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조선의 미슐랭이다"...파인다이닝이 된 궁중음식, 미식가를 홀리다
궁궐 음식 기반 파인다이닝 선보여
제철 식재료로 '세련된 맛' 재해석
고급화 추구하며 힙트레디션 주도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 초입의 골목길에 자리한 레스토랑. 요즘 이곳의 테이블엔 홍삼 중 상위 0.5%에 드는 천삼, 오계(烏鷄·검은 닭), 송이버섯 등 귀한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가 오른다. 국가무형유산인 '궁중음식'을 계승한 요리를 선보이는 '한국의집'의 가을 만찬이다. 국가유산진흥원이 운영하는 한국의집은 지난해부터 테이블을 줄이고 파인다이닝(비싼 고급 요리) 식당으로 개편했는데,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1년 내내 좌석을 채운다. 한국의집 한식연구팀의 신언탁 파트장은 "한국의 문화와 한식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지는 시기라서 단기간에 프로그램이 정착했다"며 "접하기 어려운 제철 식재료를 포인트로 넣은 요리를 맛본 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한식'이라고 손님들이 칭찬한다"고 말했다.
궁중음식이 미식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식당 평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의집은 최근 국내 맛집 가이드북 '블루리본 서베이'의 '서울의 맛집 2025'에서 블루리본 3개를 받았다. 리본 3개는 가장 뛰어난 솜씨를 보이는 식당이 받는데, 리본 3개 식당 가운데 궁중음식 파인다이닝은 한국의집이 유일하다. 신 파트장은 "한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을 때 그에 걸맞은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준비가 됐기에 미식계에서 주목받을 수 있었다"며 "가격은 1인당 8만8,000~25만 원으로로 다른 파인다이닝보다 30% 이상 저렴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요리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골소재로 '퓨전한식'이 자주 등장하면서 정통 궁중음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는 후문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궁중 보양식
생소한 궁중 파인다이닝이 1년도 안 돼 입소문을 탄 건 탄탄한 기본기 덕분이다. 무형유산 제38조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고종과 순종의 마지막 수라상궁 한희순으로부터 구한말 조리법이 계승된다. 1년 전 대대적으로 개편한 파인다이닝 메뉴는 한식 요리 전문가인 조희숙 고문과 궁중음식 부문 이수자, 김도섭 조리팀장을 필두로 전통 궁중음식 전통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식재료는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보양을 중시하는 궁중음식의 특성을 살려 궁중진상품이었던 귀한 식재료를 다양하게 사용한다. 메뉴 개발에는 약 3개월이 소요되는데, 식재료 확보에 특별히 공을 들인다. 13가지 한식 요리와 후식으로 구성된 올해 가을 메뉴는 '승정원일기'에 숙종이 병을 앓았을 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활용했다고 기록된 오계와 천삼을 넣어 만든 '신선탕'이 주요리다. 가을에 맛과 영양이 배로 풍부해지는 송이버섯, 능이버섯, 석이버섯 등을 주재료로 '전복 송이찜', '귀리 능이 만두' 등을 내고, 식사로는 제철 재료인 밤을 넣은 밥을 제공한다. 신 파트장은 "식재료를 공수하려 강원 횡성, 경북 풍기, 충북 괴산까지 전국을 돌아다닌다"며 "식사 중에 식재료 지도와 상세 설명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MZ 놀이터 된 '고호재', '와인 페어링' 시도
한국의집의 별채에서 분기별로 운영하는 예약제 다과 프로그램 '고호재'는 20~30대 사이에선 전통적인 것을 힙하게 여기는 '힙트레디션'으로 이름을 알린 지 오래다. 운영 4년째인 올해 여름부터 와인과 함께 즐기는 저녁 상품을 선보였다. 낮 상품(2만5,000원)에 비해 저녁 상품이 4만5,000원 더 비싼데, 두 상품 모두 예약창이 열리자마자 마감됐다. 밤초, 율란, 참외정과 등 전통 디저트와 식전주 1잔, 와인 2잔이 올라가는 가을 다과상의 식기는 유명 공예가와 무형유산 보유자의 수제 식기를 사용해 '고급화'에 방점을 찍었다. 고호재 운영진은 "뜨거운 호응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식을 토대로 새롭고 독특한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리미엄 다과상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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