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여학생에 '바코드' 달린 오디션 프로그램...이래도 되나
[비평] 15세 이하 여성 아동·청소년 오디션 방송 MBN '언더피프틴'
만 8세 아동 참가자도…참가자 프로필에 바코드 붙여 성상품화 비판
제작진 철저한 안전조치·가이드라인 준수 필요, 투명하게 공개해야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MBN이 오는 31일 15세 이하 여성 아동·청소년 59명이 아이돌 가수 데뷔를 위해 경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피프틴'(UNDER15)을 방영한다.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 역할을 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지난 10일부터 참가자들의 기본 정보를 담은 사진과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참가가 중엔 만 8세 아동도 있었고, 이들을 소개하는 프로필 사진에는 이름, 출생연도, 국적, 포지션과 함께 상품에 붙는 '바코드'가 찍혔다.
선공개된 이미지는 곧바로 여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상품화 비판을 불렀다. 영상 속 참가자들은 아이라인을 그리고 속눈썹을 붙이는 등 진한 화장을 하고 어깨나 허리 등이 노출되는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참가자들은 2009년~2016년생으로 구성됐는데, 이중 다섯 명은 2016년생으로 생일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면 만 8살이다. 프로필 사진 밑에 찍힌 바코드는 아동·청소년 참가자들을 노골적으로 상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언더피프틴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등을 만든 서혜진 PD(크레아 스튜디오 대표)가 맡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70여 개국에서 선별된 여성 아동·청소년들을 출연시켜 '글로벌 최초 만 15세 이하 K팝 신동 발굴 프로젝트'라는 컨셉을 표방했다. 서 대표는 지난해 6월 언론 인터뷰에서 언더피프틴을 소개하며 “미성년 블랙핑크를 꿈꾼다”며 “다 똑같은 걸그룹은 안 먹힌다고 생각한다. 시청자에 니즈에 맞고 크레아 스튜디오에 맞는 색깔을 넣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K팝 산업에서 아이돌 연습생들의 연령은 더 낮아지고 있고, 더 많은 아동·청소년들은 아이돌을 꿈꾸고 있다. 크레아 스튜디오 측은 '아이돌을 시작하기엔 아직 어리다는 어른들의 걱정이나 편견을 깨줄 만큼 꿈에 대한 의지와 소신이 확고한 요즘 세대 진면목을 만나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대중과 산업 트렌드만을 쫓아 아동을 상품화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디어가 K팝 산업의 문제적 구조를 비판없이 받아들인 프로그램을 런칭하고, 이를 상품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당장 SNS에선 “아무도 이 쇼를 보거나 지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을 무비판적으로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아이들은 따라할 것”, “아이들이 왜 사회에서 강요하는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저런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하나” 등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종임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객원교수는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바코드 등 홈페이지 속 이미지는 시청자의 시선이 아니라 성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다.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게 아닌, 성인이 상품을 사는 구조로 만들어 놓은 게 문제”라며 “종합편성채널도 공익성에 대한 책무가 있는데 예능이라고 해도 아동을 상품화시키는 데 앞장서는 상황은 문제다. 프로그램 제작은 대중들에게 그런 인식을 더 빠르게 각인시키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흥행에 매몰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아동·청소년 상품화는 오래 반복된 문제다. 가령,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은 교복을 입은 연습생들을 메인에 두고 '당신의 소녀·소년에게 투표하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시청자들은 '국민프로듀서'가 됐고, 연습생들은 시청자들에게 '잘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이 교수는 “계속 반복된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제가 제대로 지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언더피프틴)까지 왔다고 생각한다”며 “오디션에 누구나 출연할 수 있는 건 동의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참여하고 과정을 견뎌내는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야 한다. 특히 15세 이하의 아동·청소년들이 참여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예전과는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당도 언더피프틴 방영을 비판하며 아동·청소년의 성을 상품화하고 착취하는 사업은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당은 지난 17일 “미디어·엔터 산업의 강국 한국에서 미성년 연예인의 권리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어린 여성들은 더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다. 미성숙한 여성을 노린 그루밍 성범죄부터 취업을 가장한 유사성매매, 성인방송 출연을 강요하는 불공정 계약 피해까지 그 실상은 처참하다”며 “소속사와 방송사는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활용해 더 가혹한 착취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있다. 오직 수익을 위해 여성 연예인을 향한 성희롱, 악플, 딥페이크 성범죄 등은 도외시한 채 더 어린아이들을 찾아 극한의 환경에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작진 철저한 안전조치·가이드라인 준수 필요, 투명하게 공개해야
