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방통위, 역대 최악 '무근본' EBS 사장 선임 강행

노지민 기자 2025. 3. 2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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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 주체 구성부터 후보까지 부적격 논란…역대 '낙하산' 중에서도 이례적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 왼쪽부터 이진숙 방통위원장,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연합뉴스

대통령이 지명한 방송통신위원들이 '2인 방통위' 위법성 논란과 후보자 적격성에 대한 비판 속에도 EBS 사장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EBS 사장을 둘러싼 '낙하산' '내정설' 논란이 처음은 아니지만, 과거 사례에 비춰봐도 충분한 검증 없이 정당성이 취약한 사장 임명을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진숙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등 '2인 방통위'는 지난 24일 8명의 사장 후보자를 대상으로 비공개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 대상자는 신동호 EBS 이사, 김영호 전 서울신학대 교수, 장두희 KBS 심의위원, 권오석 한서대 교수, 류남이 EBS 수석, 김덕기 전 KBS 경영평가단장, 김승동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박치형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 등(접수번호 순)이다.

현 EBS 사장 선임에 대한 지적은 크게 두 축이다. 먼저 대통령이 지명한 2인 방통위의 공영방송 인사가 위법하다는 판단이다. 애초 방통위는 여·야·대통령 추천 5인이 합의제로 운영하도록 구성됐다. 특히 지난 13일엔 대법원이 2인 방통위가 임명한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진은 해당 의결의 적법 여부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기를 시작할 수 없다고 확정했다.

EBS 사장 임명권자인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내정설' 주인공인 신동호 후보의 이해충돌 논란도 있다. MBC에서 이른바 '아나운서 블랙리스트' 등 탄압 논란이 불거진 시기 이진숙 위원장이 기획본부장, 신동호 후보가 아나운서국장이었다. 이진숙 위원장은 2019년, 신동호 후보는 2020년 이후 현 국민의힘 전신인 정당 소속으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최재혁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이 신 후보의 아나운서국장 전임이다. 지난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BS본부는 동료였던 이들이 심사위원과 지원자로 참여해 공직자 이해관계 충돌이 의심된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2025년 3월12일 정부과천종합청사 앞에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2인 방통위'(위원장 이진숙, 부위원장 김태규)의 EBS 사장, KBS 감사 선임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정치권 출신 인사가 후보로 지원했음에도 방통위가 결격사유 검증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오마이뉴스는 신 후보가 2023년 EBS 이사로 임명될 당시 정당 가입 이력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25일 보도했다. 신 후보는 지난 20일 EBS 이사회에서 “제가 총선 끝나고 바로 당적 보유 기간이 두 달 정도 밖에 안 된다. 이사로 올 때 신원조회 검증이 됐다”며 “2020년 3월에 당적 갖고 4월에 끝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임명권자부터 후보까지 적격성을 지적받는 가운데 사장이 임명되면 교육공영방송이 정쟁에 휘말릴 것이란 우려가 높다. EBS는 2003년 독립성을 보장받는 교육방송공사로 출범한 이후 교육부 및 정보통신 관료 출신 사장이 취임하며 거듭 혼란을 겪었다.

일례로 이명박 정부 최시중 방통위는 2009년 EBS 사장 후보에 대한 공개 면접까지 했으나 돌연 재공모를 의결, 1차 공모 면접위원이었던 곽덕훈 사장을 임명해 그 배경에 청와대 의지가 반영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곽 사장 재임기 EBS에선 제주 구럼비 바위를 다룬 '지식채널e-구럼비' 편을 방송 부적합으로 결정하는 등 제작 자율성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2012년 방송통신위원 출신 신용섭 사장이 '청와대 낙점설' 속에 취임한 뒤로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후손 이야기를 담은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를 제작하던 김진혁 PD가 수학교육팀으로 발령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14년엔 EBS '필수 한국사' 교재에서 전두환 박정희 정권 관련 내용을 삭제하거나 축소하라는 압박이 이뤄졌다. 훗날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주범 최순실(최서원)씨가 추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우종범 사장 재임기에는 박 대통령 홍보에 EBS가 동원되기도 했다.

이 밖에 구관서 전 사장은 소위 '이해찬 라인', 김명중 전 사장은 이효성 전 방통위원장 고교 후배라는 점에서 의혹을 불렀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22년에 이르러서야 현 김유열 사장이 EBS 최초의 자사 출신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에 교육방송 관련 전문성이나 경력이 없는 사장이 절차적 하자 논란 속에 취임할 상황에 놓였다. EBS 내부에선 “후퇴 그 이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역대 사장 중 신 후보처럼 특정 정당에서 국회의원선거 출마를 시도하고, 대변인을 지냈던 신분으로 방통위가 진행하는 공모에 지원한 경우는 없다. '2인 방통위'를 통한 임명 시도 또한 이번이 처음이다. 낙하산 논란의 곽덕훈, 신용섭, 우종범 전 사장 등 임명 당시에도 방통위는 상임위원과 외부 면접위원을 포함한 면접위원회를 거치는 등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

▲2025년 3월 24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EBS지부 조합원들과 EBS 사우회(정년퇴직자모임) 등이 2인 방통위의 사장 선임 절차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진은 김성관 EBS지부장. 사진=언론노조 EBS지부

김성관 EBS지부장은 25일 통화에서 “(과거) 교육과 방송 능력이 겸비된 사람이 사장으로 선임 돼야지 정부 관료였던 사람이 교육 방송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게 매번 문제가 됐다”고 돌아본 뒤 “내부 출신 인사여도 검증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졸속이 의심되는 형태로는 사실상 인사 검증도 안 한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2인 체제도 문제이지만 과연 그 두 명(이진숙·김태규)이 교육방송공사 사장을 선임할 능력이 있나”라고 되물었다. EBS지부는 방통위가 있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EBS지부는 이날 방통위에 EBS 사장 선임 과정에 대한 이진숙 위원장 기피신청을 했으나, 방통위는 사장 임명을 강행할 기세다. 방통위는 26일 이 위원장 기피신청 건에 이어 EBS 사장 임명 동의에 관한 건 등을 의결안건으로 전체회의를 예고했다. 이 위원장 스스로 본인에 대한 기피신청을 각하하고 사장 임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EBS 내부에선 8개 직능단체협회에 이어 53명의 현직 보직 간부 일동이 위법한 사장 임명 절차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EBS 밖에서의 비판도 거세다. 17개사 방송사노동조합협의회는 “2인 체제의 방통위가 추진하는 EBS 사장 공모는 절차적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불법에 동조하는 사장 후보자들은 지원을 즉각 철회하고 방통위의 경거망동에 놀아나선 안 될 것”이라 비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교육의 공공성과 다양성을 수호해야 할 EBS 사장에 부적절한 인사 내정이 기정사실화되며 공영방송 파괴도 모자라 교육대계까지 망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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