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백종만 (9) 악습 없애고 후임들 사이 ‘교회 다니는 병장’으로 불려

이현성 2025. 3. 1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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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를 드리러 간 교회에서 한 여군 하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동기를 불렀다.

헌병 대장의 부관인 서모 하사는 동기의 고향 이웃사촌이었다.

미군 헌병대에서 복무한 지 석 달 정도 됐을 때 동기가 술에 취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20사단 헌병대 중대장은 매우 엄한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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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됐을 때 ‘대리 근무’ ‘빠따’ 등
군대 내 나쁜 관행 없애는 데 앞장
의도치 않게 여러 부대 전출 다니며
힘들 때마다 하나님 예비하심 느껴
백종만(왼쪽) YPP 회장이 열차 헌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근무를 서고 있다. 백 회장 제공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간 교회에서 한 여군 하사가 반가운 목소리로 동기를 불렀다. 헌병 대장의 부관인 서모 하사는 동기의 고향 이웃사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어렸을 적부터 동기를 짝사랑했다고 한다. 그 인연 때문이었을까.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한미 1군단에서 헌병 파견병을 뽑는데 우리를 추천하겠다고 서 하사가 말했다. 당시 미군과 함께하는 복무 생활은 비록 근무와 훈련은 힘들어도 먹는 밥이나 잠자리가 괜찮았기 때문에 드디어 좋은 날이 오나 싶었다.

하지만 그 행복도 그리 길게는 가지 않았다. 미군 헌병대에서 복무한 지 석 달 정도 됐을 때 동기가 술에 취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중대장은 우리 둘 모두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

우리는 더플백을 메고 20사단으로 향했다. 의정부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한탄강 인근 바위에 새겨진 ‘38선’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38선 이북으로 간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20사단 헌병대 중대장은 매우 엄한 군인이었다. 중대장실에 들어갈 때 암기 사항을 외우지 못하면 몽둥이찜질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호출을 받고 긴장된 마음으로 중대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와 있었다. 그는 내 힘든 상황을 알고 그나마 수월했던 열차 헌병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당시는 탈영병이 많았기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 열차 헌병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았는데 직감적으로 탈영병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명이 숨어있었다. 긴장됐지만 침착하게 대화를 시도하며 자수하라고 설득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그의 눈빛에서 깊은 우울감이 느껴졌다. 사복 차림이었던 것으로 보아 오래전부터 탈영을 준비한 듯했다.

이 소식을 듣고 얼마 후 그의 어머니가 그 먼 부산에서 의정부까지 찾아왔다. 지금과 달리 정신적인 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중대장을 찾아가 아들의 상황을 통사정해보고, 병원 진료 기록 등을 제출해 심사를 받자고 권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의병 제대를 하게 됐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에 복학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감사 인사를 내게 전하기도 했다.

병장이 됐을 때, 나는 우리 중대에서 이른바 ‘기수 빠따’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선임병들이 후임들에게 자신의 근무를 대신 서게 하는 관행도 즉시 바로잡도록 했다. 매우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후임들에게 나는 ‘교회 다니는 병장’으로 통했다.

3년간의 군 생활 동안 항상 무사히 제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곳에 다 옮기지는 못하지만, 굽이굽이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이런 깨달음은 전역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보다 한걸음 앞서 준비하고 계셨다.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피할 길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군에서 만난 하나님은 이런 분이셨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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