아동·청소년들이 프로그램의 주 참여자라는 측면에서 제작진의 철저한 안전 장치 및 가이드라인 준수가 필요하다. 이를 시청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도 있다. 현재까지 언더피프틴 공식 홈페이지나 인터뷰 등에서 아동·청소년 출연 관련 안내된 별도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이종임 교수는 “8~9세와 14~15세는 또 다른데 연령대별 구분, 심사방법, 합숙 여부 등 고민해야 할 게 많다”며 “과거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국민가수'에서 남성 출연자가 유치원생 여아 출연자를 베이비시터처럼 봐준 적이 있었다. 제작진이 해야할 일을 출연진에게 미루고, 이걸 스토리로 만들어버리면서 넘어가는 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2022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권익보호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에도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상품화를 지적하는 대목이 담겼다. 연구진은 “미성년자인 가수들은 인기를 위해 선정적인 의상, 춤, 노래가사 등을 통해 상품화된 젠더 이미지를 수행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며 “원치 않는 연출에 대해 성인과 같은 수준으로 의사표현을 하기 어렵고, 의사가 반영되기도 어려운 현실 때문에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빈번하게 놓인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선정적·자극적 연출을 제한하고 거부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아직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년 대중문화예술인이 각종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에 노출된다면 잘못된 인식과 사고관을 갖게 될 수 있다”며 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구진은 또한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지나친 경쟁 시스템을 지적하며 참가자들의 정서적 불안에 대한 심리상담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오디선 프로그램 출연 기회를 제공하는 대중문화예술제작업자는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을 희망하는 미성년 대중문화예술인에 비해 매우 우월적 입장에 놓여있으므로 출연 계약시 불공정한 조항이 삽입되기 쉽다”며 부당한 편집이나 인격권 침해에 인한 이의제기를 금지하는 조항 등을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대중문화예술산업 종사자가 알아야 할 아동ㆍ청소년 권익보호 가이드라인' 보고서도 제작진이 참고할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각종 법령에 근거해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계약을 체결할 때 △촬영(제작) 중 △촬영(제작) 완료 후 지켜야 할 사안들을 제시한다. 가령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15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1주일에 35시간을 초과해 용역을 제공할 수 없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용역을 제공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은 종사자들이 제작 현장에서 검토해야 할 체크리스트 13가지도 함께 제시했다.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보호를 위한 현장 담당자가 지정돼 있는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과 보호자에게 계약 내용 등의 사항을 쉬운 언어로 충분히 설명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얻었는가 △당일 현장의 촬영(용역)시간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게 적절한가 △현장에 물리적·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소는 없는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화장실/대기실/휴게공간, 안전한 탈의실이 확보됐는가 등이다. 다만 대다수 내용이 아동·청소년의 노동권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는 측면에서 성상품화 관련 논의가 더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선 촬영·공연장에서 아역배우를 보호하는 전담 직원 '샤프롱'(chaperon) 채용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지역 당국의 허가를 받은 사람만이 샤프롱으로 활동할 수 있다. 샤프롱은 주로 배우들의 동선 관리, 멘탈 케어 등 연기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식사·휴식·간식·대기 시간에 학습을 도와주거나 숙제를 챙겨주기도 한다. 국내에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출연하는 공연계에서 샤프롱 제도를 택하는 정도인데, 이마저도 제작사의 선의에 따른 선택 사항이다.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19일 미디어오늘에 “(제작진이) 용역 시간 등 아주 기본적인 법 사항을 지키더라도 사실 보이지 않는 용역 시간이 훨씬 길다. TV에 나오는 건 오전 10시부터지만 새벽 5시부터 메이크업하는 일이 허다하다”며 “'아동 노동'의 문제라고 본다. 연습생 등을 두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게 노동이 아니면 뭔가. 근로기준법상으로도 아동 노동은 금지돼있는데 언더피프틴은 아동들을 대상으로만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발달 과정에 있는 저학년의 아동·청소년들을 무한 경쟁의 장에 내버려두는 게 괜찮은지, 악플 등 여론의 평가에 대한 보호 대책은 있는지 계속 우려를 제기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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