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막았던 이 버스 타니... 45년 전 5월 18일로 돌아갔다
[박장식 기자]
|
|
| ▲ 지난 5월 18일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함께 운행한 '5.18 사적지 투어 버스'가 광천동 재개발지구에 정차해 있다. |
| ⓒ 박장식 |
'시민은 도청으로', '오월의 광주가 빛의 혁명으로'와 같은 문구가 앞뒤에 붙은 이 버스는 실제 20세기에 생산된 '아시아자동차'의 중형버스를 활용해 운행하는 '레트로 버스'. 지난 12.3 내란 정국 당시 시민들과 함께했던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함께 의기투합해 운행한 '5.18 사적지 투어 버스'였다.
5.18 기념재단 해설사가 탑승한 '5.18 사적지 투어 버스'는 18일 단 하루 운행했고, 어쩌면 다시 운행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만큼 타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시간 동안 광주를 한 바퀴 돌았던 레트로 버스는 어떤 여정을 거쳤을까.
버스 곳곳에 묻어난 '12.3 내란' 극복의 흔적
5.18민주광장 한복판에 특별한 정류장이 생겼다. '레트로버스' 표지판을 달고 있는 정류장에는 버스 노선도 대신 출발 시간표가 놓였다. 오전 11시부터 네 차례 운행을 안내하는 시간표 옆에는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에서 써넣은 '매진' 표시가 선명하다.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는 더욱 특이하다. 19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생산된 '아시아자동차'(현재의 기아) 중형 차량인 AM828, '코스모스' 버스가 옛 광주시내버스 도색을 하고 서 있다. 버스 한쪽에는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와 5월 17일 전야제의 '버스 꾸미기' 행사 때 시민들이 적어 놓은 메시지가 남아 있다.
|
|
| ▲ 지난 18일 진행된 5.18 사적지 투어 버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레트로 버스' 안에 지난 12.3 내란 정국 당시 시민들이 붙인 '연대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
| ⓒ 박장식 |
이 버스는 지난 12.3 내란 정국 당시 시민들을 위한 난방 버스로 함께 했고 시민 행진에서도 '동반자' 역할을 자처했다. 옛 버스를 '과거의 정신이 지금을 구했다'라는 특별한 이유로 운행한 덕분에 '출장'도 다녀온 소중한 차량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눈에 띄는 것은 버스 오른쪽 창문이다. 난방 버스를 이용한 시민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스티커를 빼곡히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노동권, 성소수자 연대 등 다양한 주제의 스티커들이 광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낸 듯했다.
차량을 둘러보는 사이, 버스에는 빈자리 없이 빼곡히 시민들이 앉았다. 구도청, 지금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한 바퀴 돌면서 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5.18 기념재단 고명숙 오월지기 안내해설사가 버스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가운데, 버스는 천천히 첫 목적지인 양동시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시선 집중', 손 흔들며 정 나누기도
5.18 민주화운동에서 버스의 의미는 꽤나 중하다. 계엄군 발포 당시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는 시민들을 위한 바리케이드가 되었다. 시민군을 위한 교통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가 주남마을 학살과 같은 안타까운 현장의 증인도 되었다. 그런 의미를 다시 새기며 출발한 버스였다.
그런 의미를 시민들도 알기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사라진 지 한참 된 옛 버스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구호와 함께 광주 도심을 달리니 그럴 만도 했다. 바깥에서 손을 흔드는 시민들을 향해 탑승객들 역시 함께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
|
| ▲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와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가 함께 의기투합해 지난 18일 운행한 '5.18 사적지 투어 버스'가 운행을 마치고 5.18민주광장 앞에 정차해 있다. |
| ⓒ 박장식 |
시민들이 치료를 받았던 옛 병원들을 둘러본 데 이어 버스가 멈춘 곳은 재개발지구 한가운데 있는 광천시민아파트 앞. 1970년 지어진 광주의 첫 아파트인 광천시민아파트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가 제작되고 '들불야학'의 요람 노릇을 했던 곳이다.
재개발지역 한 가운데인 만큼 시간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 어딘가에 멈춰 있다. 광천시민아파트는 남는다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재개발 지구는 최근 거주자들의 이주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터라 조만간 사라질 것이 자명한 상황. 멈추어 있는 버스와 풍경이 말 그대로 시계를 거꾸로 돌린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무등경기장을 지날 때는 야구 경기가 막 끝난 터라 한동안 5월 18일에는 경기를 하지 못한 해태 타이거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버스에 탑승한 시민들 이야기도 어느새 '오늘 기아 타이거즈가 이겼냐'로 번졌고, 승리했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5.18인데 홈에서는 꼭 이겨야지'라는 화답이 이어졌다.
두 시간 정도 걸린 투어의 끝은 금남로였다. 버스를 본 시민들의 환호에 차 안에서도 화답하는 모습을 보니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군들이 오른 버스의 느낌이 들었다. 1980년 5월로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했던 감사한 경험이었다.
|
|
| ▲ 지난 18일 진행된 5.18 사적지 투어 버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레트로 버스'의 차 안. 고명숙 오월지기 안내해설사(가운데)가 탑승객들에게 경로를 안내하고 있다. |
| ⓒ 박장식 |
강산이 여러 번 지날 정도로 오래된 버스가 최근 나온 버스 못잖을 정도로 잘 관리된 모습을 보여 반가웠다. 지난겨울 많은 시민이 이용한 버스이지만 시트 터진 곳도 꿰매고 정비도 하면서 지금의 고급 버스 못잖은 모습을 보여준 것만 해도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가 이룬 큰 성과였다.
고명숙 안내해설사는 "특별한 버스라는 공간으로 현장에 직접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답사하시는 분들이 특별한 분위기 덕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셨다"며 "올해 5월 18일에만 이 행사를 해서 아쉬움도 있지만, 5.18의 형태를 가진 차량을 통해 정신이 이어진 만큼 앞으로도 더욱 좋은 행사를 치렀으면 좋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하면 11년 6개월이 지난 버스는 아무리 관리가 잘 되었더라도 불특정 다수의 여객을 태우기 어렵다. 이번 운행도 참가비조차 받지 않는 '무료 운행'으로 나섰다. 여러 어려움을 딛고 운행한 버스이지만, 앞으로 뜻깊은 행사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기 위해서는 더욱 좋은 방안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시민항쟁버스 운영위원회 민동혁 대표도 "처음 치렀던 행사였기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면서 "오늘 행사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시고 반응이 폭발적이었기에 정말 감사하다. 다음 기회에 더욱 자리를 잡아 원활하게 행사를 치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봉에 공부까지... 화려한 야구장 전광판 뒤 슬픈 사연
- '형수욕설' 꺼낸 김문수, 이재명 "전광훈과 관계 청산 못했나"
- 권영국, 이준석 직격 "질문이 잘못됐다"...'전장연·동덕여대 갈라치기' 비판
- "중간고사 볼 거면 국대 포기하라고... 운동선수는 공부하면 안 되나"
- 강릉 단오제에 오신다면 '여기'는 꼭 들러보세요
- 40여 년차 편집자가 신입사원에게 꼭 하는 말
- '롯데리아 회동' 원스타 "노상원, 군 진급 미리 알았다"
- 대법관 논란에 '자중' 지시한 이재명, '긁어부스럼' 경계령
- 푸조 308 하이브리드 기술, 전기차 대안으로 떠오르나
- 토론회에 또 등장한 RE100...김문수, 엉뚱한 답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