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와 미국 민주주의의 시험대 [아침을 열며]
'트럼프 관세' 제동건 항소법원
보수성향 판사도 관세에 이견
美대법원, 민주주의 운명 결정

2025년 8월 30일,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11명의 판사가 모였다. 그들 앞에 놓인 질문은 단순했다.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관세를 무제한 부과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무게는 미국 건국 250년 권력분립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것이었다. 연방항소법원에서 7대 4로 패소한 트럼프 행정부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헌법 제1조 8항은 관세 부과 권한을 명확히 의회에 부여한다. 영국 왕실의 자의적 과세에 맞서 독립전쟁을 치른 건국의 아버지들은, 새 공화국에서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세금을 매기는 일이 없도록 했다. 제임스 매디슨의 구상은 명확했다. 의회가 '지갑의 힘(power of the purse)'을 쥐고 있는 한, 대통령은 왕이 될 수 없다. 지갑의 힘이란 관세와 조세, 재정에 대한 의회의 권한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길을 택했다. 1977년 제정 이후 단 한 번도 관세 부과에 사용되지 않았던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끌어냈다. 펜타닐 밀매와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선포하고, 거의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매겼다. 의회가 쥐고 있던 지갑을 행정부가 낚아챈 셈이다.
닉슨의 유산, 그리고 의회의 반격
여기서 중요한 것은 IEEPA의 탄생 배경이다. 1971년 닉슨은 전시법인 적성국교역법(TWEA)을 평시에 남용해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10% 수입부과금을 매겼다. 전쟁도 없는데 전시 비상권한을 사용한 것이다. 워터게이트로 닉슨이 사임한 후, 의회는 대통령 비상권한을 제한하기로 결심했다.
1977년 IEEPA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 법은 대통령이 '가능한 모든 경우에 의회와 협의'하도록 요구하고(Section 204(a)), 권한은 오직 ‘이례적이고 비상한 위협'에 대해서만, 그리고 '해당 목적을 위해 선포된 비상사태’에 한해서만 행사될 수 있도록 명시했다(Section 202(b)). 의회 보고 의무, 매년 갱신 필요, 의회의 종료 권한 등 철저한 견제 장치를 둔 이유다.
무역적자가 비상사태입니까?

이런 이유로 2025년 5월, 두 연방 법원이 트럼프의 관세부과에 제동을 걸었다. 국제무역법원과 D.C. 연방지방법원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IEEPA는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법원의 논리는 명확했다. IEEPA 제1702조는 조사, 규제, 지시, 강제, 무효화, 금지 권한을 부여하지만, “관세”(tariff)나 “수입세”(duty)라는 단어가 없다. 의회가 무역법 122조로 15%, 150일 한시 관세만 허용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8월 항소법원 구두변론에서 판사들은 “무역적자가 어떻게 ‘이례적이고 비상한 위협’이 됩니까?”라고 정부 측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보수 성향 판사들조차 Yoshida II(1975년 닉슨 행정부의 TWEA에 근거한 긴급관세를 제한적으로 인정했던 판결) 판례를 인용하며 행정부 관세 권한의 명확한 한계를 강조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보수 대법원이 '웨스트 버지니아 대 환경국'(West Virginia v. EPA·2022) 사건에서 확립한 ‘중대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이 문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의회가 명확히 위임하지 않은 중대 권한을 행정부가 임의로 행사할 수 없다. 관세는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국제관계를 좌우하며, 산업 구조를 바꾼다. 이런 권한을 대통령이 “규제”라는 모호한 단어 하나로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은, 중대 질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이 직면한 2024년 한국의 시험
묘하게도 이 상황은 2024-25년 한국과 겹친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동원해 의회를 무력화하려 했다.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는 대통령의 일탈행위를 제지했다. 의회는 즉각 탄핵을 의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확정했다. 헌법재판소는 선고 요지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과 절차적 요건을 모두 위반하였음을 명시했다. 지난 겨울 헌정위기를 억제하는 제도가 한국에서 작동했던 것은 시민들이, 의원들이, 헌법재판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대법원의 IEEPA 판결은 미국 민주주의의 시험대가 되는 것이다. 만약 대법원이 대통령의 관세부과가 무제한 가능하다고 판결하면, 사법부가 입법부의 명백한 입법 의도를 무시하는 것이자, 헌법에 보장된 입법부의 권한을 행정부가 탈취하는 것을 사법부가 승인하는 것이 된다. 닉슨과 같은 권한 남용을 막으려고 만든 법이 오히려 더 큰 권한 남용의 도구가 되게 만드는 판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 대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 IEEPA를 이용한 관세부과를 위헌으로 판단하면, 아무리 강력한 대통령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신호가 될 것이며 미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희망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지난 겨울에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면서 겨우 통과했던 시험을 미국은 과연 통과할 수 있을 것인가. 건국의 아버지들이 설계한 견제와 균형이 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양극화와 일방주의 대통령 아래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전 세계의 관심이 내년 쯤이 될 미국 대법원의 IEEPA 판결에 쏠리는 이유이다.

박종희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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