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처럼 되지 말라…베트남 피해자 ‘시간 없다’ 말 가슴 울려”

“‘시간이 없다’는 응우옌티탄씨의 그 말씀이 너무나 생생하고 가슴 아팠어요. 그런데 (진실화해위의) 조사개시 각하가 정당했다니요. 이재명 대통령이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국방부에 조사를 지시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기무라 다카시(53) 후쿠오카여대 교수(국제교양학과)는 지난 6월1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하미 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68)씨의 진실화해위 행정소송 항소심 재판 현장을 방청했다. 당시 탄씨는 한베평화재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마침 예정돼 있던 본인 재판에 출석해 진술할 기회를 얻었다. 기무라 교수는 그날 오직 그 재판을 보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3일, 서울고등법원 행정11-1부(재판장 최수환)는 1심에 이어 탄씨가 아닌 진실화해위 손을 들어줬다. 예기치 못한 일정으로 이날 재판은 찾지 못한 기무라 교수는 한층 큰 아쉬움을 전했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베트남 역사인 동시에 대한민국 과거사다. 하지만 2023년 5월 진실화해위는 “외국에서 발생한 피해는 조사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씨의 조사 개시 신청을 각하했다. 탄씨는 한국 변호사들 도움으로 각하 결정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진행해왔다. 기무라 교수는 “일본에 의한 위안부나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는데, 1960년대 피해를 본 베트남 분들은 아직 많이 생존해 있다. 탄씨 말처럼 시간이 없는데, 한국인들이 이들을 위로할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과거사를 연구하는 일본 학자’ 기무라 교수와 전화와 서면으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무라 교수는 1996년부터 부산대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석·박사 과정을 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때 베트남전과도 만났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법 관점에서 썼는데, 같은 이론을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도 적용했다. 그렇게 2000년 나온 논문이 ‘국제법상 베트남 양민학살행위에 관한 연구'다. 당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집중 보도하던 한겨레21을 읽으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2003년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규슈대에서 한국 정치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시작하며, 한국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기무라 교수는 2027년 책 출판을 목표로 ‘한국 민주화 40년’과 ‘이행기 정의’를 연구하고 있다. ‘이행기 정의’란 국가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인권침해 사건을 어떻게 규명하고 후속 조처 하느냐를 이르는 용어다. 기무라 교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이 ‘법정’이다.

특히 과거 그릇된 판결이 바로 잡히는 재심 범정에 관심이 많다. 지난달 16일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김재규 내란목적살인 재심 사건’ 1차 공판을 방청했다. 김재규는 박정희를 총으로 쏘아죽였으나,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냈기에 재일동포 간첩조작 등 박정희 정권 당시 인권침해 사건의 가해 책임자이기도 하다. 기무라 교수는 조영선 변호사 등 김재규 재심 사건 변호인단이, 당시 피해자인 재일동포 사건 변호도 맡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가 한국에서 재심 법정 방청을 처음 한 것은 2010년 10월 재일동포 윤정헌씨 사건이었다. “어느날 고문 수사관 고병천이 법정에 나왔어요. 나이 들고 힘없는 목소리로 자기변해(自己弁解)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군사정권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김재규처럼요.”
기무라 교수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20번 이상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과거사 법정을 방청했다. “‘법관은 판결문을 통해서만 말한다’고 하잖아요. 법관이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법원을 이해하려면 법정에 가서 직접 봐야 합니다. 변호인의 주장과 그에 대한 검찰의 대응, 그리고 법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주목해서 듣습니다. 울먹이며 피해자에게 위로와 사과를 건네던 여성 법관도 보았어요. 판결문만으로는 알 수 없는 한국 민주화의 진화 과정을 법정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재심을 방청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행기 정의’의 마침표를 찍는 것은 사법부라고 생각한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통해 진실규명된 과거사 사건들이 한때 ‘군사정권의 하수인’으로 불렸던 사법부에서 어떻게 처리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무라 교수는 이에 대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서 나온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슬로건이 달성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은 다시 ‘고문 있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윤석열이 선포한 계엄령에도 놀랐지만, 연설문 속에 들어있는 ‘반국가 세력’이라는 말이 정말 이상하다고 여겼어요. 재심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되던 그 숱한 간첩조작사건이 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죠. 끔찍합니다.”
기무라 교수는 일본의 조선인 위안부 피해나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이제는 한일간의 분쟁이기보다는 ‘한국 국내 문제화’된 것 같다. 최근 일본 사회에는 한일간의 과거사 문제를 다룰 만한 정치인이나 정당이 없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는 이어 보편적 인권의 관점을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2018년 한국의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반일 판결’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양국 행정부와 입법부가 피해자 개인의 인권을 가볍게 여기면서 국가간 타협을 해온 데 대해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이 아닐까요? 일본인인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한일간 과거사 문제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등을 보편적 인권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다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일본처럼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본이 과거사를 잘 정리 못 해서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비판받고 고생했듯, 한국이 민간인 학살 문제를 잘 해결 못 하면 한국 젊은이들이 같은 고생을 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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