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살 사람', 그러나 누구의 법인가
[임혜인]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은 법이 없어도 될 만큼 양심적이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자신의 판단과 행동이 곧 법이라 여기며, 법의 본래 취지를 초월하여 행동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노동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 그러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판결과 해석을 통해 그 권리가 점점 축소되어 왔다. 이런 현실을 보면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좌우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대법원의 연장근로 시간 해석 변화 - 노동자의 권리 축소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으며, 1일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과거 이러한 법 조항을 해석할 때, 1일 8시간을 초과하는 시간도 연장근로로 간주하여 1일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이 12시간을 초과하면 근로기준법 제53조에 따른 연장근로의 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예를 들어 1일 15시간씩 3일 근무하면 연장근로가 총 21시간이 되므로 근로기준법 위반이 되는 구조였다.
그러나 2023년 12월 7일 대법원은 노동부의 기존 해석을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만으로 근로기준법 제53조에 따른 연장근로의 제한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1일의 연장근로 상한을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1주간의 연장근로가 12시간을 초과하였는지를 판단할 때 1일 8시간을 초과하였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변화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이틀간 24시간 중 21.5시간(최소 휴게시간 2.5시간 가정)을 근무하고 9시간을 추가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해지며, 여러 사업장에 고용되며 소위 'N잡'을 수행하는 노동자가 각기 다른 사업장에서 매일 21.5시간씩 근무를 지속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장근로는 당사자 간 합의로 시행되므로, 사용자의 연장근무 요구에 노동자가 거부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사회의 기업 문화는 여전히 상사의 지시에 대한 암묵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노동자가 연장근로를 거부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대법원의 판결은 연장근로를 억제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에 따르면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을 말한다. 통상임금은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연차휴가미사용수당 등 법정 수당 산정의 기준이 되므로, 통상임금의 범위가 어디까지 포함되는지는 노사 간 핵심적인 쟁점이다.
과거 대법원은 2013년 12월 18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통상임금의 개념을 정리하며 '고정성'이라는 요소를 추가했다. 즉,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정기적, 일률적'일뿐만 아니라, 고정적으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통상임금의 판단 지표로서 정기성과 일률성은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명시된 기준인 반면, '고정성'은 법원의 해석에 따라 창조된 개념이다. 당시 법원은 통상임금의 고정성이란 '근로자가 제공한 근로에 대하여 그 업적, 성과, 기타의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당연히 지급될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질을 말하고 고정적인 임금은 임금의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임의의 날에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한 근로자가 그다음 날 퇴직한다 하더라도 그 하루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받게 되는 최소한의 임금'이라고 설명하였다.
대법원이 고정성을 통상임금 판단 지표로 새로이 제시한 이후, 기업들은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해 재직자 조건(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사람에게만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건), 만근 조건(일정 기간을 만근하였을 때만 수당을 지급한다는 조건) 등 불확정적인 조건을 부가하기 시작하였다. 사용자가 노동자가 받는 각종 수당에 일정 조건을 부가하여 통상임금을 한없이 낮출 수 있는 상황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기존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고, 통상임금 판단 기준에서 '고정성'을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통상임금 판단 지표로서의 고정성은 법령의 근거도 없고 통상임금의 범위를 부당하게 축소하며 법적·강행적 개념인 통상임금의 성질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논란이 많았던 통상임금의 고정성에 대해 법원이 재정립한 것은 다행이나, 판결문을 읽어볼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통상임금이 법적·강행적 개념이라면 애초부터 법원은 왜 법문에도 없는 고정성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원의 입장 변화는 단순한 법리적 논의로 끝나지 않는다. 과거 대법원 해석에 의거 노동자의 통상임금이 축소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노동자가 받을 수 있었던 각종 법정 수당이 줄어들었으며, 수많은 노사 분쟁이 발생했다. 법원이 이제 와서 기존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그동안 침해된 노동자의 권리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노동법을 누더기로 만들지 말라
노동법의 해석과 적용은 단순한 법리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사용자의 지시에 대항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의 보호 기능과 안정성을 저해할 뿐이다. 결국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노동법을 바라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노동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사 간 공정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순한 법리적 문제를 넘어 노동법의 취지와 노동자의 현실이 반영된 법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을 집행하고 해석하는 주체들은 노동법의 본질적 역할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노동법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며, 이를 누더기로 만들지 않는 것이야말로 정의로운 법치주의의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인 임혜인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공인노무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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