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건’ 희토류 꺼내든 中 vs ‘전략자원’ AI 반도체 반격 나선 美

오유진 기자 2025. 4. 1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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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의 총성 없는 전쟁…승자는 누구일까
트럼프 “중국 붕괴시켜야” vs 시진핑 “끝까지 맞설 것”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미국과 중국이 자원을 무기로 무역전쟁 2라운드에 돌입했다. 대중 145%, 대미 125%의 관세로 전쟁을 시작한 양국이 뜻을 굽히지 않자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하 시진핑)은 한 손에는 관세를, 다른 손에는 반도체·희토류 등 상대국에 타격을 입힐 전략자원을 무기로 연일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이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희토류다. 중국은 4월4일 희토류 6종 및 희토류 자석에 대한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희토류는 전기모터 등에 사용되는 자석의 핵심 재료로, 인공지능(AI) 반도체칩을 비롯해 전기차·전투기·미사일 등 첨단제품 생산 시 사용되는 필수 광물이다. 중국은 전 세계 가공 희토류의 90%를 생산하는데, 미국의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는 70%에 달한다.

ⓒ챗GPT 생성 이미지

F-35 전투기 1대에 희토류 400kg 필요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미국 방산업체들이 보유한 희토류 비축량은 수개월치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F-35 전투기 한 대를 만드는 데 약 400kg의 희토류가 필요하다. 미국 희토류 기업 MP머티리얼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리틴스키는 "드론, 로봇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의 공급망이 닫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며 "첨단·군수 산업 공급망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중국은 보잉 여객기 인수 중단, 미국 영화 수입 축소 등 전방위적 조치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또 다른 비장의 무기로 반도체 수출 통제를 택했다. AI 개발의 핵심이 되는 반도체를 사실상 중국에 보내지 않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4월15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로부터 중국 등으로 'H20'을 수출할 때 반드시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고 공시했다. H20은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만든 저성능 AI 반도체로, 중국으로 수입되는 반도체 중 가장 성능이 좋아 딥시크 등 중국 AI 기업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월16일에는 미국 AMD, 인텔의 반도체칩, AI 가속기 등도 대중 수출 규제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AI 및 슈퍼컴퓨터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압박 조치로 수출 제한을 택한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국지전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테무·쉬인을 겨냥해 소액 소포에 대한 12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곧바로 미국행 화물 중단 카드를 꺼내들었다. 해상의 경우 4월16일부터, 항공은 4월27일부터 전면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소포 발송을 아예 중단해 사실상 미국에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초강경 태도로 나온 것이다.

엔비디아, 중국에 'H20' 수출 때 허가 받아야

당초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트럼프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당시 꺾지 못했던 중국의 기세를 확실히 누르기 위해 지난 2월을 시작으로 중국에 무려 145%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 임기  실패로 귀결된 미·중 합의로 다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영국 BBC는 "반중 메시지를 앞세워 백악관에 돌아온 트럼프에게는 관세 부과가 보복 이상의 의미"라며 "트럼프는 첫 임기 당시 완수하지 못했던 중국의 무역 시스템 붕괴를 성공시키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보다 더 강력한 무기로 중국을 공격한 만큼 중국이 저자세로 협상에 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이 예상과 달리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갈등은 오히려 격화되는 분위기다. 트럼프의 시나리오를 정면으로 벗어나고 있는 셈이다.

