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D프린터 쓰다가 숨진 교사…당국 “공무상 재해 아냐”

장필수 2023. 5. 1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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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혁신처 “업무 관련 과학적 근거 부족”
산업보건 관계자 “소모품 1개만 갖고 측정”
육종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들 서울씨의 공무상 재해 신청과 관련해 지난 2월27일 세종시 인사혁신처에 방문했던 아버지 서정균씨가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3D프린터를 교육에 활용하다 육종암에 걸려 숨진 고등학교 과학 교사를 두고 산업안전공단이 3D프린터 사용과 암 발병 간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은 역학조사 결과를 내놨고, 인사혁신처 역시 이를 바탕으로 이 교사의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1일 고 서울(사망 당시 37살)씨 유족에게 ‘순직유족급여 청구 불승인’ 결정 통보서를 보냈다.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서 서씨의 육종암 발병이 공무상 재해가 아니기에 유족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다. 결정 통보서는 불승인 사유로 “(고인이) 3D프린터를 교육에 활용해 유해물질 등에 장기간 노출된 사실 정황을 인정하더라도, 동 질병(육종암)은 굉장히 희귀한 종양으로 현재까지 원인을 밝히기 어렵다”며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에도 3D프린터 관련한 통계적 유의성이 없고 상병과 업무 관련성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산업안전공단은 지난 3월21일 서씨의 사망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를 내어 기존 연구 “자료의 한계”를 언급하며 “암 발병률을 비교하려면 (3D프린터 사용) 노출 이후 좀 더 시간이 경과된 뒤 발생률 차이에 대한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3D프린터 사용과 암 발병률 사이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고등학교 과학 교사로 일하며 3D프린터를 다루는 교육을 하던 서씨는 2018년 육종암에 걸려 2020년 7월 세상을 떠났다. 서씨의 아버지 서정균(68)씨는 유사한 환경에서 육종암에 걸린 교사 2명과 함께 2021년 2월 인사혁신처에 아들에 대한 공무상 재해 신청을 했다. 이에 산업안전공단이 2021년 4월 인사혁신처의 의뢰를 받아 1년11개월 동안 역학조사를 한 뒤 결과 보고서를 낸 것이다. 뼈, 근육, 신경 등에 종양이 생기는 육종암은 인구 10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암이다. 서씨의 죽음은 3D프린터 사용에 따른 위험성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계기가 됐다. 전국 초·중·고 교사 5276명과 직업성·환경성암환자찾기119가 지난해 2월8일 서씨의 공무상 재해 인정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서씨에 대한 개별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서씨는 집과 교내 3D프린터실에서 모두 4년 2개월 동안 최대 8대의 3D프린터를 다뤘다. 보고서에 담긴 동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서씨는 출력물이 온도와 바람에 예민하다는 점을 고려해 창문을 닫고 난방을 킨 좁은 방(26㎡)에서 안전 장비 없이 최대 4시간 동안 작업을 하기도 했다. 학교 축제를 앞두고선 학생들과 3일 내내 출력물을 뽑기도 했고, 온종일 최대 5대의 프린터를 풀가동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정부는 2014년부터 3D프린팅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중학교 실과, 기술, 가정 등 교과 과정에 실습과 시범교육 실시를 장려했다.

역학조사팀은 서씨가 작업했던 환경과 유사한 형태로 실험실을 만들어 밀폐된 환경에서 3D프린터 2대를 5시간 가동시킨 뒤 스티렌과 나노입자 농도를 측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서씨가 생전 주로 썼던 특정 3D프린터(로복스사)는 학교에서 더이상 사용하지 않아 실험에 쓰지 못했다. 측정 결과, 발암물질인 스티렌의 경우 ‘검출 한계 미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분석 기계가 검출할 수 있는 수치보다 적은 양의 스티렌이 검출됐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보건학계 관계자는 “역학조사팀이 시행한 방법으로 미량의 발암물질 농도를 잡아내기는 부적합해 보인다”며 “고인은 프린터 소모품으로 두 가지를 사용했는데, 역학조사팀은 한 가지만 측정에 사용했다. 다른 소모품을 사용한 환경에서 측정했다면 발암물질이 검출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 서울씨가 3D프린터를 사용했던 장소. 작은 창문(빨간 네모 표시) 하나가 유일한 환기 시설이었다. 현재 3D프린터를 사용하는 공간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산업안전공단 역학조사 보고서 갈무리

반면 독성물질인 나노입자의 경우 3D프린터 인쇄 시작 10분 만에 1㎤당 최대 147만6115개까지 치솟아 인쇄 전 농도(1㎤당 6061개)에 견줘 243배 높다는 점이 확인됐다. 다만 역학조사팀은 나노입자의 독성을 인정하는 국내외 연구를 소개하면서도 “단기 노출”이라며 “실제 노출에 대한 건강 영향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3D프린터 사용에 대한 유해성은 입증했지만, 육종암과의 연관성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건을 대리한 권동희 노무사는 “당시 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3D프린터 2개를 5시간 돌린 뒤 측정된 유해물질만을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에 반영했다”며 “내용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조사”라고 말했다.

서씨 유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 출석해 △개별 역학조사가 지닌 한계 △2017년 대법원 판단 등을 언급하며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최종 진술을 했다. 2017년 8월 대법원은 삼성전자 엘시디 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을 얻은 이아무개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보험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씨 역시 서씨처럼 역학조사 결과에서 다발성경화증과 업무 환경의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가 얻은 희귀질환 또는 새로운 유형의 질환에 대한 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 과학적으로 증명될 필요가 없고, 근로자의 취업 당시 건강상태, 작업장 근무 기한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는 등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대법원과도 다른 판단을 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노무사는 “공무상 재해 또한 업무상 재해와 판단 기준이 다르지 않은데 인사혁신처가 자연 과학적 증거라는 잣대만으로 과거로 회귀하는, 부당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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