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목마다 옹기종기 놓인 쓰레기봉투가 던지는 질문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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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 마을 거점 곳곳에 배출된 일반 쓰레기. |
| ⓒ 월간 옥이네 |
1995년 1월 1일부터 쓰레기종량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이후로 '버리는 일'에도 값이 매겨졌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높아진 도시의 인구밀도, 그에 따라 늘어난 쓰레기 배출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한 제도다.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림'으로써 책임 있는 배출 습관을 만들고자 한 것인데 도시의 문제에서 시작된 이 제도가 농촌에도 적합했을까?
도시에서는 분리수거함, 전담 인력 등 체계적인 관리 방식이 상식처럼 자리잡았다. 반면 농촌의 상황은 다르다. 인구는 적고 집은 띄엄띄엄. 낮은 인구 밀도와 고령화 속에 '분리수거함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부터 문제다. 무엇보다 쓰레기 역시 '내 손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는 자급의 문화가 깊은 이곳에서 제도의 공백은 땅에 묻거나 소각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일회용품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는 다시 농촌의 문제가 됐다. 농촌 쓰레기 처리 정책의 공백은 보건·위생을 넘어 마을 전체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는 일로 번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을은 나름의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1리와 장연리는 그 두 가지 상반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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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 전경. |
| ⓒ 월간 옥이네 |
"4년 전에 설치해서 2년쯤 쓰다가, 감당이 안 돼서 폐쇄했어요. 수거함이 방치돼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내후년이면 여기에 경로당을 증축할 계획인데, 애써서 설치한 거 버리자니 또 아깝고 갖고 있자니 골칫덩이고..."
마을 앞 정자에서 만난 산계1리 전형도 이장은 분리수거함 이야기에 한숨을 내쉰다. 2021년, 부푼 꿈을 안고 옥천군 재활용 동네마당 지원사업으로 설치했던 시설. 청성면에서는 처음으로 설치한 것이었기에 인근 주민들도 관심이 많았다. 초반에는 주민들을 모아놓고 쓰레기 배출 교육을 진행하며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생기면 마을 경관도 좀 더 깔끔해지고, 주민들도 쓰레기 버리기가 좀 더 수월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 제대로 운영이 어렵더라고."
산계1리 마을주민뿐 아니라 청성면 다른 마을, 심지어는 인근 지역에서도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한 것. 면소재지이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목인 산계1리이기에 더욱 그랬다. 대충 버린 쓰레기는 이곳을 말 그대로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청성슈퍼 앞에서 만난 주민들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외지에서 차를 타고 와서는, 쓰레기를 그냥 던져놓고 가기도 했어요. 종량제봉투에도 안 넣고 그냥 버리고 가고..." - 박용보씨, 87세
한번 분리수거함이 무질서해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외지 사람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이곳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잦아졌고 마을 내부 분란으로 이어질 법한 순간도 많았다.
"CCTV를 설치해서 누가 쓰레기를 무단투기 했는지 살펴보고, 마을 방송으로 '무단투기한 쓰레기 되찾아가시라'고 안내를 하기도 했어요. 이것 때문에 감정 상한 주민들이 생기고, 이장으로서도 참 어려웠죠.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마을 이장이 청소부가 돼버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쓰레기 수거 업체의 담당자마저 이러한 마을 상황을 파악하고 "차라리 폐쇄하시는 게 낫겠다"는 조언을 건넬 정도였다.
"제가 이것(분리수거함 관리)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말씀드리니, 수거업체 담당자가 '다른 지역 마을에서도 이런 경우 여럿 봤는데 그곳도 결국 폐쇄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그렇게 산계1리 마을공동 쓰레기 분리수거함은 설치 2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로도 폐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단 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이제 마을주민들은 이전에 했던 것처럼 쓰레기 수거차량이 지나는 길목 곳곳에 종량제봉투와 재활용쓰레기를 내놓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다. 특별한 표시는 없지만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장소. 쓰레기 수거차량은 일주일에 두세 번 마을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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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리의 재활용 동네마당은 문을 닫았다. |
| ⓒ 월간 옥이네 |
"(마을공동쓰레기 분리수거함 운영) 당시에 가장 큰 아쉬움은 관리인력이 없다는 거였어요.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이곳을 관리하는 인력을 지원해주면 참 좋을 텐데 싶어요. 우리 마을에도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마을을 가꾸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그런 것처럼 한두 분을 공동분리수거함 관리 인력으로 배정한다면 노인일자리 창출 면에서도, 주민들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산계1리는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린다"는 개념이 낯선 고령 주민을 배려해 마을 차원에서 종량제봉투를 구매해 나눠주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금강수계관리기금으로 마을에 제공되는 지원금을 여기에 활용하려는 것.
