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로컬 재료로 건강한 빵 굽다보면…지역과 성장하는 나 발견”
지역특산물 이용 다양한 곡물빵 개발
‘쓴메밀’로 100% 순메밀빵 선보여
남은 빵, 냉동·건조해 발효종으로 활용
‘산·균·빵’ 수업 통해 발효의 철학 나눔
참가자와 베이킹의 경험과 가치 공유
“지방은 경쟁자 적어 안일해지기 쉬워
안정에 취하기보단 계속 도전해가야”

“빵 속에 강원도를 담았습니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 있는 빵집 ‘브레드메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다. 이를 증명하듯 진열장엔 ‘메밀 곰취 쿠키’ ‘순메밀빵’ ‘토종 들깨 효모빵’처럼 강원도의 특산물을 담은 곡물빵이 가득하다. 그런데 글루텐이 없는 메밀로 어떻게 빵을 구운 걸까. 비밀의 열쇠는 이 빵집 주인장 최효주 대표(39)가 쥐고 있다.

“메밀은 ‘단메밀’과 ‘쓴메밀’로 나뉘어요. 메밀국수나 전병에 쓰이는 건 단메밀인데, 빵을 만들긴 어렵죠. 저는 쓴메밀로 100% 순메밀빵을 만듭니다. 쓴메밀에 함유된 전분을 활용해 끈기를 만드는 게 비법이죠.”
영월과 이웃한 강원 평창에서 자란 최 대표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속 파티시에를 보며 제빵사의 꿈을 키웠다. 처음엔 달콤한 빵을 굽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기꺼이 타향살이를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기술을 배우면서 돈까지 벌기는 어려운 생활 속에 그는 새까맣게 탄 빵처럼 지쳐만 갔다. 그때 아버지가 “평창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해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2013년 평창으로 돌아간 최 대표는 그의 잿빛 마음을 찬란한 색깔로 물들이는 이를 만난다. 바로 원어민 강사로 일하는 캐나다인 ‘에바’다. 최 대표 빵집의 단골손님이던 에바는 메밀전병·옹심이 같은 강원도 향토 음식을 먹곤 특별하다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때부터 최 대표 눈에도 익숙한 식재료가 빛나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메밀을 재료로 한 빵 굽기에 도전하게 됐다. 메밀 쿠키·식빵·롤케이크 같은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니 지역주민이 찾아와 “이 빵은 딱딱해 먹기 힘들고, 저 빵은 씹을수록 고소하다”며 솔직한 조언을 건넸다.
다채로운 제철 특산물을 담은 메밀빵도 선보였다. 두릅·어수리 같은 봄나물과 제철 채소인 양배추·토마토가 빵과 케이크로 변신한다. 나물과 채소는 도내 로컬푸드 매장과 영월 ‘그래도팜’ 같은 지역농장에서 받아 사용하고, 메밀은 평창의 봉평영농조합법인에서 연 300∼400㎏씩 구매한다. 빵에 담긴 그의 진심에 단골손님도 늘었다. 한 손님은 귀농한 아버지를 만나러 평창에 왔다가 건강한 메밀빵의 매력에 빠졌는데, 거주지인 서울 성북구에서 평창까지 찾아올 정도로 애정이 깊다. 단골손님은 가게 기념일에 맞춰 손 편지와 케이크를 준비해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다 2023년 최 대표는 영월로 터를 옮겨 새로 빵집을 연다. 빵의 기본 재료가 되는 메밀·밀을 직접 가꿔보고 싶어져 영월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남편을 따라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번엔 좀더 자연친화적인 빵집으로 거듭나자는 다짐과 함께.

이제 브레드메밀에선 곡물빵이 주로 진열대에 오른다. 판매기한이 지난 일반 빵은 그냥 버려지지만, 곡물만 들어간 빵으로는 발효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곡물빵을 냉동·건조해 분쇄하면 효모균의 먹이인 발효종이 된다”며 “균이 이걸 먹고 반죽을 부풀린다”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빵이 다음 빵을 낳는 셈이라 브레드메밀에선 버려지는 빵이 거의 없다.

‘산·균·빵’ 체험도 이어진다. 베스트셀러 책 ‘총·균·쇠’를 연상시키는 기발한 이 이름은 ‘산에서 가져온 먹이로 균을 키워 빵을 굽는다’는 뜻이다. 처음엔 영월 주민을 비롯해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참가자 10명이 일주일간 동일한 밀가루로 균을 배양한다. 그다음 각자 기른 균으로 빵을 굽기 위해 브레드메밀로 모인다. 이때 신기하게도 대도시에서 자란 효모는 죽거나 검은 곰팡이가 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청정 자연 속에서 고집스럽게 빵을 구워내는 최 대표의 방식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최 대표는 “많은 이가 밀가루·이스트·설탕 같은 가루를 섞으면 빵이 ‘짠’하고 완성된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은 살아 있는 좋은 균이 발효를 시켜야 빵이 되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2023년에 시작한 ‘산·균·빵’ 체험은 올해 3기까지 진행됐다.
10년 이상 지역특산물로 빵을 구워온 최 대표는 후배 로컬크리에이터를 향한 조언도 건넨다.
“지방은 대도시에 비해 경쟁자가 적어 안일해지기 쉬워요. 안정에 취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야 해요. 주민들의 조언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사랑하는 빵을 위해 계속 시도하다보면 어느새 지역과 함께 자라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