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중증외상 스타 의사’의 자기 부정

정영오 2025. 4. 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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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강한 사명감 정의감으로 헌신했지만, 좌절한 지사(志士)의 처절한 자기 부정이다.

그런 좌절은 조직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며 결국 자기 부정 단계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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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10월 18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국종 당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지난 14일 군의관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이 원장이 “절대 나처럼 살지 마라. 돌아오는 건 해고 통지서뿐”이라고 말했을 때, 제2의 이국종을 꿈꾸며 강연에 참석한 군의관은 물론 전공의와 의대생, 의대 지망생들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 원장은 “한평생 외상외과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내 인생은 망했다”고 했다. 강한 사명감 정의감으로 헌신했지만, 좌절한 지사(志士)의 처절한 자기 부정이다.

□이 원장은 고 윤한덕 전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도 언급했다. 2019년 설 연휴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윤 센터장에 대해 이 원장은 저서 ‘골든아워’에서 “출세에는 무심한 채 응급의료만을 보고 걸어왔다”고 묘사한다. 응급의료 시설 확충을 위해 외부 활동을 하는 이 원장을 보고 “중증 외상외과 환자는 누가 수술하냐”며 못마땅해하는 윤 센터장에게 강한 동료애를 느꼈다. 마음이 통한 동료가 과로사로 떠난 후 이 원장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평생 헌신하며 지켜온 가치와 이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무시될 때,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심하게 좌절한다. 그런 좌절은 조직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며 결국 자기 부정 단계에 도달한다. 자기 부정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미군으로 2009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근무하며 미군의 조직적 전쟁범죄를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해 35년형을 받았던 첼시 매닝은 “나는 진실을 말했지만, 그 대가로 나 자신을 잃었다”고 했다.

□이 원장은 “전공의를 짜내서 벽에 통유리를 바르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병원”이라며 영리에 매달리는 대형병원을 질타하고 “조선반도는 입만 터는 문과놈들이 해 먹는 나라”라며 정책 책임자를 공격한다. 한국 의료계를 향한 그의 분노가 독선적이고 불쾌하다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증외상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소중한 인재를 더 많이 양성하기는커녕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은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찾고 개선해야 마땅하다.

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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