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위험에 '불법 소각 절대 금지'?... "버릴 곳 없는데 어떡하나요"
고령 인구 많아 쓰레기 처리 더욱 난항
"수거 주기·인력 증가 근본 대책 필요"
"다리가 불편해 멀리 못 가니... 어르신들 80%는 앞마당에서 쓰레기 태우시죠."
경북 안동 임동면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는 이덕철(55)씨는 16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쓰레기 소각'으로 인한 산불 위험이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외진 시골 마을은 도로가 좁아 쓰레기 차량이 못 들어가니 노인들이 수백 m를 걸어 나와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하거나 초기 치매 증상 등을 겪는 고령자가 많아 집 근처에서 그냥 태우는 일이 잦다는 설명이었다. 이씨는 "건조한 겨울에 쓰레기 소각으로 종종 불이 나지만 어르신들 입장에선 처리가 쉽지 않으니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쓰레기 소각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영남권 숲을 불태운 지난달 경북 의성 산불도 50대가 나뭇가지 등 쓰레기를 태우다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산림 주변 소각 금지'란 재난문자가 울린다. 그러나 서울 등 도심이 아닌 작은 농촌 마을의 고령 주민들은 '소각 금지' 지침은 말 그대로 탁상 행정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쓰레기 배출 체계가 미비하고, 잔가지와 고춧대 등 영농부산물은 버릴 장소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산불 주 원인 쓰레기 소각
실제 쓰레기 소각은 산불을 유발하는 주 원인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2015~2024년)간 산불 발생 원인은 입산자 실화가 30%로 가장 많았고 쓰레기 소각(24%)이 뒤를 이었다. 담뱃불 실화(7%), 건축물 화재(6%), 성묘객 실화(3.3%), 어린이 불장난(0.3%)보다 확연히 높다. 지난 1일에도 경북 예천에서 농부산물을 태우다 불이 나 80대 여성이 사망했다.
이처럼 위험성이 높지만 외딴 시골 마을은 소각을 안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쓰레기를 모으거나, 직접 매립장을 방문해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데다 수거 주기도 길어서다. 안동시의 경우 3, 4가구가 있는 동네는 별도 요청이 들어와야만 수거한다. 영양군도 폐비닐을 제외한 영농폐기물은 직접 매립장으로 가져와야 한다. 영덕군 관계자 역시 "외곽 마을은 거점을 마련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수거하고 영농폐기물은 마을 집하장이 가득 차 요청이 들어올 때만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농촌 주민들은 쓰레기 소각을 택한다. 9가구가 모여 사는 경남 진주 마을 주민 임모(82)씨는 "언덕을 한참 내려가면 쓰레기를 내놓는 장소가 있긴 하다"면서도 "다리가 아파 무거운 박스를 들고 오르내릴 자신이 없어 종이 쓰레기는 아궁이에 처리한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다른 주민들도 비닐이나 종이는 드럼통에 태운다"고 했다. 경남 하동에 사는 백모(58)씨도 "1, 2가구 모여 사는 지리산 인근 마을들은 수거차가 안 와 직접 차에 싣고 나가야 한다"며 "운전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경우 버릴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수거 체계 개선 필요... 소각로 지원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무작정 소각 금지만 앞세울 게 아니라 수거 체계 개선이 우선이라고 짚었다. 이용주 경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수거 관련 예산 및 인력을 늘려서 집마다 찾아가거나 수거 장소를 늘리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모범 사례도 있다. 경북 영덕 주민 신순자(70)씨는 "예전엔 집에서 30분 넘게 가야 쓰레기 봉투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강변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일이 흔했다"며 "1년 전쯤 마을 곳곳에 봉투 없이도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이 배치된 후 태우는 사람들이 없다"고 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쓰레기 소각이 문제가 되는 건 불티가 튀어서 산불로 번지기 때문"이라며 "현실적으로 수거가 어려운 외딴 지역이라면 불티가 날리지 않는 소형 소각로를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김나연 기자 is2n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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