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동원, 이름 없는 피해자들] ⑤ 오일환 박사 “정부의 책임, 지자체가 이어가야”
지자체 최초 경기도 노력 큰 의미
교육은커녕 가난 되물림 '생계난'
1세대서 2세대까지 보살핌 절실
생존자·유족 외침은 기억할 역사
정부 결정적 자료 방기 제일 분노
이젠 희생자 지원 주도적 나서야


"강제동원 피해자 재조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손 놓지 말고, 상호 협력하면 해낼 수 있습니다." 오일환 박사(국제정치경제학)는 20년 가까이 강제동원 진상규명 분야를 지키고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전문가다.
과거 정부의 직속 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고, 이를 통해 400여구의 군인·군속 피해자 유골 봉안과 수만명 분의 기업 미수금 문제 등을 해결했다.
그는 지방정부에서 처음으로 강제동원 지역 피해 규모, 피해자와 유가족 증언 기록 등에 나선 것에 대해 의미가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1 미인정 피해자의 '명예회복'
"경기도의 노력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자체 중 처음으로 '미인정 피해자'를 포함해 명예 회복을 다뤘으니까요. 조례도 정부가 인정한 일부 피해자나 여성으로 한정한 다른 곳과 달리 '모든 피해자'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정부 조사가 2015년 종료된 뒤, 경기도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에 나섰다. 특정 층에 한정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의 목소리와 생활상까지 확인할 수 있는 조사는 국가에서 포기한 업무다. 오 박사는 기쁜 마음으로 연구용역을 맡았다.
이번 조사에서 최대 13만여 명의 경기도민 피해를 추산했다.
이에 대해 오 박사는 "정부는 극소수 의료지원금 대상자만 집계해 실제 피해 규모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2015년 위원회 당시 신고했다가 탈락한 분들, 신고조차 못 한 분들의 행방은 국가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25명의 도민이 현장에서 폭격으로 집단 사망한 사건을 확인한 것도 큰 의미"라며 "도민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건인 만큼 언론홍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 "2세 피해자에 대한 국가·지자체 관심 필요"
현재 생존 피해자는 극히 적다. 자연히 2세 유족들이 강제동원 피해 증언의 주체로 떠올랐다.
"강제동원 피해자는 대부분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없는 국민이었습니다. 결과는 다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였죠. 남겨진 가족은 불우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교육은커녕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힘겨웠습니다"
오 박사는 2세 유족이 겪는 '가난의 대물림'을 이처럼 표현했다. 피해자 유족 상당수는 어려서부터 눈칫밥을 먹으며 살았기 때문에 지금도 피해 호소나 권리 주장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1세대 피해자뿐 아니라, 2세대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보살핌이 절실하다는 게 오 박사 생각이다.
#3.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 분담
국가 책임인 강제동원 재조사와 피해자 지원을 지자체가 이어가는 건, 쉽지 않은 과제다. 오 박사는 지자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로 우선 최소한 2~3년 단위로 피해자와 유족 생존 여부, 생활 형편, 역사적 사실 등을 추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피해 생존자와 유족들의 목소리가 곧 후세가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말했다.
또 "전국적으로 위안부, 근로정신대, 사할린, 원폭 등 엄청나게 많은 지자체 조례가 만들어져있는데 지원을 실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며 "증언 수집이나 구술채록 업무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기록물 분석도 시급하다고 봤다. 이미 정부가 확보한 기록물이 상당히 많으므로, 도민 피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는 취지다.
오 박사는 "지역에 있었던 피해는 물론, 유적지 발굴 등을 도에서 관심 가져야 한다"며 "학계와 전문가에게 분산적 연구용역을 맡기는 방식으로 가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방안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동시에 나서는 것을 꼽았다.
지자체 차원에서 정책과 조사를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하되, 정부도 기능을 되살리고 예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강제동원 책임은 본래 정부에 있다. 정부가 법적 지원금을 지자체에 교부하고, 지자체는 피해자와 유족 관리, 추모·기념사업을 맡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4. "책임 회피하는 정부…분노한다"
그는 정부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표현한 그다.
오 박사는 "제가 제일 분노하는 건, 일본으로부터 결정적인 근거 자료를 확보해놓고도 정부가 이를 피해자들에게 알리거나 활용하지 않는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우리가 조사하고 보상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원 정책의 형평성도 정리해야 한다"며 "지자체마다 정책이 달라, 일부 도입 지역조차 내용이 제각각이다. 남성 피해자나 미인정 피해자는 여전히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한다. 국가가 명예 회복과 지원사업을 주도해, 지자체 간 차이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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