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깨질 수 없는" "뚜두뚜두"…한국어, 가장 '힙'한 언어 됐다
왜 한국어를?→한국어 할 줄 안다고?
한국어 독특한 매력에 학습자 수 급증
"탈민족어로서 한국어 투자 늘려야"
편집자주
내일은 오늘보다 맛있는 인생, 멋있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라이프스타일 담당 기자가 한 달에 한 번, 요즘의 맛과 멋을 찾아 전합니다.

"어두워진, 앞길 속에, 끝없이,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밝게 빛나는 우린."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수록곡 '골든' 중)
다양한 언어권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흥얼거리는 시대다. 해외에서 지명, 음식 같은 고유명사가 아니더라도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세계가 한국 문화에 그만큼 익숙해졌다는 방증이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서는 '서울'과 '제주'는 물론, 작품 속 중요한 소품인 '화분(Hwaboon)'이 한국어 발음대로 쓰인다. 브랜드명을 아예 한국어로 짓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영국 거리엔 '오세요', '분식', '치맥'과 같은 한국어 간판이 내걸리고, K뷰티를 표방하는 독일 화장품 브랜드 이름은 '예쁘다(Yepoda)'다.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에 대한 전 세계 관심도 뜨겁다. 문화의 정수야말로 문자와 언어, 한글과 한국어라서다. 한국어로 쓰인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세상에서 한국어가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처럼 세계 언어로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일도 더 이상 허황된 꿈은 아닐 터. 579번째 한글날(9일)을 맞아, 노마 히데키 전 일본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와 다프나 주르 미국 스탠퍼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를 각각 화상과 유선으로 만나 한국어의 가치와 한국어가 세계어로 성장하기 위한 길을 물었다.
"한국인 엄마 자랑하려 일부러 전화"

"최근 주변에서 '아들이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사람들 앞에서 일부러 한국어로 전화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대가 완전히 바뀐 거죠."
격세지감이다. 노마 교수는 "한국어의 달라진 위상을 극적으로 체감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전, 엄마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알려지는 게 싫어서 "학교에 오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람을 본 기억이 또렷해서다.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반응도 달라졌다. "왜 하필 한국어인가요?"에서 "와, 한국어 할 줄 아세요? 멋지네요!"로. 노마 교수는 "사회적 인식이 한국어를 알 수 없는 낯선 대상에서 세련되고 매력적인 대상으로 여기는 단계로 전환한 셈"이라고 했다.
한국어만이 가진 언어적 특성은 한국 문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배가하는 힘이다. 노마 교수는 저서 '한글의 탄생'과 'K-POP 원론' 등에서 모어 화자는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어의 독특한 '말성(말 그 자체의 성격)'과 여기서 비롯되는 매력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어는 발음 기관에 현저한 긴장을 동반하는 소리인 농음(된소리·ㄲ, ㄸ, ㅃ, ㅆ, ㅉ)이 언어음의 체계로서 존재한다는 점이 매우 특징적"이라며 "K팝은 MC 스나이퍼의 'Better Than Yesterday' 중 '확성기로 악써보네 더 빡세게 낙서들을 다 싹쓰리'라는 랩 구절처럼 이런 농음을 의식적으로 활용해 걸작을 만들어 낸다"고 분석했다.


의성어나 의태어가 유독 많은 것도 눈에 띄는 특성이다. 일본에서 한국어 의성어, 의태어를 모아 놓은 사전('조선어 상징어 사전')이 따로 발간됐을 정도다. "뮤직비디오가 23억 회나 시청된 블랙핑크의 '뚜두뚜두(DDU-DU DDU-DU)'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새로운 의성어가 아닐까요?" 음절 단위로 조성되는 리듬, 반어적 표현 등도 한국어에서 관찰되는 특징이다.
노마 교수는 이런 한국어의 성격을 이해하고 "각 언어권마다 한국어 교육(학습)을 다원화하는 것"이 세계어로 발돋움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한국어 교육 내용이나 프로그램을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며 "영어권을 위한 한국어 교육 방식을 일본어권이나 중국어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듯이, 모어별 특성과 경험을 적극 반영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어 연구와 교육, 출판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어 인구 늘리기, 적극 지원해야"

주르 교수는 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세계 유일의 한국어 마을, '숲속의 호수' 촌장이다. 여름 방학 기간 7~18세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 역사를 가르치는 장소다. 학기 중엔 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친다. 오정희, 박완서, 박태원, 이상, 김유정, 정보라, 듀나 등 한국 작가를 줄줄이 꿰는 전문가다.
올여름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난히 실감한 해였다. '케데헌'의 세계적 흥행 영향이 컸다. '숲속의 호수'에선 두 차례 영화를 함께 보는 '무비 나이트'를 진행하는데, 학생들 성화에 두 번 다 '케데헌'을 봤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현대언어학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 통계에 따르면 북미 지역 외국어 등록생 수는 5년 전에 비해 16.6%(2021년 기준)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어 교육생 수는 오히려 38.3% 늘었다. 주르 교수는 "한국어는 미국에서 학습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유일한 외국어"라며 "'숲속의 호수' 정원이 120명인데, 내년 6월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에 벌써 50명 넘게 지원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한국어 교육과 한국학 연구에 대한 취약한 인프라는 한국어 저변 확대의 최대 걸림돌이다. 주르 교수는 "언어는 그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가치가 커지는 공동의 자산"이라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도 한국은 남 일처럼 보고 투자를 안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해외 한국어 교육에 투자하는 유일한 정부 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 예산을 2, 3배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어 어학당과 별개로 고급 한국어, 학문적 한국어에 대한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주르 교수는 "한국에 고급 학술어 교육기관은 10년 전 설립된 성균관대 인터유니버시티센터(IUC) 딱 한 군데"라며 "일본은 60년 전부터 고급 일본어 교육기관을 설립해 연구자 외에도 사업이나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일본어 인구를 지원해 왔다"고 말했다.
"해외 한국어 교육은 이제 '탈민족어로서 한국어'에 집중해야 합니다. 한국 문화를 수출 상품처럼, 학생을 단순한 소비자로만 보지 말고, 한국 문화를 나누고 배우는 동반자로 생각해 지속적으로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르 교수는 한국어로 또박또박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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