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美 법원이 신뢰받는 이유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국 법원을 보며 미국 법원도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 연방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9명을 대통령이 지명한다.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하지만 지명 단계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처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나뉘어 있지 않다. 연방 대법원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한다.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한국보다 클 수 있다는 의미다. 법관 임기를 보면 명확해진다. 한국 대법관은 임기가 6년이지만 미국은 종신직이다. 한번 설정된 연방 대법원의 성향은 쉽게 바뀔 수 없는 구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이를 고려했다. 첫 임기 때 그는 보수 성향 대법관 3명을 임명했다. 대법관 9명 중 보수 성향이 6명이 돼 연방 대법원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이들은 2022년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1973년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의 정치적 성향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는 미국인이 많다. 이 판결로 낙태권은 2024년 대선에서 진보·보수를 편 가르는 최대 사안이 됐다.
그렇다고 미 대법원이 마냥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달 5일 대법원은 20억달러 규모의 대외 원조 동결을 지속할 수 있게 해달라는 트럼프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취임 당일인 1월 20일 행정명령으로 대외 원조 프로그램 일시 중단을 명령했는데, 대법관 9명 중 5명이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5명 중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보수로 분류된다. 두 명의 결단이 파죽지세의 트럼프를 일단 멈춰 세웠다.
평생 지녀온 신념을 뒤집는 일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뿐 아니라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정치권과 일반 시민의 공격도 견뎌내야 한다. 이번 판결이 나오자 격앙한 일부 트럼프 지지자가 배럿 대법관을 향해 ‘하버드나 예일대 로스쿨 출신이 아닌 여자 대법관’이라며 인신공격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미국 시민이 사법부를 ‘정의 실현의 최후 보루’로 신뢰하는 것은 최고 법관들이 신념보다 법과 원칙을 앞에 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 법원이 정치 편향 그늘에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과 다른 점이라면 여전히 적지 않은 수가 살아온 대로 ‘자기 신념’에 비중을 두고 판결을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신뢰도와 재판의 신속성·공정성 등을 계량화해 ‘세계 법원 순위’를 매긴다면 한국 법원은 어디쯤 있을까. 로버츠 대법원장은 “법원이 오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공정하게 업무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법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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