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전원 불법 비자금…자민당 최대파벌 ‘아베파’ 존립 기로
내각·당 핵심 요직에서 쫓겨날 듯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핵심 인사들이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거 연루되면서 파벌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정권의 ‘2인자’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 기시다 후미오 총리 체제 아래서 내각과 당에서 요직을 맡아온 5명의 ‘아베파’ 핵심 인사들이 모두 경질될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10일 복수의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비자금 의혹과 관련된 마쓰노 관방장관,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 하기우다 고이치 당 정조회장, 다카기 쓰요시 당 국회대책위원장을 교체할 의향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세코 히로시게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도 경질을 검토하고 있다. 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조만간 개각을 단행해 정권 요직에서 아베파 간부를 뺄 생각”이라며 “13일 기자회견에서 일련의 의혹과 향후 정권 운영에 대해 설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9일 밤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만나 인사 규모와 후임 등을 놓고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와 손발을 맞춰 정권을 이끌어가는 관방장관이 불명예스럽게 경질되는 것은 2004년 이후 19년 만이다.
이름이 열거된 아베파 핵심 의원들은 2018~2022년 파별별로 여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한장당 2만엔인 ‘파티권’(행사 참여권)을 할당량보다 많이 판매해 얻는 초과 수익을 되돌려 받을 때 이를 ‘정치자금수지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고 각자의 비자금으로 챙긴 혐의(정치자금규정법 위반 의혹)를 받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현재까지 파악한 비자금은 의원별로 적게는 100만엔(약 910만원)에서 많게는 5천만엔(약 4억5천만원)으로, 전체 액수는 5년 동안 수십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렇게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정치자금을 투명화하겠다는 법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로 파벌에서 조직적으로 지속해온 것이 악질”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비자금 문제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소속 의원 99명)이자,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베파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경질 대상에 오른 5명은 ‘아베파’에서 ‘5인방’으로 불리는 핵심 인사들이다. 파벌 내 지도부 전원이 비자금을 챙긴 혐의를 받으며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이들이 일제히 내각과 당 간부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면 아베파의 영향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가 이제 시작된 만큼, 새로 진행될 개각과 당 인사에서도 아베파 소속 인물들이 중용되기 쉽지 않다. 실제 기시다 총리는 비자금 의혹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무파벌’ 의원을 중심으로 인선을 추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아베파의 정식 명칭인 세이와정책연구회는 1962년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만든 ‘당풍쇄신연맹’이 기원으로, 1979년 ‘세이와회’에 이어 1998년 지금의 ‘세이와정책연구회’로 이름을 바꿨다. 2000년 이후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등 4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아베파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해 7월 숨지며 구심력이 약화되긴 했지만, 기시다 총리 체제 아래서 내각과 당의 요직을 차지하는 등 여전히 힘을 과시해왔다. 요미우리신문은 “아베파가 존속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의혹으로 당에선 아베파 지배 시대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베파 중진 의원은 아사히신문에 “우리 파벌은 붕괴”라며 충격을 드러냈다.
이번 사태로 기시다 총리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지지율이 ‘퇴진 위기’ 수준인 20%대로 주저앉은데다, 최근 통일교 관련 단체 간부를 만난 문제까지 불거지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아베파 5인방은 기시다 내각이 출범한 2021년 10월부터 함께했던 (총리와) 인물들이다. 이들이 경질되면서 정권도 흔들리게 됐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소수 파벌인 기시다 총리는 다른 파벌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관방장관이 사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정권에 대한 타격은 헤아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리는 애초 비자금 수사 상황을 지켜본 뒤 대응할 생각이었으나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조기 교체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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