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갓!’ 제철에 만난 ‘돌산갓 반상’
※편집자주=음식 자체의 질적 향상과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갈망하는 소비자 눈높이 사이에서 외식산업은 빛의 속도로 변모 중이다. 그러나 그 안엔 외식 자영업자의 창의성과 고단함이 육수처럼 녹아 있다. 식재료 공급 산지의 애환은 고명처럼 올라 있다. 농민신문은 전국 맛집을 통해 외식업 최신 트렌드를 짚어보는 ‘이윤화의 맛Pick 핫Pick’을 연재한다.
순동이, 신동이, 매코미⋯.
동네 강아지 이름이 아니다. 전남 여수 돌산갓의 품종들이다. 맛이 순해서 순동이, 매워서 신동이….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는데 품종이 꽤 많다.
돌산은 여수엑스포역과 여수 연안여객터미널 인근의 돌산대교 건너의 큰 섬이다. 돌산은 점질토양을 가졌고, 해양성 기후에다 바닷물의 알칼리성 성분들이 축적되는 갓 재배지로 천혜의 환경을 갖췄다.
돌산 섬에 들어가면 갓농장부터 갓김치공장, 갓김치소매점까지 모두 ‘갓’으로 시작해 ‘갓’으로 끝난다.
‘돌산갓’은 토종 갓보다는 덜 톡 쏘고 일본 품종보다는 더 톡 쏜다. 즉 중간 톡 쏘임이다. 어르신들은 요즘 갓은 톡 쏘지 않는다고 불평할지도 모르나 전반적으로 두루 먹기에 돌산갓이 무난한 편이다.
갓의 최대 수확시기는 11월이지만 사계절 연중 수확이 가능하다. 원물 갓은 일주일 이상 보관이 어렵다 보니 주로 갓김치로 담가 유통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여수 하면 돌산갓이고 갓 하면 무조건 갓김치로만 먹어야 한다는 편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갓김치가 가진 매력이 워낙 뛰어난 덕도 있다.
잎과 줄기가 부드럽고 향긋한 ‘원물’ 갓을 접한 뒤 갓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돌산갓이 궁금해 돌산 섬을 돌며 어디 가나 맛볼 수 있는 갓김치가 아닌 색다른 갓음식을 찾게 됐다.
그러다 만난 것이 ‘돌산갓 시래기국’이었다. 푹 삶아 부드럽게 풀어진 갓시래기가 된장국에 듬뿍 들어있다. 고기 육수가 아니니 채소 좋아하는 사람들도 맘 편히 먹을 수 있다. 어릴 적 집에서 즐겨 먹어왔던 된장국 맛이다.
아주 익숙하지만 계속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일상의 맛을 정성껏 구현한 덕에 식당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자주 손이 갈 밥상 레퍼토리로 제격이다.
식당에서 국 한 그릇 뚝딱 비운 손님들의 수많은 요청과, 평소 여수 돌산갓의 다양한 맛을 더 널리 알리고 싶다는 주인장의 바람이 맞물려 대표 메뉴인 돌산갓 시래기국을 간편식 제품으로 만들어 온라인으로 판매 창구를 확장했다.
즉석조리식품 형태로 파우치를 뜯어 냄비에 담아 끓이기만 하면 되고 선물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패키지에도 공을 들였다.
보기엔 그저 평범한 식당인데 상품력을 보면 웬만한 식품기업에서 만든 간편식 못지않아서 은근히 놀랐다. 그래서 안성식당 대표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게 됐다.
안성식당은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고깃집이었다. 이집의 부드럽고 달곰한 맛의 양념갈비에 단골이 꽤 많이 있었단다.
고기 양념은 남편이 하고, 잔손이 많이 가는 각종 밑반찬은 아내가 맡아 했는데, 갓시래기국 전문점으로 바뀌기까지는 여러 사연이 있었다.
외식업에 종사하다 만난 부부는 한식, 횟집, 치킨 등 안 해본 외식 장르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 상품을 취급해본 외식의 베테랑 전문가들이었다.
그런데 요리와 서비스를 몇십년 쉼 없이 해오다 보니 아내의 몸이 자주 아프게 됐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남편 김현철 대표는 영업시간도 짧고 노동강도가 고깃집보다 낮은, 식사 중심의 메뉴를 고민하다 여수 토박이로서 어릴 적부터 먹어온 돌산갓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돌산갓 청년단’에 들어가 돌산갓은 물론 지역에 관해 공부도 하게 됐다. 거기에 더 큰 자극은 코로나19라는 선생님이었다.
전국의 식당 오너들이 느낀 비대면 상황의 막막함을 겪으면서 어떤 돌발상황에서도 판매를 꾸준히 할 수 있는 간편식을 개발했고 그것이 바로 돌산갓 시래기국이 된 것이다.
김 대표도 처음엔 고기를 넣은 진한 갓시래기국을 만들어보고 여러번 테스트했지만 자주 먹기엔 쉽지 않았다.
매일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은 부담 없는 시원한 된장국이라고 확신을 내리고 개발에 집중했다. 홍합을 일일이 손질해 육수에 넣고 된장도 엄선하는 한편 100% 국내산 식재료에 인공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솥밥을 짓는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솥밥에 갓시래기국만으로도 이미 한국인의 밥상 게임은 끝나게 된다. 거기에 그날그날 바뀌는 촉촉한 반찬까지 한몫한다.
특히 ‘돌산갓 반상’을 주문하면 갓시래기국은 물론 갓솥밥, 갓을 말아 졸인 뚝배기 생선조림, 홍합전, 고깃집 경력을 살린 채소 불고기, 달걀찜, 갓김치까지 푸짐하다. 바로 ‘갓상(GOD床)’이다.
안성식당 부부는 갓시래기국 전문점을 한 뒤 건강 음식에 남다른 자신감이 생겼다.
여수 돌산갓으로 만든 명물 음식을 찾아온 관광객이 몸에 좋고 맛있다는 소감을 남기거나, 돌산갓이 하나도 신기할 것이 없는 여수 지역민들도 해장국으로 찾고 가정 비축용으로 냉장고에 채워놓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절로 힘이 솟게 된다.
흔히 ‘간편식’ 하면 평소 먹는 것보다 고칼로리에 지방이 풍성한 별식이어야 된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요즘 시대의 간편식은, 코로나19 시대의 간편식 초보단계를 넘어서서 건강한 간편식이 한장르를 차지하게 됐다.
향토 특산물, 로컬푸드로 만드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 먹어도 집밥 같이 질리지 않는 간편식까지 맛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윤화(음식평론가)
이윤화는⋯
음식을 좋아하고 맛집 여행을 즐기다 직업이 되었다. 식문화전문기업 다이어리알 대표로 활동하면서 2017년부터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트렌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해 작은 이탈리안 식당을 열어 술과 음식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수 컨설팅 경험으로 향토음식과 지역 식문화에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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