹을 게 부족했고, 농사도 기계가 없어 호미랑 괭이로만 해야 했다. 할머니가 억척같이 사셨다. 장사를 하면서 우리를 키워주셨다.
#3. 사할린에서의 삶과 귀국 운동
내가 열댓 살쯤 됐을 때다. 그제야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아버지가 "일본 징용을 갔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때 서야 왜 아버지가 우리 곁에 없는지,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살았는지 알게 됐다.
아버지가 사할린에 계신 것도 편지를 통해 알게 됐다. 아버지는 사할린 화태에서 새로 가정을 꾸리고 세 자녀를 두셨다고 했다. 편지를 통해서만 그 사실을 알았다. 편지에는 늘 '유성'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귀국 운동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후루쇼프에게 편지도 쓰고, 적십자에도 연락하며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고, 결국 미움을 받아 영주 귀국은 이루지 못했다. 일도 잃고 거리에서 거름을 치우며 지내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아버지의 그 운동 덕분에 다른 많은 분이 영주 귀국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끝내 사할린에서 돌아가시고, 나는 정부의 유해 봉환 사업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모셔 올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유골조차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있다. 유해가 송환된 우리 집안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4. 정부 지원의 필요성
관심이 끊긴 것 같다. 그래서 섭섭하다. 강제동원으로 해외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신 분들, 아직도 소식이 끊긴 분들을 위해 정부가 제사를 지내주고, 기념사업도 꾸준히 해줘야 한다. 사람들이 기억하게 해줘야 한다. 제대로 명예회복을 못 받고, 피해 실태조차 모르는 유족이 많다. 그것이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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