시진핑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을 찾는 대신 높은 상호관세율을 부과받은 베트남 등을 방문해 반미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박한진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특임교수는 "중국이 트럼프 1기 당시 당했던 모욕과 설움을 되갚기 위해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자세로 몸집을 키워왔다"며 "미국을 따라잡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던 첨단기술에서도 딥시크 등을 내놓는 등 '대륙'을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기 위해 기다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이 수출 규제로 각자의 '급소'를 노리는 가운데, 현재까지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건 중국이다. 중국은 2018년 이후 무역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대미 의존도를 크게 낮췄다. 미국산 비중이 60%에 달했던 대두(콩)가 대표적이다. 미·중 분쟁 이전인 2017년 미국에서 약 122억 달러 규모의 대두를 수입했던 중국은 2018년 대미 대두 수입액을 31억 달러로 크게 줄였다. 대신 브라질 등 대체 공급처를 확보했다. 현재 중국의 대두 수입은 브라질산이 71%, 미국산이 20% 수준이다. 미국이 막대한 관세를 부과해도 중국이 이를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메리 러블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누가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게임"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침략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견뎌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전자제품을 비롯해 여전히 대중 수입품 의존도가 높다. 아이폰 생산량의 8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 애플이 대표적이다. 미국 포춘 등에 따르면, 중국산 아이폰16 프로맥스에 관세가 적용될 경우 1599달러인 아이폰 판매가가 약 2300달러까지 인상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산 비중이 80~90%에 달하는 자전거, 장난감은 물론 의류·섬유 등 소비재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크리스토퍼 콘런 뉴욕대 교수는 "타깃, 월마트, 아마존 등 주요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제품 50~60%가 중국산으로, 대부분이 관세 인상 폭만큼 오를 수 있다"며 "관세는 결국 수입자(미국)에게 전가되고, 장기적으로도 미국 내 제조업 부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월9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오만한 괴롭힘에 반드시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PA 연합

"트럼프, 자존심 탓에 양보 꺼릴 것"

체면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특성상 중국에 먼저 협상을 제안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가 중국과의 관세전쟁에서 밀리면 곧바로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질 수 있고, 내년 중간선거 패배는 물론 미국의 패권을 중국에 영영 빼앗기는 모양새가 될 수 있어서다. 트럼프는 4월15일에도 "중국은 우리와 협상해야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협상할 필요가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국제무역센터는 이에 대해 "양국의 경제 피해로 인해 상반기 중 부분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유권자 의식, 자존심 등으로 양보를 꺼리면서 내년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내다봤다.

관건은 트럼프의 폭주에 미국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얼마나 버텨주느냐다. 시장 곳곳에서는 이미 미 국채 등 안전자산까지 흔들리면서 위험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최근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5%까지 급등하는 등 44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고,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도 3년 만에 최저 수준(99.005)까지 하락했다. 트럼프가 4월9일 중국 외 국가에 대해 상호관세 유예를 발표한 것도 미국 채권시장 등 금융 불안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와 자국 기업 피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4월14일 미국 미시간대 설문에 따르면, 미국인의 1년 기대 인플레이션 수치는 3.6%로 2023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경제 불안으로 인해 측근이나 지지자들이 이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트럼프가 상호관세를 발표하던 때와는 달리 관세 부과에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이념과 철학이 아닌, 지지자들의 반응과 돈의 흐름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이라며 "미국 경기 침체가 확실시될수록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관세전쟁을 지속하는 대신 시진핑 등과의 회담 등을 연출해 마치 자신이 협상을 끌어낸 것처럼 '이미지 정치'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치킨게임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현재 미·중 양측은 공식 대화 채널은 물론 비공식 채널까지 소통의 문을 닫아둔 상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시진핑 간 대화를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왕이 외교부장, 셰펑 주미 중국대사 등 중국 고위 관리들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비공식 접촉을 시도했으나, 모든 소통 창구가 막힌 상태"라고 전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문제가 해결되긴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란 두 고래의 싸움으로 인해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미·중 무역분쟁으로 세계경제가 이분화되면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약 7% 감소하게 된다. 대미·대중 수출 비중이 약 40%에 달하는 한국의 피해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한국이 관세 협상 속도를 늦춰 구체적 타개책을 찾은 후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악관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 영국, 호주, 인도 등과 함께 관세 관련 5대 우선협상국에 포함된 상태다. 김흥규 교수는 "미·중 갈등이 정점을 찍은 상황에서 먼저 협상 패를 꺼내 분위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며 "최대한 협상을 지연시키면서 일본, 영국 등의 협상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조선업과 LNG 등 우리의 강점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협상을 유도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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