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순 '구속', 13번 좌석에서 직관한 심경 "비참하다"
[이주연, 이정환, 정혜원 기자]
'13번'.
정대택씨는 자신의 자리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7월 21일 오후 4시 45분, 정대택씨는 의정부지방법원 방청석에 앉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 재판이었다. 349억 원의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최씨는 지난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최씨는 항소했고, 이날은 항소심 선고날이었다.
13번, 그가 받은 방청석표는 하필 '피고인 최은순' 바로 뒷자리였다.
"(최은순씨가) 나이도 많고 지난 1심에서 징역 1년형이 나왔으니, (항소심에서) 형을 유예한다(집행유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발로 걸어가 좋은 꼴 볼까 싶어 가지 말까 했는데, 마음 독하게 먹고 재판정에 갔죠. 판사가 얘기하는데 감이 딱 오더라고. 항소를 기각한다고."
▲ 항소심 선고 앞둔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7월 21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받기 위해 의정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
ⓒ 권우성 |
판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대택씨는 지인에게 '최은순 구속'이라고 속보를 날렸다. 그 사이 재판부는 최은순씨에게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을 하라'고 발언권을 줬다.
최씨는 "억울하다, 여기서 죽어버릴래, 세상에 하나님, 어디 그런 법이 있어... 내가 무슨 욕심을 내"라며 울부짖었다. 법정 경위가 말리자 최씨는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파르르 떨고... 그 정도 됐으면 뉘우칠 줄도 알아야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내가 왜 구속되냐'고 소리지르더니 끌려나가더라고."
20년 동안 최씨 일가와 송사를 벌이고 있는 정대택씨는 최씨가 끌려나가는 모습을 코 앞에서 지켜보며 "비참하다"는 마음부터 들었다고 했다.
"저것이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로구나. 얼마나 욕심이 과하면 저럴까 싶고... (최은순이) 법정 올 때는 진주목걸이 두르고 고급차 타고 왔어, 구속 안 되는 줄 알고 온 거죠. 낼 모레 여든 되는 사람이 드러누워서... 얼마나 비참해, 그 순간이."
'속이 시원했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는 마음이 안 차지."
지난 23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대택씨는 헛헛하게 웃었다.
▲ 2003년 서울 송파구 스포츠센터 채권 투자 문제를 놓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은순씨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정대택씨. |
ⓒ 유성호 |
최씨와 정씨의 소송전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은 한때 동업자였다. 서울 송파구 스포츠센터 근저당 채권 투자를 함께했다. 문제는 수익이 난 뒤였다. 수익금 53억 원 분배를 두고 민·형사 소송이 벌어졌다.
2006년, 대법원은 "이익금 분배 약정은 정씨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최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정씨는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형을 마친 이후에도 정씨와 최씨 측은 서로를 각종 혐의로 고소했다. 정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지난 2021년, '장모(최은순) 대응 문건'이 작성된 것은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윤 후보를 고소한 바 있다. 또 최씨는 2021년 7월 정씨를 명예훼손 및 무고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해당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캠프, 국민의힘, 양재택 전 검사, 최은순·김건희. 최근 내가 고소 당한 것만 이렇게 다섯 건이에요. 최은순한테 고소 당한 건 국민참여재판으로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재판부가 안 된대. '(배심원단이) 여론에 흔들릴 수 있다'나. 그래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어요. 그 결과가 아직 안 나왔어요. 근데 20년 법정 투쟁하면서 기피신청 인용하는 걸 못 봤어."
20년 송사의 세월은 그를 '법정 전문가'로 만들었다.
"내 재판 맡은 판사가 내년 2월이면 다른 데로 가요. 판사들이 원래 2년 부임했다가 다른 법원으로 가잖아요. 그때까지 재판이 지연 되면 자연히 (해당 판사) 기피가 되겠죠."
처음 최씨와 소송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최씨는 부동산 투자 등을 하는 회사 대표였을 뿐이었다. 그런 최씨는 현직 대통령의 장모가 됐다. 두렵진 않을까.
"나는 이 사람들에게 힘이 있다고 생각 안 해요. 내가 처음에 최은순을 만난 게 2003년 4월 4일이에요. 나한테 '회장님 회장님' 하면서, 그러다 여기까지 왔지. (나보다) 하수라고 생각해 지금도. (최은순이 대통령 가족이 된 게) 더 좋지. (사건의) 사이즈가 커졌잖아.
멀쩡한 사람 불러다 삼청교육대 보내는 걸 옆에서 봤잖아요. 그때 같으면 두렵겠지. 그런데 지금은 민주화가 됐잖아요. 두렵진 않아요. 검은 거 희다고는 못할 거잖아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진실만 내놓으면 되잖아요. 다만, 불편하지. 왜? 가난하니까. 전기요금도 못 내서 '전기 끊긴다' 통지 올 때면 불편하죠."
그는 15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했다. 그를 만난 날 전국에서 폭우가 쏟아졌고, 오피스텔 천장에서 비가 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 최은순씨 일가와 20년 동안 송사를 이어가고 있는 정대택씨 사무실의 모습이다. 이 날 폭우가 쏟아졌고 오피스텔 천장에서 비가 새 정씨가 바닥을 닦고 있다. |
ⓒ 이정환 |
그의 말마따나 "가난해졌"고, 여권에서는 "돈을 노린 소송꾼"이라며 그를 비난하고 있다. 이런 나날이 쌓인 20년 동안 그가 바라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송꾼, 그런 소리 신경 안써요. 난 떳떳하니까. 이 싸움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열심히 염불을 외면 잿밥도 생기는 거예요. 돈? 그동안 저쪽에서 5억, 15억, 30억에 합의하자고도 했었어요. 그런데 내가 그거 받아버리면 나도 같은 사람 되는 거잖아요. 진실이 밝혀지면 돈은 자연히 오는 거예요. 진실부터 밝혀져야죠.
나는 경찰, 검찰, 판사 중에 딱 한 명, 정의로운 사람을 만나면 내 누명을 벗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다행하게도 어머니가 물려주신 기억력이 아직 짱짱하니까, 계속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내가 죽더라도 내 자식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그는 요즘, 대검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윤석열 대통령 장모 대응 문건'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2003년 12월 17일 3시에 최은순을 워커힐 호텔에서 만났어. 처음엔 2시에 만나자더니 3시로 미루더라"라고 술술 읊을 정도로 그의 기억력이 또렷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정대택씨는 말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자, 지치지 말자. 내 바람은 그거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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