"아무래도 과거에는 종량제봉투에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았으니까……돈 주고 쓰레기 버리는 것을 아깝게 여기는 주민분들도 계시죠. 이렇게 되면 불법소각으로 이어지기 쉬워요. 종량제봉투를 마을에서 구입해 무상으로 제공해드리는 것이 어떨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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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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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 아랫마을 공동분리수거함과 폐비닐 수거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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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번제 운영은 회의를 통해 정했어요. 주민들이 쓰레기 처리문제에 공감했고, 우리 마을 상황에 맞는 해결방안을 고민하다 보니 지금의 규칙을 만들게 된 거죠. 당번제에 참여하는 75세 이하 주민은 20여 명인데, 주택 위치를 기준으로 돌아가요. 한 달에 한 번 당번이 바뀌면 분리수거함 열쇠를 다음 당번, 옆집 주민에게 전하는 거예요. 물론 사정이 생기면 당번 순서를 사전에 바꿀 수도 있고요. 직접 열쇠를 전하는 방식이니 인수인계도 확실하게 되는 효과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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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 윗마을 공동분리수거함. 글을 읽지 못하는 주민을 배려해 캔, 병, 플라스틱류 실물을 붙여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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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에서 장연리로 귀촌했다는 김숙자(59)씨는 도시와 농촌에서의 쓰레기 배출방식의 차이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주말에만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게 조금 불편한 점이지만, 모두의 편리를 위해 감수해야죠. 저는 도시에서 귀촌했지만 사실 당번제 자체가 그리 낯설지는 않아요.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는데 그곳에서도 당번제를 두어 쓰레기 배출 관리를 했죠. 그때는 분리수거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고, 깨끗하게 관리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힘들었어요. 이곳은 분리수거함도 깔끔하고, 주민들이 당번제 참여와 쓰레기 배출에 책임감 있게 임해주고 있어서 만족합니다."
종량제봉투도 금강수계관리기금을 활용해 마을 차원에서 구입해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1년에 180만 원가량 지원받는 기금으로 2~3년에 한 번씩 종량제봉투를 구매하고 구역별로 30~50장씩 나눠 사용한다. 이렇듯 쓰레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깨끗한 마을 환경을 유지하고 있는 장연리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고. 백용현 이장은 과거 상황을 설명했다.
"분리수거함을 만들기 이전에는 쓰레기를 분리배출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죠(웃음). 쓰레기의 종류와 관계없이 전부 소각하는 것이 일상이었어요. 심지어 캔도 같이 태워서 연소되지 않는 것은 땅에 묻어두곤 했으니까요."
화학물질을 내뿜는 쓰레기를 소각하면서 발생하는 악취와 연기로 인해 고통받던 시절이다. 이후 분리배출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이를 지키고자 노력하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이웃 간 감정이 상하는 일도 생겼다.
"이장님이 마을 방송으로 철저한 쓰레기 배출을 강조하면서 '누구누구 할머니, 어디에 버린 쓰레기 도로 가져가세요'라고 방송을 하시기도 했어요. 이러면서 서로 감정이 상한 거죠(웃음)."
마을 회의를 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공유했고, 만장일치로 지금의 당번제가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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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청성면 장연리 전경. |
| ⓒ 월간 옥이네 |
"이제는 주민들도 '우리마을 만큼 깨끗한 마을 없다'고 자부할 정도예요. 쓰레기 분리수거함만 만드는 데서 그쳤다면 지금의 장연리는 없었겠죠."
장연리 사례는 단순 시설 설치와 미비한 정책 지원을 넘어 사람의 힘을 보여준다.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가 쓰레기 문제까지 함께 돌보는 구조가 작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마을이 이 같은 역량을 갖추고 있진 않다. 행정 지원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관리인력이 없는 마을을 위해, 산계1리 이장의 제안처럼 노인일자리사업과 분리수거 관리가 연계될 수 있다면 어떨까? 예산과 형평성을 이유로 추진이 무산된 현실은, 제도의 지속성을 고민하기보다 형평성이라는 명목 아래 문제 해결을 유예하는 행정의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환경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마을이 공동의 문제를 어떻게 공유하고 해석하며,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간 적합한 해결책 없이 이어져오던 농촌 쓰레기 배출·수거·관리 문제. 이 익숙한 풍경 뒤, 마을은 오늘도 자신만의 답을 찾고 있다.
월간옥이네 통권 95호(2025년 5월호)
글 사진 한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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