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보다 더 치열하다는 ‘明心 경쟁’…이재명의 용인술에 “2인자는 없다”

변문우 기자 2025. 4.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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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파트만 6개, ‘무한경쟁’ 통해 시너지 효과 꾀해…“자기정치 하는 사람 싫어해”
이재용 만나 ‘차기 권력’ 이미지 노려…‘탄핵 정국’ 이후 ‘文 청와대 경험’도 높이 사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어떤 정책이 누구 생각에서 시작된 것인지 그건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것이 더 유용하고 더 필요한지가 최고의 기준이 돼야 합니다." 지난 대선에서 고배를 마신 지 3년 만에 '권토중래' 기세로 돌아온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월10일 대선 출마선언 영상을 통해 이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앞서 강조해온 '흑묘백묘론'의 연장선에서 '계파·이념'과 상관없이 성과만 낼 수 있다면 기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여기엔 '이재명의 용인술'도 녹아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조기 대선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정치권 스포트라이트는 자연히 '이재명의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다. 차기 정부 역시 8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없이 곧바로 임기에 돌입하는 만큼 이 전 대표 측근들이 대통령실과 내각을 비롯한 정부 요직에 대거 기용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현재 이재명의 사람들은 본부대인 '대선 경선 캠프'부터 별동대 역할의 각종 '정책' 조직과 '특별위원회'까지 각기 다른 그릇에 담겨 있다. 인물은 170명의 의원에 전문가들까지 수백 명에 이른다. 눈에 띄는 포인트도 있다. 뚜렷한 '이재명의 복심' 즉 2인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의 용인술은 ①무한경쟁(2인자는 없다) ②여론 중시(국민 여론이 의사결정의 기준) ③만용 경계(자기정치 하는 사람을 멀리함) ④경험 중시(청와대 경험 등 주요 경험 선호) ⑤주류적 사고(주류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라) 등 크게 5가지 특징을 가진다.

"차기 당권 설왕설래…李에게 복심은 없다"

이재명 경선 캠프에는 친명(親이재명)·친문(親문재인)·중도 인사들이 고루 중용됐다는 평이 많다. 5선 윤호중 의원이 캠프 선대위원장을, 3선 강훈식 의원이 총괄본부장을 맡아 경선을 진두지휘한다. 여기에 윤후덕(정책)·김영진(정무)·김병기(조직)·한병도(상황)·이해식(비서실장)·김용만(수행)·박수현(공보)·박상혁(홍보)·이소영(TV토론)·강유정(대변인) 의원 등이 주요 파트를 분담했다. 김영진·김병기·이해식 의원은 친명계, 한병도·박수현 의원은 친문계로 분류된다.

정책을 담당하는 참모 조직도 6개의 기둥이 되어 가동 중이다. 이 전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떠오른 김민석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의 '집권플랜본부'와 이언주 최고위원의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는 물론, 이 전 대표의 경제 멘토인 유종일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와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의 '성장과통합' 싱크탱크도 최근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여기에 진성준 의장이 이끄는 '당 정책위원회'와 이한주 원장의 '민주연구원'도 뺄 수 없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기본소득 등 핵심 공약을 구체화하는 '기본사회위원회(박주민 수석부위원장)'도 물밑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성호 의원을 필두로 한 '7인회(김영진·문진석 의원, 김병욱·김남국·이규민·임종성 전 의원)'도 이번 캠프 인선에선 거리를 두고 있지만 원조 친명계 핵심 라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성남·경기' 보좌진 라인인 김남준 전 당대표 정무실장과 김현지 보좌관은 이 전 대표의 성남시장·경기지사 시절부터 함께한 실무그룹 핵심 인물이다. 이번 경선 때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물밑에서 이 전 대표를 도우며 활약하는 '친위대'로 활동할 전망이다.

탄핵 정국을 통해 입지를 굳히거나 새롭게 등극한 측근들도 있다. 박찬대 당대표 대행 겸 원내대표와 김민석 최고위원이 기존 입지를 공고히 했다면,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최고위원과 국가정보원 1차장 출신인 박선원 의원은 계엄 이슈를 키우며 새로운 실세로 올라섰다. 여기에 탄핵소추단장으로서 윤 전 대통령 탄핵 임무를 완수한 정청래 의원과 각종 국면에서 이 전 대표를 엄호해온 중진 추미애 의원과 3선 최민희 의원도 있다. '연금 개혁'을 주도한 강선우·김남희 의원이나 '외교·통상' 이슈에서 활약 중인 위성락 의원도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전문가층만 조직별로 수십 명부터 수백 명대 단위로 가세하는 등 이재명의 사람들은 소위 '포화' 상태다. 하지만 이들 중 이 전 대표의 당무 공백을 완벽히 대체할 만한 2인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 때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윤건영 의원, 김경수 전 지사 등 뚜렷한 '복심'이 존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과연 이재명의 용인술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여섯 번째)가 4월11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선 경선 캠프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의 용인술① 2인자는 없다: 취재에 따르면, 민주당 안팎에선 복심을 두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이 이재명 용인술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인자를 두는 대신 무한경쟁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꾀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선 차기 당권을 누가 쥐느냐를 두고 관측이 분분하다. 차기 국무총리부터 각 부처 장관에 대한 하마평도 다양하게 나오는데, 여기에는 누구 한 사람에게 명심(明心·이재명 전 대표의 의중)을 실어주지 않는 특유의 리더십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있다. 한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초 차기 당권이 가장 유력한 사람으로는 정청래 의원을 당내에서 많이들 꼽았는데, 최근에는 김민석·박찬대·추미애 의원까지 가세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귀띔했다.

