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으로 살아남기] '자주 만나지 말자'는 사실 이런 뜻입니다

이혜란 2025. 4. 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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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계절인 봄, 관계의 밀도 높이고 싶은 내향인... 많이 만나기보다 아끼듯 보는 게 더 좋아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이혜란 기자]

바야흐로 봄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을 맞이하자 겨우내 조용했던 카톡방이 조금은 분주해졌다. 우리 언제 만나, 곧 만나자, 얼굴 좀 보자. 다양한 인사와 함께 만남을 약속하는 설레는 봄 기운이 만연하다. 봄의 계절과 함께 만남의 계절도 시작되었다.

따뜻한 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 생각만 해도 마음의 꽃이 만개한다. 단, 정해진 만남의 횟수를 잘 분배해서 지켜야 한다. 만남 총량의 법칙이 존재하는 나.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총량이 넘어서면 피로해지고야 마는데, 이런 내가 이상한 걸까.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내향인이라고 해서, 사람과의 만남이 무조건 싫은 건 아니다. 다만, 만날 양이 정해져 있을 뿐이다. 한 달에 한두 번이 가장 적합하고, 그 이상부터는 버겁다. 그때부터는 즐거운 만남이 아니라 숙제가 된다. 물론 직접 만났을 때 그걸 내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프로 내향인이라면 일단 상대의 반응을 면밀히 살피며 관찰한다. 최대 횟수를 넘긴 만남이 힘든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나의 기민한 반응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집을 나와 상대를 만났다면, 나는 온 힘을 다해 그에게 집중한다. 가방에서 휴대폰도 잘 꺼내지 않고 딴짓도 하지 않은 채 그와의 대화에 총력을 기울인다.
▲ 커피타임 맛있는 커피와 케익 그리고 즐거운 대화
ⓒ 이혜란
그렇기에 나는 만남의 수가 제한적이다. 그 순간의 만남과 상대에게 최선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또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다시 충전을 해야 한다. 그것을 모르고 만남는 횟수를 계속 늘린다면, 상대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 딴짓을 한다던가, 무의미한 대화로 공허한 이야기를 채운다던가, 자주 시계를 보게 될 테다.

그리고 대체로 그런 만남 후에는 정서적 피로감이 몰려온다. 집으로 가는 길은 한없이 멀고 험난하게 느껴져 오늘의 만남을 후회하게 된다. 날이 갈수록 많은 만남에서 오는 피로도가 짙어진다.

사람을 꼭 많이 만나야 좋은 걸까? 다양한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 보고 배우는 것도 많고 그러면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뜨금하면서도 묘하게 억울하다. 그리고 의문이 든다. 정말로 인맥이 넓어야 경험이 풍부해지는 걸까. 많이 만나면 정말 많이 배우는 걸까.

청춘이라는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공유했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있다. 이제 사는 곳도 취미도, 취향도, 관심사도 모두 달라졌다. 1년에 한두 번 모여 얼굴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 한두 번의 만남이 잡힐 때면 무척이나 기대되고 설렌다.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1분 1초가 아쉬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든다.

광대뼈가 아프도록 크게 웃고 입안이 마르도록 이야기해도 헤어질 땐 못내 아쉽다. 그리고 그런 헤어짐은 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집으로 가는 길, 오늘 함께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다음에 또 보자는 다정한 인사는 마음을 따듯하게 만든다. 1년에 몇 번을 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한번이 그토록 깊고 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주에 한번은 온라인에서 독서모임을 하고, 평일 새벽에는 온라인에서 함께 글을 쓴다. 글과 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모여 만난 글벗들이다.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던 나의 취미를 이곳에서 함께 한다. 느슨한 연대로 불리는 이 관계에서 공존하는 공통 분모를 매개로 나이, 성별, 직업, 고향, 학교 상관없이 함께 벗이 된다.

친구들에게는 나의 개인사를 이야기한다면 이곳에서는 글과 책이라는 관심사를 이야기한다. 꼭 직접 만나 얼굴을 보며 손을 맞잡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 모임에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나누는 따스한 온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한때는 전화 통화를 자주 해야 친한 사이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시시콜콜한 서로의 안부와 일상의 이야기를 주고 받아야 진정한 깊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매일의 루틴 보고 같은 공허한 대화가 무척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는 전화 통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 카톡 대화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말과 글로 맺어진 관계는 거리 조절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실수하게 된다.

나는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관계의 강도보다는 밀도에 집중하고 싶다. 진실한 관계는 만남의 횟수도, 시간도, 양도 아니다. 진심 어린 집중과 최선을 다할 때, 그 관계는 더 좋은 만남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배우 나문희씨가 노희경 작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희경씨, 우리 자주 보지 말자. 그냥 열심히 살자."

이 말을 나의 소중한 이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싶다. 자주 보지 말자. 서로에게 흔해지지 말자. 애틋하고 소중하게 아껴가듯 만나자.

《 group 》 내향인으로 살아남기 : https://omn.kr/group/intro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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