이 전 대표도 이 같은 상황을 활용해 경선 캠프와 각 정책 조직들을 경쟁시키며 집권 플랜을 양질의 정책들로 채우는 '시너지'를 노리는 모습이다. 실제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AI(인공지능)'와 '경제 성장' 등 핵심 비전 공약 고안을 한 조직에 일임하지 않고 여러 조직에 맡겨 경쟁시키고 있다. 친명계 정책 파트 핵심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일정이나 정책을 보고받을 때도 조직별로 A부터 C안까지 받은 후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며 "대선보다 조직 간 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재명의 용인술② 여론 중시: 이재명 용인술의 두 번째 특징은 핵심 참모들이 직접 여론 탐색전을 거쳐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도록 주문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슈나 의제에 대해 자신은 공식 석상에서 키워드를 던진 후 그에 대한 마스터플랜이나 액션플랜은 각 파트의 핵심 수장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이에 해당 수장들은 언론 등을 통해 구체화된 계획을 흘려 여론 동태를 파악한다. 여기서 나온 피드백을 반영해 방향과 속도를 유연하게 조정하게 하는 점이 이 전 대표 용인술의 주된 특징이라는 분석이다. 여론 수렴 과정에서 설사 부정적 여론이 커져도 이 전 대표는 치명타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이 전 대표가 띄웠던 '중도보수' 키워드는 물론 그 일환으로 나온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코인세) 유예' 등도 진성준 의장을 비롯한 정책위에서 여론을 파악해 일부 방향을 조정하는 등 실무 작업을 이행했다는 후문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금' 정책의 경우도 여론 반응을 분석한 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방향을 수정해 추경(추가경정예산) 안으로 추진한 바 있다.

이재명의 용인술③ 자기정치 경계: 이재명 용인술의 도드라진 특징으로는 2인자를 두지 않는 특성과 맞물려 어느 한 사람이 유독 큰 목소리를 내며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도 꼽힌다. 실제 언론 등에서 이 전 대표의 핵심 참모 등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거나 낙점됐다는 보도가 이어지면, 이내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둔다는 말이 민주당 내부에서 나온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은 "최근 정책·전략 파트의 일부 인사도 '내가 이재명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는 취지로 언론 플레이를 하면서 견제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전 대표도 멀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3월20일 서울 강남구 멀티캠퍼스 역삼 SSAFY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로비에 마중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의 용인술④ 경험 중시: 이 전 대표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 등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들의 경험을 높이 사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권혁기 당대표 정무기획실장이 꼽힌다. 권혁기 실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춘추관장을 했던 '친문'이자 '정세균계' 인사임에도 최근 이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중용되고 있다. 이번 정부도 인수위 없이 곧바로 임기에 돌입해야 하는 만큼 8년 전 탄핵 정국 이후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활약했던 인사들의 경험을 높이 사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 이 전 대표나 이 전 대표의 핵심 측근 중 청와대나 정부 내각을 경험해본 이는 극히 드물다. 그런 만큼 새 정부에 어떤 인물이 적합하고 어떤 계획부터 시행해야 하는지, 또 전임 정부 인사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어떻게 해야 정부가 안정적으로 굴러갈지 등 '산적한 과제'를 같이 풀어나갈 경험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각에선 이미 이 전 대표 측에서 '대통령실 인선' 명단 구상과 관련한 내부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의 용인술⑤ 주류적 사고: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부터 금융권 핵심인 '6대 은행장'과 한국의 엔비디아로 꼽히는 '퓨리오사AI'까지, 이 전 대표가 최근 만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 전 대표의 노림수가 보인다는 분석이 많다. 이들을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소년공'부터 '권력의 정점' 눈앞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비주류 서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동시에 콤플렉스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불식시키는 차원이자 '이제 이재명이 주류'라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려 한다는 분석이다.

그 일환으로 꼽히는 사례가 이 전 대표와 이재용 회장이 찍은 '투샷' 사진이다. 한 친명계 초선의원은 "표면적으로는 흙수저 출신의 이 전 대표가 재벌 총수와 악수하는 모습이 '인간 승리'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해당 사진에는 이재용 회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며 "이는 곧 이 전 대표가 본인이 '주류'이자 '차기 대통령'이라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한 장치로 활용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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